미국 협력
저는 상류 층의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에 와서 필사적으로 일했습니다. 비록 몇 년 동안 많은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회사도 차리게 되었고 집과 차도 마련하게 되어 이상적인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친구 여럿을 사귀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다 같이 잘 지냈습니다. 계속 읽기
미국 협력
저는 상류 층의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에 와서 필사적으로 일했습니다. 비록 몇 년 동안 많은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회사도 차리게 되었고 집과 차도 마련하게 되어 이상적인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친구 여럿을 사귀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다 같이 잘 지냈습니다. 계속 읽기
일본 희열(喜悅)
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예수님을 믿었고, 엄마는 늘 저를 데리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점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읽기
중국 양메이
2007년에 저는 갑자기 만성 신부전 병에 걸렸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 올케, 그리고 천주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제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제가 예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믿지 않았고, 병은 과학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과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있다면, 그것은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과학보다 더 대단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건 그저 정신적인 의탁에 불과한 거야. 난 당당한 교사야. 그리고 지식도 있고 교양도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그들의 전도를 거절하고 이리저리 병원을 돌아다니며 병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저는 지역 내의 거의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고, 성 내에 있는 이름난 병원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병세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과학이 모든 것을 고쳐 줄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고, 그 또한 치유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계속 읽기
브라질 위엔즈 (远志)
그날 밤, 저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차단했던 양 자매님을 다시 찾아야 해. 자매님을 찾으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장 형제님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양 자매님은 독실한 신자이고,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말세 역사를 고찰했으니, 지금쯤 많은 걸 알고 있을 거야. 자매님이 어떻게 고찰했는지 물어봐야겠어.’ 이틀 뒤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양 자매님의 번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양 자매님은 제가 계정을 차단한 일에 대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양 자매님은 연락을 통해 이미 고찰을 끝냈다고 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주님이라고 말하고, 또 기꺼이 저를 장 형제님에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장 형제님과 양 자매님을 만난 후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최근의 경험을 통해 저를 인솔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많은 의문에 대해 여러분의 교통이 필요합니다.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께서는 남성의 신분으로 성육신하셔서 역사하셨는데, 오늘날 예수께서는 어째서 여성의 신분으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시는지 하는 거예요. 이 심오한 비밀에 대해 장 형제님이 제게 분명히 교통해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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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위엔즈 (远志)
저는 중국 북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2010년에 친척을 따라 브라질로 오게 되었는데, 브라질에 와서 알게 된 기독교인 친구가 어느 날 교회에 같이 가자며 저를 교회로 데려갔습니다. 그 이후에 세 번을 더 따라가 봤지만 예배 때마다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일이 바빠져서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계속 읽기
중국 쑤제(苏杰)
1999년 어느 날, 예배가 끝난 뒤 목사님이 제게 편지가 한 통 왔다고 전해 줬습니다. 제가 산둥에 세운 교회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편지를 들고 집에 가는 길에 두꺼운 편지를 보면서 혹시 산둥 형제자매들이 무슨 어려움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계속 읽기
미국 협력
과거의 저는 세계적인 유행을 쫓으며 놀고 먹기 좋아하고 육체적인 향락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밤새우거나 한밤중에 폭주를 하거나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거나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맛집을 찾아 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입으며 향락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저는 ‘사람이 평생 돈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고 노력하는 건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거야. 계속 읽기
중국 소운
저는 여군 장교였습니다. 1999년의 어느 날, 한 한국인 목사님이 저에게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추구하여 얼마 후에는 목사의 주요 배양 대상이 되었고, 목사의 오른팔이 되었습니다. 2000년 여름, 목사는 한국 교회의 대학생 10여 명을 이끌고 윈난으로 하계 단기 수련회를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련회가 중국 공산당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계속 읽기
중국 구 진(丘 珍)
여기까지 들었을 때, 저는 자매의 말을 끊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물었습니다. “자매님, 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셨고, 주 예수께선 유대에서 역사하셨어요. 하나님은 두 차례 역사를 모두 이스라엘에서 하셨어요. 계속 읽기
중국 구 진(丘 珍)
하루는 동생에게서 북방에서 돌아왔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은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저는 전화를 끊고 바로 동생 집으로 갔습니다. 방에 들어가니 동생이 책 읽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모습에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동생은 제가 온 것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기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언니! 이번에 북방에서 좋은 소식 가져왔어. 주 예수께서 이미 돌아오셨어!”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