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를 따라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은 험난하고 어렵습니다. 늘 사탄의 각종 시험이 난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충돌이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없다면 주를 따라 마지막까지 가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은 논할 의미조차 없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인내심을 키워줄 성경 구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잠언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마태복음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은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고,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을 할 리 없으며,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
…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을 나타내고 또한 모든 사랑을 나타낸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 없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교만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생기게 된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사탄의 속성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고, 게다가 사탄이 하나님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당하고, 이용당하고,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절대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나를 배반하는 존재는 오직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뿐이며, 이 문제가 그리스도와는 영원히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신성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께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사역에는 사람의 어떤 사유도 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를 하는 인성, 즉 사유하는 인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사역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고차원적이든, 그의 사역에는 논리학도, 사고학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를 통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직접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전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이지, 그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그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십자가에 달린 것은 두뇌로 상상한 것이 아니며, 두뇌로 사유하는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직분이다. 그 사역은 전부 사람의 뜻이 아닌 신성이 해야 하는 일로, 육에 속하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신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재능이 출중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사역했다. 즉,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킨 것으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에는 생각하는 것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생각도 없다.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할 뿐이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한다. 사람의 뜻이 전혀 없이 신성이 직접 사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지, 사람의 사유나 생각은 없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이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행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한다. 인성 사역을 통해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원래부터 성령의 사역이며,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또한 성령의 사역에 속한다.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 역시 성령의 사역이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의 완전한 발현으로, 조금의 오차도 없지만,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에 속하는 것들이 많이 섞여 있다. 쓰임 받는 사람의 사역은 성령의 직접적인 발현이 아니며, 완전한 발현은 더더욱 아니다. … 성령은 쓰임 받는 사람에게 역사할 때, 그 사람에게 타고난 재능과 고유한 자질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한다. 고유한 자질을 모두 발휘함으로써 사역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는 사람에게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취해 사역함으로써 사역 성과를 낸다. 반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직접 영의 사역을 발현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생각이나 사유가 섞여 있지 않다. 이는 사람의 은사나 체험, 선천적 조건으로는 할 수 없는 경지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내 말은 내 어떠함을 대변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사람이 체험한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나의 어떠함이다. 어떤 이는 내가 교제하는 것이 내가 체험한 것이라고만 인정할 뿐,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당연히 내가 체험한 것이고, 6천년 경영 사역도 다 내가 하는 것이다. 태초에 인류를 창조할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 체험했는데 내가 어찌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또한, 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꿰뚫고 있고 벌써 다 살펴보았는데 내가 어찌 제대로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으므로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다. 사람은 모두 내게서 나왔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는 당연히 내가 한 사역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 그 사역은 내 육신이 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고, 모두 나의 소유와 어떠함이다. 그러기에 나는 발현할 자격이 있고, 내가 할 사역을 할 자격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체험하고 본 것이며, 사람 혼자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사람의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일들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반면,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말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으로, 영이 이미 행했던 사역을 발현하는 것이다. 육신이 체험한 것도, 본 것도 아니지만, 발현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어떠함이다. 육신의 본질이 영이고, 발현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영이 이미 행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에 육신의 발현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게 했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했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고 체험하게 한다. 즉, 사람이 하는 것은 붙들어 주는 사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활로와 시대를 여는 것이며, 평범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밝혀 그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간단한 실천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졌고,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이 직접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면 우선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너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도 말라.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종하겠는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바이다. 사람은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것이다.』<하나님의 발자취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하나님 말씀 찬양을 흥얼거릴 때마다, 저는 늘 계시록의 더하지도, 제하여 버려도 안 된다는 성경 구절에 대한 그릇된 해석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해 하마터면 말세의구원을 놓칠 뻔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책과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 관념에 사로잡혀 재림하신 주님의 복음을 거부하다
저는 어릴 적부터 엄마를 따라 예수님을 믿었고, 자라서 2년 동안 성경 강습을 받았습니다. 한 차례 강습 시간에 목사님이 계시록 22장 18절과 19절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목사님은 정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있고, 성경 속의 말씀은 더해도 안 되고 제하여도 안 됩니다. 지금 ‘동방번개’는 주님이 이미 재림했고, 새로운 사역을 펼쳤으며, 새로운 말씀을 선포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건 ‘더하지 말라’라는 성경의 예언을 위배한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성경만 보면 됩니다. 그러니 절대로 ‘동방번개’의 도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이치에 맞고 근거도 충분하여 저도 공감했습니다. 그 후 동방번개를 믿는 자매 두 명이 제게 복음을 전하자 목사의 말을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교회에 남아서 설교와 섬김을 했습니다. 어느 날 동역자로부터 교회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한 형제자매 몇 명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성경을 들고 가서 설득했습니다. 한 자매는 제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기다리던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어요. 계시록 예언도 이루어졌고요. …”라고 말하며 저를 권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는 설교하는 사람이야. 성경은 내가 너희들보다 훨씬 잘 알아.’라는 생각에 자매의 하던 말을 끊고 말했습니다.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요. ‘동방번개’는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새로운 말씀을 선포했다고 하는데, 이는 성경을 벗어난 것이고 성경을 더한 것이며 성경을 위배한 것이에요. …” 하지만 그들이 제가 아무리 설득하고 성경으로 해석해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인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형제자매의 확고한 표정을 보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자매들이 이틀 동안 동방번개의 도를 듣고 결단코 믿겠다고 결심한 걸 보니, 그들의 도가 확실히 높은가 보네.’ 그 후 저는 ‘동방번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교회의 좋은 양이 다 도둑맞으면 주님을 뵐 면목이 없어질까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형제자매를 찾아가서 주님께 회개하라고 권하고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였습니다. 또 나만의 영적인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하나님과 함께함을 느낄 수 없었고, 성경을 읽어도 성령의 깨우침이 없었습니다. 주일이 돌아오면 설교하기가 두려웠지만 안 할 수도 없었고, 오랫동안 어쩔 수 없이 설교를 했어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섬김의 길을 걸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깊이 연구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캐나다 신 학교에서 초청장이 날라왔고, 캐나다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 ‘더하지 말라’의 참뜻
저의 출국을 알게 된 마 자매는 저를 집으로 초대했고, 때마침 그의 친척인 조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음 생활에 대해 서로 얘기를 주고받자 형제님은 요즘의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고, 저는 요즘 설교하기가 제일 두렵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말하기도 부끄러웠습니다. 형제님은 지금은 말세이니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고 했고, 저 역시 들으면서 공감이 갔으며, 영적으로 어두운 상황에서 저도 분명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 형제님이 교제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드셨으며, 지으신 것이 하나도 중복되지 않았어요. 하나님 사역의 유일한 특징은 바로 ‘새롭다’는 것이에요.” 형제님의 말에 전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형제님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에게 율법을 반포해 율법으로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끄셨고, 인류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어요. 예수님은 오셔서 사람들을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했고, 회개의 도를 선포했어요.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과 포용과 인내 등을 가르쳤어요. 주님의 말씀에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어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매 한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마다 새로운 말씀이 있고, 사람에 대해 새로운 요구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새로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에요.” 형제님의 교제에 저의 마음은 한결 환해졌습니다. 이러한 교제는 매우 새롭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었습니다. 형제님이 계속해서 교제했습니다. “말세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이 재림하시면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에 저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더하지 말라’라고 예언되어 있고, 성경 외에는 새로운 사역과 말씀이 없다고 했는데, 형제님은 왜 하나님이 말세에 또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신다고 할지? 이는 성경을 더한 것이 아닌가?’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님은 곤혹스러워하는 저의 마음을 눈치챈 듯 이렇게 교제하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새로운 사역과 말씀을 하신다고 하시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에요. 성경에 분명히 말했어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시록 22:18~19) 성경에 더하지도 제하여도 안 된다고 하셨어요. 목사님도 무릇 말세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하는 것은 모두 성경을 더하는 것이며, 이는 주님의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형제님이 위에서 교제한 내용은 빛 비춤과 성령의 깨우침이 있어요. 이 성경 구절에 대해 형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제님이 교제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자매님처럼 계시록의 성경 장절에 따라 하나님이 말세에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모두 성경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이 몇 구절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본 후 이런 관점이 그 성경 구절에 대한 순수한 이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과거 요한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이라고 말했지 성경에 더하지 말아야한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어요. 당시 요한이 이 말을 했을 때 신약 성경이 있었나요?”
저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습니다. “없었어요. 신약 성경은 주 후 300여 년에 걸쳐서 형성되었어요. 계시록은 요한이 주 후 90년경에 밧모라고 하는 섬에서 이상을 보고 기록한 것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네요!” 형제님은 웃으며 말을 했습니다. “자매님, 맞아요. 요한이 말한 이 책은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을 가리켜 한 말이에요. 더해서도 안 되고 제하여 서도 안 된다는 것은 계시록 예언을 더하거나 제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 구절에 대한 순수한 터득이 없이 성경을 더해도 안 되고 제하여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말씀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어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형제님의 교제를 생각하며, ‘이 성경 구절을 여러 번 읽었는데, 어떻게 정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줄곧 요한이 말한 이 책이 성경 전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이것은 정말 큰 잘못이구나! 왜 이렇게 어리석었지?’ 저는 미간을 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 형제님 이해되었어요. 계속해서 교제해 주세요.”
형제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계시록에서 언급한 더하지도 말라는 것은 예언에 더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또한 사람을 경계하고 이 말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지, 이 말로 하나님을 제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해요. 신명기 4장 2절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또 신명기 12장 32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일찍이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어요. 무릇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탁하신 말씀이나 하나님께서 반포한 율법과 계명, 율례와 규례, 또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사람을 일깨워주는 말씀과 예언 등을 가감해서도 왜곡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고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하심을 대변하죠. 또한 우리가 일을 하고 사람됨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에요. 사람이 제멋대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에 가감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지 하나님이 율법 외에 새로운 말씀이 없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예요. 마찬가지로 계시록에 나오는 더하지 말라는 뜻은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계시록의 예언에 마음대로 내용을 더하지도 제하지도 말라는 경고예요. 그러나 우리는 이를 근거로 삼아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제한하고, 성경 외에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이 없다고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제야 저는 제가 계시록의 이 말씀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에게는 새로운 사역과 말씀이 없다고 규정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그분이 어떻게 사역을 하시든 무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병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말씀에 대해 더하건 제하건 다 정상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마음이 매우 밝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많은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지만, 이 성경 구절을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한 어떤 목사들은 성경을 연구한 지 몇 십 년이 되었는데도 왜 이 성경 구절의 참뜻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형제님이 더 많이 교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성경 외에도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말씀이 있다
형제님은 계속해서 교제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다 성경에 있고,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이 없고, 주님을 믿으면 성경만 읽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옳은 건가요? 사실에 부합되나요? 예수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예언하셨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계시록 5장 1절에서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또한 계시록 2장 17절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 이러한 예언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말세에 재림하시면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람에게 모든 진리를 베풀어 주시며 일곱 인으로 봉해졌던 두루마리를 펼치십니다. 이러한 진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말세에 열게 되는데 어떻게 성경에 미리 기록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예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말세 말씀과 사역을 정죄하는 것이 아닌가요? 이렇게 하면 주님을 문밖으로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형제의 교제를 듣고 나니, 마치 안개를 헤치고 나온 후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속으로 ‘맞아, 성경에 분명히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신다고 하셨어. 이 말씀은 틀림없이 성경 이 외에 새로운 말씀 일거야!’
이때 조 형제님이 또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몇 단락을 더 읽으면 더더욱 깨닫게 될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제한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대변할 수 없다. 4복음서를 모두 합쳐도 100장이 되지 않는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한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난 일, 금식에 관한 것, 기도에 관한 것, 아내를 버림에 관한 것, 예수의 출생, 예수의 족보, 예수가 제자들을 세운 것 등등 얼마 되지 않는 것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것을 보배로 여기고 지금의 사역과 대조할 뿐만 아니라 예수가 평생 행한 사역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님이 그 사역들 외에는 다른 사역을 못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 아니겠느냐?』(<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겠다. 바로 하나님의 어떠함과 소유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자 만물의 근원이며, 어떤 피조물도 그를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에게 일깨워 주겠다. 하나님을 또 한 번 책 속에 규정하거나 글귀에 규정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과거에 한 말씀에 규정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 사역의 유일한 특징은 바로 ‘새롭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길을 다시 가거나 했던 사역을 중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이 그를 어떤 범주에 규정해 놓고 경배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후기> 중에서), 『성경의 글귀에만 신경 쓸 뿐, 진리와 내 발걸음을 찾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모두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성경에 국한시키고, 성경 안의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인데 그들이 어찌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진리가 아니라 글귀,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이런 자들이 어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형제님이 교제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성경은 하나님의 과거 사역을 실제로 기록한 것이고, 성경에 기록할 수 있는 내용은 정말 너무 제한적이에요. 구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시대의 사역을 기록했듯이,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시대의 하신 말씀과 사역이 기록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런 기록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부분 사역일 뿐 하나님 사역의 전체를 뜻하진 않는 것이죠. 성경에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한복음 21:25)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만물 생명의 근원이에요. 그분은 만물을 만드셨고, 주재하며, 그분의 행사는 무궁무진하죠. 성경에 기록된 것은 바닷물의 한 방울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가 단지 약간의 성경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규정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마음대로 제한하는 것은 너무 교만한 게 아닌가요?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거예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고, 성경 구절로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고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어요.”
형제님의 교제를 듣고 제 마음은 좀 무거워졌습니다. 목사님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 안에 있으며 성경 외에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성경을 더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은 완전히 예언을 왜곡한 것이고 하나님 사역의 사실에 부합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요 몇 해 동안 저는 목사의 말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에 규정하고, 또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알아보는 것을 가로막았는데, 정말 너무 우매하고 오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후회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하시며,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유한한 범위에서만 사역하는 것이 아니죠. 저는 줄곧 성경은 더해서도 제하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고수하면서 성경 외에 하나님의 새 말씀이 없다고 했죠. 이러한 그릇된 논리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성경 속에 규정했는데 정말 무지했어요.” 제 말을 들은 형제님은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이런 깨달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에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 주님과 재회하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 형제님은 제게 하나님 6천 년 경륜의 비밀, 하나님 매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 성경의 실상과 본질, 하나님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 이름의 비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휴거의 진실한 함의, 영생의 도, 인류의 최종 종착지와 결말 등에 관한 진리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이 교제는 오랫동안 목마른 저의 마음과 영을 적셔 주었고 동시에 너무 신기했습니다. ‘형제님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진리의 비밀을 교제할 수 있고,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중에 조 형제님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자매님, 사실 우리가 기다리던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어요. 말세에 나타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기반 위에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의 사역을 하시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정켤케 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어요. 요즘 우리가 교제한 내용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밝혀 주신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런 오묘한 비밀을 드러내 주시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말해낼 수 없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오묘한 비밀을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실과 진상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밝혀 주었고,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길을 가리켜 주었으며 무엇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죠. 또한 어떻게 해야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려 주었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에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또한 계시록에도 예언했어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말씀의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정결케 되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고집하며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가리지이고 , 그들은 말세의 구원 사역을 놓친 것이죠. 그래서 영원히 정결함과 구원을 받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도태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결말과 종착지가 결정되는 것이죠!”
며칠간의 형제님 교제를 떠올리며 계시록 예언에 대해 정확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껏 몰랐던 진리의 비밀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행하신 심판 사역과 선포하신 여러 방면의 진리는 성경을 더한 것이 아니라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확실히 예수님의 재림이고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음을 인정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한없이 격동되었고, 또한 저의 관념 때문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교제가 끝나고 형제님이 제게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책을 주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한 진리는 대부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갈급한 심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성경에 관하여>, <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등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읽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성경과 하나님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성경을 대할지를 깨달았으며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단계마다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되게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 단계는 앞의 두 단계 사역의 기초 위에서 행한 더 새롭고 높은 사역이며 우리의 죄가 정결함을 받는 한 단계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영적으로 전에 없던 충만함과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나님 경영 사역의 비밀과, 모든 진리를 열어 놓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은 곧 말세 어린양이 펼친 책이며 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심을 완전히 확신했고 기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합니다. 저로 하여금 성경 예언에 대한 순수한 터득이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했습니다. 교회의 일부 형제자매들이 저의 방해로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하나님께 죄스럽고, 형제자매에게도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조 형제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증거했고, 일부 형제자매들은 속속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저는 복음 확장 사역의 대열에 합류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따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죄 사함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주님이 오시면 바로 천국으로 들림받는다고 믿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칭밍 자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예배를 통해 구원을 받은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참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이 글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마음 깊이 뿌리내려
2011년, 저는 크리스천이 되었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크나큰 구원에 감동한 저는 예수님이 저의 죄를 다 사하셨고,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주님이 약속대로 오시면 그때 들림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저는 참 복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제가 지은 죄들을 생각하노라면 하나님의 긍휼로 이같이 크나큰 구원을 받은 것이 참으로 부끄러워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가르침대로 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거듭나 그 사랑에 보답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수년간 겪으며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늘 혈기를 드러내고 주님의 교훈대로 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죄를 자백하기도 했지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1 1:9)라는 성경 구절을 보면 다시 마음에 위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구원이 참되므로 저의 죄가 이미 사해졌으니, 제가 온전하지 못하나 큰 사랑과 연민의 주님이 재림하시면 변함없이 저를 천국으로 이끌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주의 재림 소식과 내적 갈등
그러던 저는 2019년 음력설, 한 자매로부터 성경 공부 모임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때 여러 형제자매를 만나게 되었는데, 특히 그 중의 리 형제가 교제한 성경에 대한 깨우침이 빛비춤이 있어 보여 좋았습니다. 리 형제는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차이, 어떤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교제 내용이 마음이 환해질 만큼 너무나 은혜롭고 깨우침이 많아 저는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리 형제가 교제를 이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3단계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 그리고 마지막 때의 하나님나라시대 사역입니다.” 그리고는 하는 얘기가 하나님이 일찍이 성육신하시어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구원받았으니 천국에 간다는 것과 다르네?’ 로마서 10장 9절의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내용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예수님이 구속 사역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에 재림하실 때 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왜 심판 사역을 더 하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해서 저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의 유일한 구주는 예수님이셔. 이는 나의 신앙 뿌리이고 아무도 흔들 수 없어.’ 이렇게 반복적으로 다짐하며 다시는 그들과 교제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며칠간 형제자매와 참 좋은 교제를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일가견이 있었고, 근거 없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영상이며 말씀이 새롭고 제게는 누림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이런 점들을 생각하니 내려놓기가 참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겪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건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그 후로 며칠간 이 문제로 마음이 착잡하고 불안했습니다. 좀 더 알아보자니 제 생각과 너무 달라서 미혹이 될까 봐 두려웠고, 관두자니 정말 주님이 오셨다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셨다면 큰일이니까요. 그렇게 며칠 동안 저는 그 문제로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정말 돌아오셨습니까? 정말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전능하신하나님으로 돌아오셨습니까? 정말인데 제가 거부한다면 미련한 처녀처럼 하나님을 문밖에 계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 제가 계속 알아봐야 하는 겁니까? 참되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오며 구하나이다. 제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깨우치시고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구하나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속해서 구하다
제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원래 다니던 교회 자매가 마침 저를 찾아왔고, 저는 제 고민과 의문점들을 털어놓았습니다. “자매님, 전능하신하나님교회에서 주님이 오시어 새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란 책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 자매가 듣고 말하기를 “지금이 말세이고 주님 재림에 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주님이 이미 오셨을 수도 있어요. 주님이 오시어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인간이 맹목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심오한 비밀이 있는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분들이 주님이 오셨다고 증거하셨다니 제 생각에는 알아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정말 돌아오신 주님이 맞는지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알아보아야 해요. 누가 주님이 오셨다고 알리는데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자칫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칠 수 있지 않겠어요?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우리가 진심으로 구할 때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실 거에요.” 자매님의 얘기는 맞는 말입니다. 경계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리 형제가 교제한 것처럼 슬기로운 처녀는 주님의 재림 소식을 들을 때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주님을 맞이하러 나온다고 했습니다. 제가 알아보지도 구하지도 않은 채 고정 관념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판단하여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친다며 미련한 처녀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져 다시 전능하신하나님교회의 말씀을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구원받다’의 진정한 함의를 깨닫다
이튿날, 저는 자매와 함께 전능하신하나님교회 형제자매와 예배 모임을 가졌습니다. 예배 중에 저는 곤혹스러웠던 문제들을 꺼냈습니다. “제가 오늘 찾아온 것은 깨닫지 못한 문제를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우리의 죄가 다 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돌아오시면 우린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왜 주님이 돌아오신 후 하시는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인가요?” 자매님이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구원을 얻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라고 하신 적이 없으면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념과 상상입니다. 구원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사역하신 배경을 보겠습니다. 율법시대 말기를 보면, 인간이 깊이 타락하여 죄악이 사무쳤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고로 다 죽음을 당할 처지였었지요. 예수께서 인간을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율법을 어겨도 정죄받아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여기의 ‘죄’는 율법과 계명을 어겨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고,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아 주님께서 베푸시는 평안과 기쁨과 풍부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 뜻]구원의 참뜻을 깨닫고 천국 가는 길을 찾다
이 부분에 관하여는 전능하신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전능하신하니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속량하는 것이었다.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았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받았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것은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사람이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러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여전히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없애는 사역은 없었기에 그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사람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이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속죄 제물로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벗어 버리며, 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었다.』
전능하신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이란 예수님의 속량으로 인간이 죄 사함을 받아 더는 율법에 죽임을 당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였을 뿐 인간의 죄짓는 본성과 사탄 본성을 해결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교만, 간사함, 이기심과 비열함 등 사탄 본성이야말로 우리를 죄짓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좇고 세속적인 돈과 명예와 육적인 누림 등을 좇아 갑니다. 인간 관계는 이익이 잣대가 되어 개인 이익에 연관되면 서슴없이 거짓말하고 명리를 다투게 됩니다.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고 이웃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라는 등 예수님의 가르침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4~35)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거룩하지 아니하고는 주님을 만날 자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주권을 잡는 나라이자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한데 어찌 늘 죄지으며 주님을 대적하는 우리 같은 인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시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돌아오시어 인간을 완전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말세인 지금 전능하신하나님이 벌써 오셨습니다.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 집에서 심판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는 우리의 죄짓는 본성과 사탄 성품을 해결하여 완전히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며,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자매님의 교통을 들으니 이해가 좀 된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으며, 그 구원은 우리가 율법에 정죄되지 않는 것일뿐 바로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구원 사역의 반을 하셨습니다. 저도 아직 죄지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 정결케 되어야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매님의 교제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묵상할수록 구원을 얻은 것과 천국 가는 것이 별개의 문제라 구원을 얻은 사람이 심판을 겪고 정결케 되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저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해야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 주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의 교제가 더욱 듣고 싶었습니다. 자매님은 계속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과 절차에 따라 각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각 단계마다 일부 효과를 달성하고요. 은혜시대의 사역은 죄를 사해 주는 것으로, 사람이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결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만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를 공급하여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생명 성품이 변화하는 데에 이르게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예언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7~48),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실까요? 함께 전능하신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능하신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고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점을 더더욱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선포하신 진리로 사람을 정결케 합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알려 주시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리의 사탄 본성을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나님 뜻을 행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도태시키시는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사탄 성품으로 가득해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여 사람다운 모습을 전혀 살아내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거룩한 성품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행하지 않고 사탄의 성품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염증을 느껴 버릴 것이란 걸 알게 되면서 진리 실행을 중요시하여 생명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효과는 은혜시대에 있을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자매님은 영화 《천국의 꿈》의 발췌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상에서 친 형제가 교제했습니다. 그는 은혜시대 때 열심히 추구해 좋은 행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본성의 지배로 늘 자신을 드러내 증거하며,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숭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능하신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요. 그는 전능하신하나님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교만한 사탄 성품을 인지하고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깨달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게 되면서 많이 겸손해져 늘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등 일부 진리를 실행해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이 계속 교제를 이어 갔습니다. “현재 전능하신하나님교회의 공식 사이트에는 각 유형의 체험 간증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 효과를 통해 전능하신하나님이 하시는 말세 심판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을 기초로 한 새롭고 깊어진 한 단계 사역임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하나님은 우리 전 인류에게 진정한 영생의 도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 있어 문이므로, 그분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 천국에 이끌려 들어가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구속 사역만 받아들이고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보다시피, 말세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하나님이 하시는 심판 사역만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며 구원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인간의 운명과 결말과 종착지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문제입니다.”
자매의 교제와 영상 속 형제의 간증에 공감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교회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만하고 늘 자신을 드러내기만 했지 자신의 패괴 성품과 본질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돌아오신 전능하신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정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 인간이 죄짓는 근본 문제를 인식하게 함으로 탄복게 했습니다. 전능하신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은 정말 은혜시대보다 높은 진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확실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죄성을 완전히 해결하고 패괴 성품을 완전히 벗어 정결케 됨으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오시어 하시는 심판과 정결의 사역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이렇게 깨닫게 되어 전능하신하나님이 진정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분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말씀을 잘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얻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진리를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이 갈수록 깊어진 과정,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에 내포된 참뜻, 성육신의 비밀,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에 대한 분별, 어떻게 하나님나라가 땅에 이루어지는지,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구별하는 법 등 진리에 관해 들으며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교만한 본성에 대해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 본성 때문에 저와 가족이 화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법을 찾게 되었는데, 평안과 누림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능하신하나님이 곧 재림하신 예수님이시고, 전능하신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곧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새로워진 더 높은 사역임을 확신했습니다. 이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죄로부터 정결해져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능하신하나님이 오시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꿈에도 제가 살아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으로 저를 잡아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미련한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잃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매일 생명수의 공급을 누리고 있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직도 많은 형제자매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했으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았다. 주님이 다시 오시어 심판 사역을 하실 리 없다’는 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 소식을 듣고도 알아보려 하지 않아 돌아오신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글을 쓴 이유입니다. 저의 체험을 통해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관념을 내려놓고 적극적이고 가난한 마음으로 알아보아 주님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많은 이들은 계시록에 예언된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 바로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하늘에 커다란 탁자가 펼쳐지고, 보좌에 앉은 예수님께서 책을 펼쳐 각자의 행실에 따라 모든 사람을 심판하여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정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상은 제법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선 정말 우리가 상상한 대로 이루실까요? 사실, 계시록에 예언된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요한이 본 환상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면 재림 주님은 대체 어떻게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을 하실까요?
성경 참고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1~12)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7~48)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심판’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말세에 그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이다. 어떤 사람은 말세가 오면 하나님이 흰 탁자 보를 씌운 큰 탁자를 하늘에 설치하고 커다란 보좌에 앉아, 땅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든 개개인의 죄상을 폭로함으로써 그들이 하늘나라로 갈지 아니면 유황불 못으로 떨어질지를 정할 것이라는 등등의 초자연적인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상상하든지 하나님 사역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사람의 상상은 단지 사유에서 비롯된 구상이고,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사람이 듣고 본 것을 긁어모아 종합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얼마나 멋지게 상상하든 그것은 단지 그림에 불과할 뿐, 하나님 사역의 계획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존재인데, 어찌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히 측량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아주 기이하게 상상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행하는 심판 사역이라면 틀림없이 규모가 아주 방대하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분명 하늘에까지 울려 퍼지고 땅을 뒤흔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일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 또한 심판 사역이라면 하나님은 사역할 때 틀림없이 매우 위엄 있고 위풍당당할 것이며, 심판받는 자들은 분명 대성통곡하고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장면은 틀림없이 매우 장관이고 감동적일 것이라는 등등 여러 가지 상상을 한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심판 사역을 시작했을 때 너는 여전히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단잠에 빠져 있었고, 네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바꾼 때이다. 그때 어쩌면 너는 막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무정한 징벌 사역은 깊이 잠든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때서야 너는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일찌감치 끝났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어느 날 땅에 와서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여 한 사람 한 사람 통과시킬지 모르니 누구도 빠질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단계의 성육신 사역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할 때 한 사람 한 사람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통과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심판 사역이라 말할 수 없다. 모든 인류의 패괴는 다 같지 않으냐? 사람의 본질은 다 같지 않으냐?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작은 결점이 아니라 인류의 패괴된 본질, 사탄이 패괴시킨 사람의 본질, 그리고 사람의 모든 죄업이다. 심판 사역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오롯이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해서 하는 사역이 아니라 일부의 사람을 심판함으로써 전 인류에 대한 심판 사역을 대표한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일부 사람에게 친히 하는 사역으로 전 인류의 사역을 대변하며, 그런 다음 점차 확장한다. 심판 사역도 이러하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이나 일부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불의, 예를 들어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 등을 심판하는 것이다.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의 본질이며, 이 심판 사역이 바로 말세의 정복 사역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이 바로 예전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말세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 사역이다. 지금 성육신한 하나님이 하는 사역 역시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다.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이 바로 말세에 전 인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이 육신과 육신의 사역, 말씀, 모든 성품이 그의 전부다. 비록 육신이 하는 사역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직접적으로 우주 전체에 미치지 못하지만 심판 사역의 본질은 모두 직접 전 인류를 심판하는 것이다. 단지 중국 선민만을 위해서, 또 몇 사람만을 위해서 심판 사역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 사역하는 동안 사역의 범위가 우주 전체까지 미칠 수 없다 해도, 그가 하는 사역은 우주 전체의 사역을 대표한다. 또한 그가 육신의 사역 범위 안에서 하는 사역을 끝내면 이 사역을 즉시 전 우주 각 지역으로 확장할 것이다. 마치 예수가 부활해 승천한 후 복음이 전 우주 각 지역으로 전파된 것처럼 말이다. 영의 사역이든 육신의 사역이든 모두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행하지만, 우주 전체를 대변한다. 말세의 사역은 성육신의 신분으로 나타나 하는 사역이다. 그 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희고 큰 보좌 앞에서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그가 영이든 육신이든, 결국 심판 사역을 하는 이는 말세에 인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겉모습이나 다른 여러 가지 면에 근거해 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에 근거해 정한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고 우리 앞에 나타난 적도 없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모든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모든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는 계획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그의 경영을 펼치고 계셨다. 아주 조용히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 인류에게 다가와 손쓸 틈도 없이 빠르게 우주에 그의 심판대를 세웠고, 곧이어 그의 보좌 또한 우리들 가운데 임하였다. 이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또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그 영은 비둘기같이, 또 포효하는 사자같이 우리 모든 사람들 가운데 임하셨다. 그는 지혜요, 공의요, 위엄이며, 권병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가득 안고 조용히 우리들 가운데 강림하셨다. 그의 강림을 알아차린 사람도, 맞이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가 장차 할 모든 일을 아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사람의 삶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사람은 평소와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평소와 똑같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님 또한 따르는 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로, 평범한 신자로, 보통 사람처럼 우리들 가운데서 생활하셨다. 그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있었으며, 일반인에게는 없는 신성이 있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을 알아채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본질이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말세의 심판]알고 계십니까?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 당연히 하나님이 친히 해야 한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말하자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만방의 사람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만방의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언짢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이 흔히 사람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고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 둔다. 사람은 땅에 있는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고, 사람의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 같아서 구더기만 만들어 낼 뿐이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하는데, 그러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일지는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다. 각자 자신을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말기를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대단하냐?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 때문에 심판 사역을 두 번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너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하늘의 크고 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 보아라! 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저버리고 부인했지만 예수가 인류를 속량한 일이 우주 땅끝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니더냐? 네가 아직도 예수가 너를 맞이해 하늘나라로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고집불통에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겠다. 예수는 진리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복만 받으려고 하는 너 같은 거짓 신자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가차 없이 너를 불 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태울 것이다.』
『지금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지금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마지막 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겠느냐? 이것도 꿰뚫어 보지 못했느냐? 왜 마지막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겠느냐?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본모습을 드러낸 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다시 말해, 사람의 죄를 심판함으로써 각 부류의 사람들을 드러내고, 그것으로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다음은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로 확장하는 다음 단계 사역 가운데 놓일 것이고,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어둠 속에 놓여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게 되는데, 악인은 악으로 돌아가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하며, 의인은 선으로 돌아가 빛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고 사람의 결말도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것인데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이 왔을 때 드러나고, 또 전 우주의 정복 사역(지금부터 시작되는 모든 정복 사역 포함) 가운데서 드러난다. 모든 인류의 결말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가운데서, 말세의 정복 사역 중에서 드러난다.』
예수님은 말세에 재림하시면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따라서 2천 년 동안, 주님을 믿어 온 사람들은 그 소망을 안고 주님을 기다려 왔습니다. 특히 말세에서도 마지막 때인 지금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합니다. 그럼 주의 재림을 맞이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깨어서 준비해야 할까요? 여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말세 재림]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주제별 성경 구절 모음
1’예수님의 재림 약속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2~3)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시록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시록 22:12)
<최고의 축복>은 지하 교회 목회자의 삶을 다룬 내용이다. 스스로 직장도, 가정도 내려놓고 이렇게 열심히 사역을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뒤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오로지 교회 책임자로서 힘써 사역할 생각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타락된 성품으로 사역을 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미움받아 성령의 역사를 잃게 된다. 책임자에서 해임된 뒤로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과 대적하다 어느 날 말씀의 심판으로 깨어나는데…
주인공은 크리스천으로서 직설적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 돕기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자기 체면을 조금 구기게 되자 그 자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대하게 되고, 사사건건 그 자매에게 반대합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이 이기적이고 악독한 사탄의 패괴 성품을 가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자신이 미워 그녀는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나아가 작은 착한 행실은 성품 변화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경험해야만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진정한 회개와 변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때 직접 영의 방식과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의 외형을 입지 않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채워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될 것이고, 혹은 하나님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힐 것이다. 첫 번째 성육신은 죄에서 사람을 속량했다.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사탄의 패괴 성품이 계속 존재했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 제물이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받은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써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이 성경 구절을 빌어 며칠 전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를 우선 나누고 싶다. 아주 바빠서 늘 기도할 시간이 없었던 한 신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기도문을 써서 벽에 걸어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자기가 너무 바빠서 기도드릴 시간이 전혀 없으니 주님이 알아서 보시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여러분도 내가 처음 봤을 때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습은 확실히 주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의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소홀히 할 때가 아주 많다.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대충 형식적으로만 할 뿐이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적당하지 않은 예를 하나 들자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면 분명 무슨 말이든지 다 이야기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없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 한 마디 말도 많다’고 여겨질 것이다. 사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기도와 교제가 없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어떻게 정상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은 또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기도는 크리스천으로서 매일 꼭 해야 하는 영적 수련 방식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의 의의를 모르기 때문에 기도를 별도의 부담으로 여기고, 심지어 짐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에 접촉할 방법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무릇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깨우쳐주시어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될 수 있게 하신다.
생각해보면, 당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공격했던 것도 기도를 통해서였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던 것도 기도를 통해서였다. 내 실제 체험에서도 느꼈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나 간파하지 못한 일이 많을 때 기도를 하면 어느새 깨닫고 있고,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위험이 닥치고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진다. 체험을 통해 기도의 깊은 의의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면 당신도 분명 기도의 위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기도의 의의를 깨닫는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1~6)
이 성경 말씀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왜 이 말씀을 골랐을까? 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서 생활한 부분을 발췌하지 않았을까? 그 내용은 오늘 우리가 얘기하려는 이 주제와 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앞서 말한 그 내용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각자 성경을 살펴보아라.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오늘은 하나님의 행사를 어떻게 알 것인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하겠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방주를 지은 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하는 날들을 보냈고, 그의 여덟 식구는 살아남았다.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되었고, 땅의 생물들도 모두 멸망되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축복을 내렸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아들에게 어떤 말씀들을 하였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베풀어 주려는 것이자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주는 축복이고 약속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보기에 노아가 완전한 자이든 의인이든 상관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든 상관없었다. 결국,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은 하나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했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리하여 홍수로 세상이 멸망된 뒤에도 하나님을 위해 인류와 각종 생물이 보존될 수 있게 하였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경륜을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바로 노아의 이 모든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을 내린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사람에게 있어 노아의 행위는 언급할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노아도 한 일은 없잖아. 하나님이 노아를 남기겠다고 결정하셨으니 그는 당연히 남을 수 있었겠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야. 하나님이 이렇게 이루려고 하셨던 거지. 사람은 피동적이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위대한 사람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받은 사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순조롭게 완수될 수 있도록 한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이런 행위는 하나님이 기억할 만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이런 행위를 아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이런 정과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다. 그러니 하나님이 왜 노아를 축복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이런 행위와 순종을 아끼고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노아를 축복한 것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따르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면 하나님은 당연히 사람을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이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렇게 말해도 될까?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왜 안 되는 것이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말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였을 때, 사람의 행위의 좋고 나쁨, 순종했는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렸는지, 그리고 그가 행한 것이 합격인지 판단하는 데 있어 하나님은 한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이 어떻게 행하든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축복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오해이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사람의 마음에 순종함이 있는지, 헤아림이 있는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는 염원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당시의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치보다 많이 알고 있었을까?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앎, 이런 진리에 대해 너희보다 더 많은 양육과 목양을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인의 의식과 사상 속, 심지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하나님에 관한 개념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명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노아의 마음과 의식 속에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노아는 이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노아의 순종에는 불순물이 없어 검증을 견뎌 낼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은 순결했고 하나님께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수많은 이치상의 인식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르라고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실들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노아와 현대인들의 본질적인 차이다. 또한 하나님 보기에 완전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해석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사람을 원하고 인정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축복하는 대상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본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람이 그를 조금이라도 등한시하고 의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어떤 추측이나 시험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주하고 있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내면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과 패괴된 본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사람이 하나님을 참되게 믿지 못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준 것과 같은 축복을 받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예수님과 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하셨고 회개의 도를 전하셨으며,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고 영생의 도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도와 영생의 도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영상을 주목하십시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7~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아마 다들 성경에 적힌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다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곧 강림하실 메시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아낙네였고 많은 성경 지식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3년 반에 걸쳐 사역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과 짧은 만남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며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은 더더욱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을까요? 예수님의 특별한 은혜 덕분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떤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로 들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한복음 4:7~10, 13~26, 28~29)
[매일의 묵상]사마리아 여인의 현명함
위의 성경 내용을 통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린 이유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방비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상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몇 마디 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비범하다고 생각했고 그 후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일반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금의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속사정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일일 뿐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와 전혀 만난 적 없었던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문에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으며 예수님에게 어디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냐며, 산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리고 이렇게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한 마디가 여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실천의 길도 알려 주시어 하나님께 경배할 때 표면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는 말을 듣고 사마리아 여인은 크게 기뻐하며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동네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짧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은 즉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능력이 있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속사정도 드러내시며 자신의 타락함도 드러내시고 자신이 갖고 있던 문제와 곤혹도 해결해 주셔서 명확한 실천의 길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2.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구하다
사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의 멸시를 받아왔고 이들은 서로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님과의 대화를 거절하지 않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는 말씀을 듣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에게 영생의 물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차마 말을 못하는 속사정을 예수님께서 밝히셨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그 문제를 언급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과의 대화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곤혹을 해결해 주시고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깨닫고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실 메시야임을 알아차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진리를 구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의 묵상]사마리아 여인의 현명함
지금은 이미 말세이고 바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의 장점을 본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까요?
1.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그리고 계시록에도 여러 곳에 예언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 3장) 여기서 우리는 말세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음성을 발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리를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길 바라십니다. 그래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재림하시어 음성을 발하신다고 증거하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을 본받아 그 말에 권능과 능력이 있는지 들어 보고 아무도 모르는 우리 마음속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지, 우리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실천의 길을 알려줄 수 있는지 들어 봐야 합니다.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발하시는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2.겸손한 사람이 되어 능동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겸손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자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입니다. 지금 우리는 대다수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일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00년에 주님께서 오신다고 하셨지만 이미 2019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한 것일까요?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예언은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는 모두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재림하시어 어딘가에서 사역을 하고 계시진 않을까요? 우리가 능동적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게 구하고 주님께 자주 기도드리며 먼저 주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이끌어 주시어 우리가 하나님의 말세 나타나심을 맞이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재난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지금,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당신은 주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있나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돌아오실 주님은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시며, 빌라델비아 교회는 환난 전에 들림받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에 닫을 사람이 없는 열린 문을 둘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문은 곧 천국의 문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 사람이 시련에 빠져 큰 환난을 겪을 때 하나님이 벨라델비아 교회 사람은 재난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다시피 계시록에서 말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게 되면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아 재난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실, 예언의 말씀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특징에 따라 찾으면 찾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로, 너의 생명이 이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는지를 알려면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갔는지, 하나님 말씀이 너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네 생명의 실제가 되었는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결국에는 모두를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하고, 각자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을 준다. 만약 네가 이 기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읽고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네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네가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을 것이고, 들어가면 성령의 역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 시대의 출발점에서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 시대에 너희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루고자 한다. 너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고, 진리를 실행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삼고 실제가 되게 하여 하나님께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말씀을 실행하여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되겠느냐? 현재 많은 이들이 하루 이틀만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매우 답답해하며, 매일 말씀을 봐야 하고, 시간이 없으면 듣기라도 해야 한다고 한다. 성령은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주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네가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어둠과 목마름을 느끼게 되어 답답해할 것이다. 이는 네게 성령의 감동이 있으며, 성령이 너를 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너는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하루 이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이는 성령이 너를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고 말씀 시대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니, 뒤처진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제어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껴지고,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을 잃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과 동력이 된 것이다. 예전에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한 바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 사역을 이룰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서 이 사실을 이루고자 한다. 과거에는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했었는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생명과 광명, 그리고 실행할 길을 줄 수 있다. 특히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1.이 시대에 하나님은 이런 일 이루시려 한다. 모든 이에게 참진리를 실행하고 말씀대로 살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신다. 말씀이 사람 삶의 근거가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있게 하신다. 그 말씀 실천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게 하신다. 말씀만이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사람에게 실행의 길과 빛을 줄 수 있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매일의 하나님 말씀<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발췌문 401)
2.하나님은 말씀으로 인류를 지배하신다. 그의 말씀은 사람들의 양식이고 힘이다. 먹으면 좋아지고 먹지 않으면 행할 길이 없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말씀에 의해 살라”, 성경에서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사실을 너희에게 이루려 하신다. 말씀만이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사람에게 실행의 길과 빛을 줄 수 있다.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3.이 시대에는 주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 사람들은 심판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말씀에 이끌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말씀을 매일 먹고 매일 마셔라. 말씀의 실제만 떠나지 않으면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 말씀만이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사람에게 실행의 길과 빛을 줄 수 있다. 하나님나라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가족은 다 천주교를 믿는데, 어릴 적부터 저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천주님께서도 우리 가족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기에 우리 가족 모두 천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으며, 천주님의재림을 늘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주님께서 정말로 오셔서 구원 사역을 하실 때, 저는 오히려 천주님의 사역을 알아채지 못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교만한 본성에 따라 낡은 관념을 고수하여, 자칫 천주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놓칠 뻔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면 제 스스로 자책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매우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은 천주 성자 예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인내심을 갖고 천주님의 말씀을 저에게 교제해 주었는데, 천주님의 사역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천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저를 하나님나라시대의 막차에 오를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신 천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천주님을 받아들였던 과정들이 한 장면 한 장면 머리를 스칩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천주교 교우인 이(李) 이모가 몇 명의 교우들을 데리고 저의 집에 와서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우리 가족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전하는 줄 알고 배척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모는 오히려 “지금, 천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는데,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야.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해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는데, 은혜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하나님나라시대야. 우리가 죄를 지으면 신부에게 가서 고해 성사를 할 필요가 없고, 직접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여 그 속에서 본인의 타락 성품을 반성하고 알면 되는 거야. 또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되고, 점차적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얻고 하나님 마음과 합하는 사람이 되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모의 말을 들은 저는 매우 놀라 속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주님의 나타나심이야? 난 오랫동안 천주님을 믿으면서 많은 은혜를 누렸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인다면, 천주 성자 예수님을 등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조금 곤혹스러웠고 듣고 나서도 어떤 태도를 밝히지 않자,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재림] 관념을 내려놓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네
나중에 언니가 종종 혼자 외출하는 것을 보았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함께 귓속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와 언니는 함께 자주 외출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내적 상태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언니가 제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아주 답답했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와 언니는 저에게 자신들은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아울러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하신 천주님으로, 그분의 사역인 것을 확신했다면서 저에게도 잘 알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하는 말이 저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는 아주 경건한 천주교 신자야, 그런데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지. 이것은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천주교를 등지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와 언니가 어떻게 며칠도 안돼서 마음이 변할 수 있지?’ 저는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이모가 와서 어머니와 나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할 때, 우리도 잘못 믿는 건 아닐까 두려웠어. 하지만 그들의 말은 아주 일리가 있고, 또한 성경 예언과도 일치해. 아울러 세상에 재난이 갈수록 커지는 등, 각종 징조들을 보면 천주님께서 돌아올 때라는 걸 알 수 있잖아.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천주님의 재림인데 우리가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천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잃게 되지 않겠니?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천주님의 재림이라면 저를 일깨워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천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해 주시고,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매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어.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그들이 또 우리 집에 와서 전능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것이 천주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게 됐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기 시작했지. 자매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보여주었고,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권능이 있고 능력이 있으며 다 진리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보았어.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의 취지와 천주님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인류가 타락된 근원은 무엇인지, 인류는 어떻게 죄악에서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는지, 이후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등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어.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많은 진리를 깨달았고 성경 속의 오묘한 비밀들을 많이 알게 되어 마음이 아주 밝아졌어.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천주 성자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거야….” 언니의 말을 듣고 나니 긴장됐던 제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습니다. 알고 보니 언니는 맹목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천주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구했던 것이었습니다. 순간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줄곧 천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천주님께서 오셨다고 증거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구하지도 않았는데, 또 어떻게 천주님께서 일깨워 주시고 인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천주님의 재림인데 제가 찾거나 알아보지 않는다면, 천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놓치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기로 언니와 약속했습니다.
이틀 후, 어머니와 언니는 저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비록 알아보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여전히 경계를 했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교제하는 것을 들을 때, 아무리 해도 제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니와 어머니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체면을 봐서라도 억지로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한 형제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 대다수 사람들이 미사를 드릴 때, 신부의 성경 해석은 뒤떨어지고 무미건조하며 새로운 빛 비춤이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신도들은 들어도 누림이 없고 매일 고해 성사를 하지만, 여전히 죄 속에서 살고 스스로 빠져나올 힘이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심과 도덕성을 잃고 흑암 속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온 교계가 보편적으로 황량해진 것을 보았습니다. 즉, 성령 역사가 없는데 이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면 자매님은 교계가 황량해진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이 문제는 천주 성자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교계가 성령 역사를 잃고 황량하게 변한데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천주교의 신부나 교구장들이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으며, 그저 사람의 유전을 지키고 신학 이론이나 성경 지식을 말하는 것만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여 사람들로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천주님을 전혀 증거하거나 높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천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게 하거나 진리를 깨닫고 천주님를 알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전히 천주님의 도를 벗어나는데 이로써 천주님에게 미움을 사고 도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계가 황량해진 주요 원인입니다. 두 번째, 천주 성자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오셨고 그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천주 성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기반 위에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하셨는데, 진리를 선포하셔서 그분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역사도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령 역사를 얻고 생명 수의 공급과 양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장소에 머무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 성령 역사를 잃고 흑암 가운데로 떨어져 소극적이고 연약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아모스 4:7)”
비록 저는 마지못해 ‘진지’ 하게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 걱정이 되어 형제가 교제해 주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저는 여전히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지지 않았는데, 그날 형제가 교제해 주었던 내용들이 계속 저의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날 형제가 교제한 것도 일리가 있어, 나 역시 성당에는 성령 역사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잖아. 설마 천주님께서 정말로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신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천주님을 오랫동안 믿었고 천주님께서도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천주님을 배신할 수 없지!’ 속에서는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계속 알아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루는 주일날 미사에 참석하려고 성당에 갔다가 뜻밖의 광경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전 같으면 미사가 벌써 시작되었겠지만, 그날은 성당에 촛불도 전부 켜지지 않아 안이 매우 어두웠으며, 신도 몇 명만이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세상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부님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저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고 속으로 ‘성당이 갈수록 황량해지네! 설마 정말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가 말한 것처럼 천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시는 것일까, 새로운 사역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 역사를 잃는 것일까? 아, 설마 천주님의 사역이 옮겨졌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미사가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화상 앞에 서서 묵묵히 천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천주님, 당신은 정말로 이미 성육신하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당신의 재림입니까? 천주님, 저를 인도해 주세요….’ 기도가 끝나니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땅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숨을 내쉬었고 속으로 ‘성당에 성령 역사가 없다면 당연히 성령 역사가 있는 성당을 찾아야 옳지! 안되겠어, 나는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알아봐야겠어.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천주 성자 예수님의 재림이라면 받아들여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계속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다시 가서 말씀을 들었는데 제 마음이 평온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곤혹스러워했던 것들을 말했습니다 “전에 당신들이 성당이 황량해진 원인을 교제했는데, 저도 인정합니다. 지금 성당은 확실히 황량하고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제가 천주님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고 천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많은 은혜를 누렸는데, 만일 제가 천주 성자 예수님을 떠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천주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방면에 대해 여러분은 말해 줄 수 있나요?”
저의 질문에 유 자매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제기한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해요. 우리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주된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율법시대 말기에 천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천주 성자 예수님이 되셔서 율법시대의 기반 위에 또 한 단계의 은혜시대 사역을 하신 것처럼 말이에요. 천주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천주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천주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 천주님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 간 사람들입니다. 마치 베드로, 요한,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들은 천주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바로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차려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따름으로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고 성령 역사를 얻었어요.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른 것입니다. 그들이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거절한 사람, 즉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은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도태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세 천주님께서는 그분의 경륜에 따라, 인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 사역의 기반 위에, 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충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몇 단락을 보면 더 분명해 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은 모두 세 단계로 나뉜다. 다시 말해,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모두 세 단계로 나뉜다. 이 3단계 사역에 창세의 사역은 포함되지 않고 율법시대의 사역과 은혜시대의 사역, 하나님나라시대의 사역만 포함된다.』(<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그리고 예수부터 이 단계의 사역까지 세 단계 사역이 이어져 오면서 완전한 경륜이 되었는데,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역사하면서 인류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시대를 펼치는 분이자 시대를 끝내는 분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3단계 사역을 따로 갈라놓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역사 이상 3> 중에서),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자, 모든 6천년 경륜이 앞으로 발전한 것이다. 은혜시대는 끝났으나,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가며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연장선에 있으며, 율법시대 사역의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은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단계 사역을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 예수의 사역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이번 단계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역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진보한 것이며, 이에 따라 사역 또한 예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의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그리고 예수가 이룬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세워진 것이지, 따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을 종합해야 비로소 6천년 경륜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중에서)”
“세 단계의 사역은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저는 이런 새로운 말씀을 처음 들었고 말씀에 깊이 끌렸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3단계 사역은 율법시대, 은혜시대, 그리고 하나님나라시대로 나뉘는데, 3단계 사역을 다 천주님께서 하신 것인가? 그러면 천주님은 왜 3단계 사역을 하시는 것일까? 천주님의 3단계 사역은 어떻게 하신 것인가?’ 저는 마음속으로 아주 흥분되었고 그 속의 오묘한 비밀들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재림] 관념을 내려놓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네
이 자매는 컴퓨터를 켜 3단계 사역의 화면을 보여주며 교제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3단계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구약 율법시대, 두 번째는 신약 은혜시대, 세 번째는 계시록에 예언된 하나님나라시대 입니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시대에 행하신 사역입니다. 비록 시대가 다르고, 사역이 다르고, 하나님의 이름도 다르고,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성품도 다르지만, 한 분의 영이 행하신 사역인 것입니다. 3단계 사역은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매 단계로 갈수록 더 높고 깊이가 있습니다. 한 단계라도 빠지면 사람을 사탄의 권세하에서 완전하게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구약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역사하셨고 위엄과 진노, 긍휼과 저주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최초의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끄셨고, 사람에게 무엇이 죄이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하고, 누가 율법을 범하면 돌에 맞아죽거나,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사람들은 점점 더 타락되어 죄악은 갈수록 많아져 이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율법에 정죄당하고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또 한 단계의 새로운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율법시대를 끝마치셨고 나타내신 성품은 자비와 긍휼로 회개의 말씀을 가져다주셨으며,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며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울러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셨으며, 마지막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를 사탄의 손에서 구속해 내셨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죄를 지어도 천주 성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죄를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지만, 사탄의 타락 성품은 결코 벗어버리지 못해 여전히 늘 죄를 짓고 하나님께 얻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 속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시기 위해, 또 한 번 성육신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수백만 자에 이르는 말씀을 선포하셔서 사람의 타락 성품을 드러내어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심으로,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의 본성을 알고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분명히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에게 타락된 근원과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사탄의 타락된 성품을 벗는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드러내는 사탄의 성품을 알게 하고 반성하며,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점차적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서서히 변화되며 생명 성품에도 점차적으로 변화가 있게 되어, 최종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의해 아름다운 종착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의 경륜에 근거하고, 또 인류의 타락된 정도에 근거해 행하신 서로 다른 사역입니다. 매 단계의 사역은 앞 단계 사역의 기반 위에 행하는 것으로, 단계마다 갈수록 더 높아지고 깊이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저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사역만 행하신다면 사람을 철저히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3단계 사역만이 인류를 사탄의 권세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나니 제 마음은 훨씬 밝아졌습니다. 저는 기쁜 심정으로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3단계 사역은 한 분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거였군요. 단지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과 이름,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성품도 다른 거였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탄의 권세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기 위해 3단계 사역을 행하셨군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나라시대 사역은 천주 성자 예수님 사역의 기반 위에서 행하신 것으로, 한 단계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이였네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죄성을 벗어 정결케 되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는 거네요! 저는 이번에 깨달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님의 새로운 사역을 따르는 것이고 천주님을 영접하는 것임을요.”
저의 말을 들은 자매님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게 된 것은 다 천주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천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의 비밀들을 열어주셨습니다. 즉,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의 취지, 성육신의 비밀, 사탄은 어떻게 인류를 타락시켰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는지, 인류의 종착지와 결말, 사람이 어떻게 추구해야만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등등의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속에서 천주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진리를 추구함으로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됩니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거절하는 사람들과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재난 속으로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는데, 드러나 도태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 사람들을 각기 부류 대로 나누고 마지막에 상선벌악하는 것입니다. 모든 경륜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하시는 것으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양 형제가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었습니다. 『네가 3단계 사역에 대해, 다시 말해 전체 경륜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앞 두 단계의 사역을 현재까지 연결 지어 한 하나님이 행한 사역임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너의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될 것이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 한 분이 행한 것이다. 이것은 최대의 이상에 속하고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다. 3단계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고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로지 하나님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3단계 사역을 알고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정확하고도 전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을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영원히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만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단계 사역으로만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그런 앎은 그야말로 바닷물 한 방울만큼이나 너무도 적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수많은 원로 종교가들이 하나님을 무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지정된 범위 안에 규정해 놓은 까닭이 아니냐?』(<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사람의 설교 교통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큰 이상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3단계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한 단계 사역에서만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만 하고 사람들에게 은혜만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이라고 알거나, 하나님의 이름은 오로지 예수로만 불린다고 여긴다면, 아주 쉽게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제한하게 됩니다. 마치 당초에 유대교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들이 교만하여 자신들의 관념과 상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규정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천주 성자 예수님이 메시아로 불리지 않아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겼고, 또 곳곳에서 약점을 잡고 예수님을 대적하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큰 죄를 지어 징벌을 받았고, 이스라엘은 약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었던 것입니다. 지금 온 교계의 목사, 장로, 신부, 교구장들도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고 교만한 본성으로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고수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는데,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우리들도 하나님의 3단계 사역의 이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천주교의 신부나 교구장을 따라 아주 쉽게 하나님의 사역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본질은 아주 엄중한 것으로 틀림없이 하나님께 구원받는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설교 교통을 듣고 저는 흥분되어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천주님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3단계 사역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요. 만일 천주님의 3단계 사역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천주님을 규정하고 대적하여 재림의 천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잃게 되는 거네요. 그러면 천주님을 몇 년간 믿은 저의 신앙은 헛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천주님께 칭찬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천주님을 믿지만 오히려 천주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는 거네요!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저는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얼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알아봐야 겠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기쁜 표정으로 “그래야지!”라고 말했고, 언니와 형제자매들은 기쁜 표정으로 제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적극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복음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성당에서는 알지 못했던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사역의 비밀,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시는지와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는 의의 등등입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복음 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통해, 천주님의 새로운 사역에 대해 더는 의심하지 않았고, 저와 천주님의 관계도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마음도 갈수록 해방되어 자유로웠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천주 성자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시간이 길진 않지만, 20여 년 천주님을 믿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진리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재난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지금, 세상 사람들조차 이제는 말세라고 합니다. 더구나 주님의 재림 예언이 이루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휴거 되어 (들림 받아)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중으로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환난 전에 휴거 돼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휴거(들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의문과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으신 분은 함께 답을 찾아봅시다.
[말세 예언] 휴거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환난 전에 휴거될 수 있는가?
휴거란 정말 하늘로 올려지는 것인가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많은 크리스천이 이 성경 구절을 보고 주님이 오시는 날 하늘로 들림 받아 주님과 만날 그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도 바울이 한 말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도, 계시록의 예언도 아닙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데 있어 바울의 말이 정확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의 말이 주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말세에 주님이 어떻게 오실지, 성도들을 어떻게 하나님나라로 데려가실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한 사도에 불과한 바울이 어떻게 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맞이하는 이렇게 큰 일에 있어서는 주의 말씀을 근거로 해야 정확합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계시록 예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2~3),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 11:15). 이 예언들을 살펴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실 것이고, 인간을 위해 예비하신 종착지도 이 땅에 있을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늘로 올려지기만을 바란다면, 그건 우리의 관념과 상상이 아닐까요?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선 사람을 하늘로 들어 올리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후, 사람이 이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며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은 노아 일가를 하늘로 들어 올려 홍수를 피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사람은 율법을 거슬러 죽어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공중으로 올려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성육신하여 땅에 오셨고, 실질적으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하나님은 줄곧 땅에서 인류의 구원 사역을 하시고, 인류가 생활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인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중으로 올려지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소망입니다.
휴거란 무엇인가
그러면 들림 받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먼저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 택하는 이 일을 의미한다. 즉, 예정되고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을 놓고 한 말이다. 누군가 장자의 명분을 얻든, 아들의 명분을 얻든, 또는 백성의 명분을 얻든 전부 들림 받을 대상이다. 이는 사람의 관념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미래의 내 집에 분깃이 있는 자라면 전부 들림 받아 내 앞에 올 자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는 들림 받아 내 앞에 온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4편> 중에서)
이처럼 들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처럼 공중으로 올려져 주님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림 받다’란, 하나님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고 이에 순종하게 되는 것, 그렇게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들림 받다’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전에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실 때처럼 말이죠. 그때 베드로, 사마리아 여인, 야고보와 같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주님의 음성임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바로 곧 오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확신하고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은혜시대 주님 앞으로 들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말세에는, 대재난이 시작되기 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 하나님 앞에 들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환난 전 휴거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하고 환난 전 들림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 미리 예언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계시록 2장과 3장에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여러 번 예언됐습니다. 또 3장 20절에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중에서)
하나님은 주님을 맞이하려면,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 어디서 성령이 교회들을 향해 음성을 발하시는지, 어디에 하나님의 현현 사역이 있는지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걸음을 찾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중시하지도 않고, 그저 하늘의 구름만 바라보며 주님이 오시면 공중으로 올려지기만 기다린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주님을 맞이할 수 없고, 결국 돌아오신 주님께 들림 받을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자취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은 또 어디에서 음성을 발하실까요?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만 전 인류를 향해 주님이 오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말세에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만 자가 되는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진리의 비밀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6천 년 경륜, 성육신의 비밀, 성경의 비밀을 전부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는 말씀을 선포하셔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우리 인간의 실상과 여러 가지 사탄 패괴 성품을 모두 폭로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면, 스스로의 패괴함을 알게 되고, 자신이 교만함, 독선적, 이기심, 비열함, 교활함과 간교함 등 사탄의 성품만을 드러내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존재임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고 탄복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신 성품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은 모두 진리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가운데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각 교파에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말씀에 깨어나 보좌 앞에 돌아왔고 말씀으로 양육과 공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실로 권병과 힘이 있음을 느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재림 예수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환난 전 휴거 된 사람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의 음성은 온 땅에 전해질 것이다. 나는 선민을 향해 더 많은 음성을 발할 것인데, 큰 우레처럼 산천을 뒤흔들 것이다. 나는 온 우주와 인류를 향해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진귀한 보물로 귀히 여긴다. 번개가 동방에서 서방까지 번쩍인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떠나기 아쉬워하고 측량하기 어려워하며, 또한 나의 말로 인해 기뻐한다. 모두 갓난아기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내가 돌아온 것을 경축한다. 나는 음성을 발해 모든 사람을 내 앞으로 이끌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인류 가운데 들어가 모든 사람이 내게 와서 예배하게 할 것이다. 나는 영광을 비춤으로써, 또 입으로 말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내 앞에 오게 하여, 번개가 동방에서 나타났고 또한 내가 동방의 ‘감람산’에 강림했고 땅에 왔음을, 나는 더 이상 ‘유대의 아들’이 아니라 동방의 번개임을 보여 줄 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부활하여 사람을 떠났다가 다시 영광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만세 전에 사람들이 경배했던 자이고, 만세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렸던 ‘아기’이며, 더욱이 영광으로 충만한 이 시대의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사람을 나의 보좌 앞으로 데려와 내 영광의 얼굴과 내 행사를 보여 주고, 내 음성을 들려줄 것이다. 이는 내 뜻의 전부이자 내 계획의 마지막이고 절정이며, 내 경영의 근본 취지이다. 바로 모든 나라가 예배하게 하고, 모든 입이 인정하게 하며, 만인이 신뢰하게 하고, 만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중에서)
[말세 예언] 휴거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환난 전에 휴거될 수 있는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 창조주께서 전 인류를 향해 하신 말씀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향해 그분이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계심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난 전에 들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환난 전 휴거에 관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되셨나요?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테마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지금 성경 예언에 나오는 말세의 현상이 모두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마지막 때에 주의 재림을 맞이하고 보좌 앞으로 들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은 하단의 온라인 채팅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또는 메일이나 앱을 구독하시면, 매주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재난 전에 들림 받아
대재난이 곧 닥치는데, 어떤 사람들이 재난 전에 휴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재난 전에 휴거하여 주님과 함께 잔치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휴거할 수 있는 4가지 조건, 그 비밀을 풀어드립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은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 마지막 때에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슬기로운 처녀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는 우리가 재림 주를 맞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글을 통해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들어가는 길을 알아봅시다.
➯ 열처녀의 비유
[예수 재림]열 처녀의 비유 —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25:1~12)
어느 날, 북쪽 지역에서 돌아온 동생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빨리 오라며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 예감에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동생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책을 읽는 동생의 모습을 본 저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가 온 것을 본 동생은 벌떡 일어나 기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언니, 내가 이번에 북방에서 좋은 소식을 가져왔어.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대!”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최근 ‘동방번개’에서 계속 예수님이 돌아오셨다고 증거하던데, 설마 동생이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저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언니, 주님이 육신을 입고 중국에 오셨어.” 이 말에 저는 급히 동생의 말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좀 곧이곧대로 믿지 마! 하나님이 중국에 오실 수 있을 것 같니? 성경에 똑똑히 써 있잖아.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슥 14:4)라고. 하나님께서 오시면 이스라엘로 가시지, 중국에 오지는 않으실 거야. 사역한다는 네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니!”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구조(救助)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타락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예비한 것입니다. 그 구원에는 진리, 길, 생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구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율법시대에 있었던 인류는 초태생의 인류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 간음하지 말라는 것,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 나아가 제사 드리는 규례, 음식물에 관한 규례, 도적질 배상에 관한 규례, 가축을 잡는 것에 관한 규례 등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정확한 준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범하게 되면 벌을 받아야 했지만, 죄를 대신할 제사를 드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명과 율법으로 사람을 단속하셨고,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계명과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의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2.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율법시대 후기에, 점점 심하게 타락한 인류는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많은 일들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상 숭배, 음행, 악한 생각, 간교함과 거짓말 도적질과 강도, 횡령과 뇌물 수수 등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절름발이 우양과 눈먼 비둘기 등으로 제사를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예레미야 14:10)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곧 성육신하신 인자로 오셔서 인류를 위해 다시 한 번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곳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 내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며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온전히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은혜시대의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주의 이름으로회개의 기도를 하면, 죄 사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는 율법을 거슬러 정죄받고 죽음에 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의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입니다.
3.말세에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구원
[성경 비밀]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베드로전서 1:13)
어느 서적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패괴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다.』(<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예수님이 구속을 완성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사람의 죄의 뿌리는 아직 뽑히지 않아 패괴 성품이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만함, 스스로를 크다함, 이기적, 비열함, 간교함, 개인 이익주의 등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패괴 성품 때문에 우리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친구 간에도 서로 시기 질투하고, 경쟁하고 의심하고, 배신합니다. 나아가 가족, 친족 사이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정도입니다. 또 질병의 고통이나 재앙의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또 열심히 헌신하며 사역하고 많은 힘을 바쳤음에도 바라던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불만불평이 터집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며, 낮에는 죄를 짓고 저녁이면 죄를 자복하는 삶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더러운 사람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층 더 깊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패괴된 성품이 정결함을 받으므로 완전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이처럼 하나님은 말세에 주님이 돌아와 심판하는 사역을 하나 더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모든 비밀을 열어 주시며, 우리의 모든 패괴함을 벗겨 버려 더는 낮이면 죄를 짓고 밤이면 죄를 자복하는 악순환에서 살지 않도록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예비하신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온전한 구원을 얻으려면, 누군가 하나님의 재림을 전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 사역을 시작하셨다고 증언할 때, 마땅히 가난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과거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람들도 메시야가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적극적으로 찾고 구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고 주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있을 주의 재림에 대해서도 우리는 과거의 사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 3장 2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인공은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다. 성년이 된 후에도 계속 교회에서 주님을 섬겼다. 2013년, 그녀가 다니던 교회가 세계 교회 협의회에 가입하게 된다. 그 협의회는 세계 교회 통일과 종교 다원성화를 권장하고 있다. 그녀는 담임 목사가 협의회에 가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주의 도를 행하지 않으며, 주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교회를 나와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몇 교회를 다녀도 하나같이 황량할 뿐, 목사의 설교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녀는 영적으로 공급받지 못해 갈수록 메말라감을 느꼈다. 괴로움에 주께 부르짖으며 주님이 오실 날만 애타게 기다렸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주의 재림에 관한 소식을 보게 된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영상을 보게 되는데, 그 말씀을 보고 매우 놀라게 된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돌아오신 주님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본다. 그러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증인의 교제를 통해 그녀의 의문이 모두 풀리게 된다.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애타게 기다렸던 주님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그 후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메말랐던 영혼이 생수의 공급을 받게 되고, 진정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의 물을 마시게 된다.
이제 말세의 끝이 우리 목전에 이르렀고 주의 재림에 대한 예언은 이미 대부분 실현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만이 예수께서 육신으로 재림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사실을 모든 인류에게 공개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해 모든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이 진리는 성령이 말세의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 앞에 들림 받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재림하신 예수임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방법
성경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란?> 중에서
『하나님이 한 말씀은 겉으로 봤을 때 이해하기 쉽든 심오하든, 전부 사람의 생명 진입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며,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가기 위한 생수의 근원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일상적인 처세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 방향을 공급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살아 나가기 위한 보장이자 일용할 양식이며, 사람을 굳세어지고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창조된 인류를 정상 인성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진리의 실제가 가득하고, 인류를 패괴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탄의 올무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진리가 가득하며, 창조된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가득하다. 그는 사람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알도록 인도하고 깨우치는 길잡이 등불이자, 사람이 모든 정의와 아름답고 선한 것을 구현하고 가질 수 있게 하는 보장이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구원과 광명의 길로 이끄는 등대이다.』
『이번에 온 하나님은 영체가 아닌 아주 평범한 몸으로 사역한다. 그 몸은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몸이며, 또한 하나님이 다시 육신을 입고 돌아온 몸이고, 아주 평범한 육신이다. 너는 그에게서 남다른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 보잘것없는 육신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진리의 말씀의 화신이고, 하나님이 하는 말세 사역의 담당자이며, 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 알게 하는 존재다. 너는 하늘의 하나님이 몹시 보고 싶지 않았더냐? 너는 하늘의 하나님을 몹시 알고 싶지 않았더냐? 너는 인류의 종착지를 몹시 보고 싶지 않았더냐? 그는 지금껏 아무도 알려 주지 못했던 이 모든 비밀을 너에게 알려 줄 것이고, 또한 네가 깨닫지 못한 진리도 알려 줄 것이다. 그는 너를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대문이자 너를 새 시대로 이끄는 인도자다. 이런 평범한 육신에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많이 깃들어 있다. 그의 행사는 네가 분명하게 측량할 수 없지만, 그가 행하는 사역의 모든 목표를 통해 너는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육신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세의 뜻을 대변하고, 말세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너는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불꽃 같은 그의 두 눈을 볼 수 없으며, 그의 철장(鐵杖)의 다스림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는 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있음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도 엿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깨달을 수 있다.』
―<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 중에서
『나는 우주 전체에서 나의 사역을 하고 있다. 동방에서 끊임없이 우레 같은 음성을 발하여 각 나라와 교파를 뒤흔들었으며, 나의 음성으로 사람을 오늘까지 이끌어 왔다. 나는 사람을 나의 음성으로 정복하여 모두를 이 흐름 속으로 빠지게 하며, 내 앞에 복종시킨다. 이는 내가 이미 온 땅에서 영광을 거두어 동방에서 새롭게 비추었기 때문이다. 누군들 내 영광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내가 돌아오기를 갈망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내가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누군들 나의 사랑스러움을 그리워하지 않겠느냐? 누군들 빛을 따라오지 않겠느냐? 누군들 가나안의 풍요로움을 보지 않겠느냐? 또 누군들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겠느냐? 누군들 위대한 능력자를 흠모하지 않겠느냐? 나의 음성은 온 땅에 전해질 것이다. 나는 선민을 향해 더 많은 음성을 발할 것인데, 큰 우레처럼 산천을 뒤흔들 것이다. 나는 온 우주와 인류를 향해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진귀한 보물로 귀히 여긴다. 번개가 동방에서 서방까지 번쩍인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떠나기 아쉬워하고 측량하기 어려워하며, 또한 나의 말로 인해 기뻐한다. 모두 갓난아기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내가 돌아온 것을 경축한다. 나는 음성을 발해 모든 사람을 내 앞으로 이끌어 올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인류 가운데 들어가 모든 사람이 내게 와서 예배하게 할 것이다. 나는 영광을 비춤으로써, 또 입으로 말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내 앞에 오게 하여, 번개가 동방에서 나타났고 또한 내가 동방의 ‘감람산’에 강림했고 땅에 왔음을, 나는 더 이상 ‘유대의 아들’이 아니라 동방의 번개임을 보여 줄 것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부활하여 사람을 떠났다가 다시 영광을 지니고 인간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만세 전에 사람들이 경배했던 자이고, 만세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버렸던 ‘아기’이며, 더욱이 영광으로 충만한 이 시대의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는 사람을 나의 보좌 앞으로 데려와 내 영광의 얼굴과 내 행사를 보여 주고, 내 음성을 들려줄 것이다. 이는 내 뜻의 전부이자 내 계획의 마지막이고 절정이며, 내 경영의 근본 취지이다. 바로 모든 나라가 예배하게 하고, 모든 입이 인정하게 하며, 만인이 신뢰하게 하고, 만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리다 ―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우주로 퍼져 나갈 것을 예언하다> 중에서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예전에 알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과 권병, 존귀,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후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을 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방법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다양한 위치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깨우치고, 마음의 소리를 전하셨다. 생명력을 가진 그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었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었으며,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셨다. 또한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고, 우리의 종착지와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뎠으며, 또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도 우리의 본성과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지 못하며, 어떤 이도 인류의 패역과 패괴를 심판하지 못하고, 어떤 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거나 사역할 수 없었다. 또한, 그 말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와 존엄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은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현되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거나 빛을 가져다줄 수 없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밝힐 수 없었고,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를 사탄의 속박과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한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당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사역을 가져왔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미망 속에서 보내던 우리의 삶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게 하였고, 우리를 정복했으며,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생겼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우리들 가운데서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버림받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수가 아닌가? 이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분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다! 이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광명을 보게 했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방랑하지 않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그에게 완전히 정복되었고,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도, 그의 사역과 말씀에 맞서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의 앞에 오롯이 엎드려 이생에 하나님의 발자취만 따르리라 다짐하였고, 그에게 온전케 되고 그의 은총과 사랑에 보답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또한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그의 사역에 협력하며, 온 힘을 다해 그가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 20) 지금까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은 어떻게 문을 두드리실까요? … 말세에,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온 교계를 들썩이게 하였습니다. 주인공 양애광도 열심히 사역하며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그들은 양애광에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합니다. 양애광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 크게 감동받지만 목사의 그릇된 논리에 미혹되어 있다 보니 간증인들을 문밖으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간증인들은 수차례 문을 두드리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증거해 줍니다. 그 과정에서 양애광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목사의 방해 사이에서 분별이 없어 갈등을 하게 되는데…
성경 참고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1~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열 처녀 비유]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떻게 신랑을 맞이하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어떻게 내쳐지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하나님의 자취를 찾았다 생각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이 나타난 것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나타날 리도 없고, 사람의 요구에 따라 나타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그리고 자신의 목표와 방식에 따라 사역을 한다. 그는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주 안에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지 말아야 한다. 대신 하나님의 자취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중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오늘날 너희는 성령의 말씀을 들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였는데, 너희는 들었느냐?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 사역을 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곧 성령이며, 또한 하나님은 성육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이야기했던 성령의 말씀이 바로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많은 그릇된 자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사람이 듣게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의 말씀이란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한 말씀을 가리킨다. 성령이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오늘날 이 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여 사역하려면 반드시 성육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영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지금이 성령의 시대라고 여기면서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모두 막연한 신앙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자는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한다. 성령이 직접 말씀하고 역사하기만을 바라며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영원히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 새로워지고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아진다.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으며,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듯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면 언제라도 도태될 수 있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끝까지 따라갈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지나가고 지금은 새로운 시대다. 새 시대에는 새 사역을 한다. 특히 사람을 온전케 하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은 더 새로운 사역을 더 빠르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어느 단계의 사역도 영원불변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고, 언제나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한다. 그의 사역은 한 단계 한 단계 더 실제적이고, 행할수록 점점 더 사람의 실제적인 요구에 부합하게 된다. 사람은 오직 이런 사역을 체험해야만 최종적인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므로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 또한 점점 높아진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케 되어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해진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역은 한편으로는 사람의 관념을 깨서 바로잡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더 높고 실제적인 경지에 진입하고, 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높은 영역에 진입하도록 인도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본성이 패역하고 고의로 대적하는 사람들은 빠르고 거센 이 단계 사역에 의해 모두 도태될 것이다.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만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다. 이러한 사역에서 너희는 모두 순종하기를 배우고 관념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하며 발을 내디딜 때마다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세심하게 행동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한다면 반드시 성령께 버림받는 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가 될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걸음을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글귀나 이치만을 고집스레 지키는 자는 모두 성령 역사에 의해 도태될 자이다. 하나님이 시기마다 새 사역을 전개하므로 사람에게는 시기마다 새로운 시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진리들을 지킨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를 따라갈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 아무 의심도 없이 바짝 따라간다면, 사람이 어찌 성령에 의해 도태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 성령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 걱정 없이 성령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성령의 현재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떠했는지, 예전에 성령이 그 사람에게 어떤 역사를 했는지에 상관없이 최신 사역을 얻은 사람은 모두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반면, 오늘날 최신 사역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로운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며, 최신 사역을 받아들이고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어째서 정결한 처녀가 되라고 말하겠느냐? 그런 사람만이 성령의 역사를 찾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낡은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오늘날 역사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최신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한, 가장 복된 사람들이다. 너희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현현을 보았으므로 천상천하, 만세와 만대에 너희보다 복된 자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가져다준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이 영원히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도에 순종해야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을 거부한 채 복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말세에 그리스도가 온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네가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반드시 영원히 불태워질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이 그리스도는 성령의 발현이자 하나님의 발현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명심해라. 네가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린다면 아무도 너 대신 그 대가를 치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만회하고자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대적하고 저버린 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느냐? 너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진리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사실을 외면한 채 함부로 말하지도 말라. 너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 천사장의 후손,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될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을 믿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하며 자신을 과신하는데, 그런 인간 말종들이 어찌 예수에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기호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고 함부로 단정짓지 마라.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본 후, 그 말씀 중에서 단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여겨진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여기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미약하게나마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에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자꾸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과연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혹자는 몇 마디 보지도 않고 “이것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라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정죄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적다. 그러니 나는 너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너희는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고, 미혹될 것이 두려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여러 번 살펴보고도 이런 말씀이 진리도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결국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도, 덤벙대지도 말라. 하나님 믿는 일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지도 말라. 자신의 종착지와 앞날,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야지, 스스로를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 말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계 3:20) 이 예언은 주의 재림에 관한 것으로, 돌아오신 주님은 우리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두드릴까요? 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돌아오신 주님은 어떻게 문을 두드리시는가
돌아오신 주님은 어떻게 문을 두드리실까요? 이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예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보다시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만이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아오신 예수님은 어떻게 음성으로 문을 두드리실까요? 사람의 상상대로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며 당신이 왔다고 우리에게 알리실까요? 사실 주님은 벌써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그리고 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7번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보면 돌아오실 주님은 교회에 하실 말씀이 있고 진리로 사람에게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훈계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주님이 말세에 오시어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두드림의 실제 함의입니다.
『과거, 어떤 이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예언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조금 해석해 주도록 하겠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란 다 사람의 수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사람의 수를 가리키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둘은 장자들을 의미하지 않으며, 모두 피조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세에 기름을 준비하라고 한 것이다(피조물은 원래 내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다. 슬기로운 자가 되려면 반드시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내가 만든 사람 중, 아들들과 백성들을 뜻한다.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얻어졌으므로 거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녀’라고 부른 것이다. ‘다섯’은 내가 예정한 아들들과 백성의 수를 뜻한다. 한편, ‘미련한 다섯 처녀’란 봉사자들을 가리킨다. 봉사자는 나를 위해 힘을 쓰며, 생명은 조금도 중시하지 않고 오직 외적인 일만을 추구하므로(나의 자질이 없으므로 어떻게 해도 외적인 일임) 나의 유능한 조력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미련한 처녀’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다섯’은 사탄을 의미하며, ‘처녀’는 나에게 정복되고, 나를 위해 힘쓸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 부류의 사람은 거룩하지 않으므로 봉사자라고 부른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16편> 중에서
말세 그리스도의 현현과 사역ㅡ슬기로운 처녀란? 미련한 처녀란?
『오늘날,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현재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현재 뜻을 깨닫고 하나님이 현재 요구하는 대로 행하고, 또한 오늘의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며, 하나님의 최신 말씀에 따라 진입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를 따라오는 사람이자, 성령의 흐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사람의 관념과 패역, 사람의 본성과 본질도 알 수 있다. 또 섬기는 과정에서 성품이 점차적으로 변화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며, 진정으로 참도를 찾은 사람이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 도태된 사람은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등 돌린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그들의 관념 속 하나님의 형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여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려졌다.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 사역에 순종하는 마음, 하나님의 사역을 찾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볼 기회와 성령의 최신 인도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고의로 하나님의 역사를 저지하는 자들은 모두 성령의 깨우침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얻을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선대에 달렸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추구와 마음가짐에도 달렸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의 현재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그 사람이 어떠했는지, 예전에 성령이 그 사람에게 어떤 역사를 했는지에 상관없이 최신 사역을 얻은 사람은 모두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반면, 오늘날 최신 사역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로운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며, 최신 사역을 받아들이고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어째서 정결한 처녀가 되라고 말하겠느냐? 그런 사람만이 성령의 역사를 찾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낡은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오늘날 역사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사탄에게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 사람이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는, 도태될 대상이다.』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이 특정 형식이나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 것은 그가 계획해 놓은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이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유대에서 성육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할 리 없고, 예수의 형상으로 성육신할 리 없다고 여겼다. 그들의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근거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정죄한다. 그들은 ‘그럴 리 없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나타남을 또 한 번 자신의 상상 속에 한정 지었다. 그리하여 나는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는 미친 듯이 웃어 대는 것을 보았다. 그 ‘웃음’이 바로 유대인들의 정죄나 모독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너희는 진리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며,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는다. 그저 덮어놓고 연구하며 무심히 기다릴 뿐이다. 그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인도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조차 분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에 진리가 선포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나타난 것을 볼 자격이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중에서
참고 설교:
『‘슬기로운 처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신랑’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순종하며,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미련한 처녀’는 ‘신랑’의 음성을 알지 못하고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막연한 하나님만 바라보다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참된 믿음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는 ‘사랑하는 이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님에 의해 천국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말세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그리스도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믿음의 성공 여부를 결정합니다.』
― 상부의 교제 중에서
『성경을 보면 주께서 그분의 재림을 예언하실 때 두 부류의 사람을 언급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즉, 은혜시대의 모든 신자를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슬기로운 처녀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은 미련한 처녀입니다. 미련한 처녀가 들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는 무엇에 의해 드러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 즉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을 보고 보이는 태도에 따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담고 있는 깊은 말씀이네요.”라고 이야기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본 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긴 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입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며, 슬기로운 처녀입니다. 반면 일부 목사, 장로, 설교자, 또한 떡으로 배불리려는 어리석은 자는 미련한 처녀에 해당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이 말씀은 내 생각과 달라. 난 이렇게 생각 안 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다시 본 후 역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이치에 맞는 말씀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그러실 리가 없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며, 결국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니 받아들일 수 없어. 이건 가짜이고,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니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리새인이며 미련한 처녀입니다. 이렇듯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써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시고, 착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십니다.』
― ≪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 중에서
『슬기로운 처녀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압니다. 그 주된 이유는 진리를 사랑하고 찾으며,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는 일을 구하거나 알아보며, 주님의 음성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주님이 오시는 일을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규례를 지키기만 할 뿐입니다. 이들 중에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이 아니면 받아들이지도, 알아보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휘둘려 그들의 말만 듣고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명목상으로는 주님을 믿지만 사실 목회자의 말만 따르고 순종할 뿐입니다. 스스로 참도를 찾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의 음성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며 참그리스도를 찾거나 알아보기는커녕 이를 부인하고 정죄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두가 미련한 처녀의 모습입니다.』
2020년 세계 곳곳에서 지진, 기근, 온역(전염병), 홍수, 가뭄 등의 재앙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기본적으로 다 이뤄짐에 따라 주의 날이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말세에 나타나 하시는 사역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어떻게 해야 주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를 통해 마지막 때에 주님이 돌아오시면 말씀을 하여 문을 두드리심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한 자는 환란 전 휴거 되어 주와 함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과 구체적인 실행의 길을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진리의 선포와 하나님 음성이 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하나님의 음성과 나타남 볼 수 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그럴수록 더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그럴수록 더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 더 높고 하나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불가능한 것일수록 찾아야 할 진리가 있는 법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일수록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시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시든 하나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 찬양]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나님의 음성 듣는다
너의 생각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차분히 차분히 하고 이 말씀을 보라, 이 말씀을 보라 이 말씀을, 이 말씀을, 이 말씀을 보라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면 그의 말씀과 뜻을 깨우쳐 주신다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면 그의 말씀과 뜻을 깨우쳐 주신다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 성품은 바뀔 리 없다 하나님 성품은 바뀔 리 없다 그는 언제나 전 인류의 하나님 예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전 우주의 유일하신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에서 하나님 뜻을 찾고 하나님 나타남 발견하고 하나님 나타남 발견하고 하나님 발걸음 따라가자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니 그의 말씀과 나타남은 공존하며 그의 성품과 발자취는 언제나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 찬양]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나님의 음성 듣는다
형제자매여, 이 말씀에서 하나님 나타남 보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 새 시대로 나아가라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려 온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가 준비해 놓은 아름다운 새 하늘 새 땅으로 들어가라 너의 생각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차분히 차분히 하고 이 말씀을 보라, 이 말씀을 보라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면 하나님 말씀과 뜻을 깨우쳐 주신다 진리를 깨우쳐 주신다 깨우쳐 주신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자녀가 있는 것 또한 일종의 행복입니다. 가정에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지요.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교육 방식으로 인해 자녀들은 반항 심리가 많아지면서 늘 우리의 인내심과 이성에 도전장을 보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녀 교육은 큰 어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한다면 도움을 받아 자녀를 교육하는 정확한 방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리고 자녀 교육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아래의 구절을 통해 도움을 찾으시길 희망합니다.
[중요한 성경구절]자녀를 위해 부모가 꼭 알아야 하는 성경 구절 11가지
❑ 자녀 교육은 질타보다 격려입니다
올바른 자녀 교육은 질타가 아니라 격려를 해 주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아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격려를 통해 아이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바로 잡아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래의 구절을 보면서 올바른 자녀 교육 방식을 찾아 봅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로새서 3:21)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 자녀를 올바른 길로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세울 수 있도록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것이 부모로서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으며, 아이들 또한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아래에 자녀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는 알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명기 6:6~8)
기독교 영화<우린 주님을 맞이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오신 하나님을 기쁘게 맞이하다(복음 만담)
지금 보면, 주님의 재림 예언이 다 이루어졌고, 지금이 곧 주님을 맞이할 결정적인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나눔의 창구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2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을 맞이하여 들림 받아 천국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맞이하려면 무엇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까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 10:2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만담 <우린 주님을 맞이했어요>를 통해 두 교파의 성도가 주님을 맞이한 경험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여러분도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고 인류의 영원한 속죄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의 약속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래 내용과 함께 회개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실행의 길을 찾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13: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도행전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1서 1:8-9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시록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염병이 온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데, 이는 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구세주가 오셔서 재앙에서 건져 천국으로 데려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회개해야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주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에 매여 사는 모습이 진정으로 회개한 모습일까요? 주님으로 인해 다 버리고 착한 행실을 많이 했다고 해서 진정으로 회개한 것일까요? 만담 <당신은 정말 회개했는가>에서 그 답을 찾아보십시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현재 점점 더 큰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여기 나눔의 창구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진실하게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또한 늘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면 하나님의 깨우치심과 빛 비춤을 받아 생명이 나날이 커갈 수 있습니다. 그럼 진실한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진실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아래에 기도에 관한 성경 구절과 하나님 말씀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태복음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마태복음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6~7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레미야 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야고보서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진실한 기도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어떻게 진실한 기도에 진입하는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여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의 의의를 깨달을 수도 있지만, 기도에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기독교 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했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나타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말세에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심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세와 만대 동안 존재해 온 교회는 모두 성육신 하나님의 현현과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 하나님께서는 각 단계의 역사를 하실 때마다 수많은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었고, 그렇게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선민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성육신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역사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란 말씀을 전했고, 구속 사역을 하며 은혜시대에 사람이 실행하고 진입해야 할 진리를 알리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믿고 따르자 기독교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그 후, 주님의 복음이 각국 각계에 전해져 말세에는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세계 각국에 기독교 교회가 속속 들어섰는데, 이것이 바로 은혜시대의 교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육신을 입고 중국에 나타나 은혜시대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구속 사역을 토대로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6천년 경륜에 숨겨진 모든 비밀을 인류에게 밝히셨고,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할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나 하신 역사로 인해 기독교 종파에 속한 수많은 신자들이 오랜 믿음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재림하여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재림 예수란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이들 모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도 만들어지고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한 개인이 세운 것이 아니라 온전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로 인해 탄생한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중국 크리스천은 최소 수백만 명에 이릅니다. 의 모든 크리스천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재림 예수, 말세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현현임을 굳게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나눕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 즉 하나님께서 말세에 주신 영원한 생명의 도를 지킵니다. 예수께서 친히 열 두 사도를 선택하고 세워 사역하신 것처럼 성육신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께 쓰임 받아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할 자들을 친히 세우고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는 것일 뿐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에 의해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 선민이 믿고 따르는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시대의 교회는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사도가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고 목양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모든 교회를 양육하고 공급하고 이끌며 사람의 본분을 이행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선민을 이끌고 양육하고 공급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선민이 믿고 따르는 존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크리스천은 대부분 오랫동안 기독교, 천주교 등 각기 다른 종파에 속해 신앙 생활을 하다가 왔습니다. 모두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각 종파에서 주님의 재림,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고 말세 심판 사역을 하셨음을 증거합니다. 많은 이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고 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처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은 자들입니다.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는 영상물도 늘어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구하고 살피는 과정을 거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사 2:2)이란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모두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나의 백성은 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 제1편 말씀> 중에서)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같은 흐름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계획하고 정하신 것이므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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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신앙 문답]왜 하나님의 재림에는 은밀히 강림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에 와서 오랫동안 역사하고 생활하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즉 오늘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인식하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하나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영의 역사하는 기세가 얼마나 엄청나게 크든지, 하나님은 시종 아무 내색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내막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단계 역사가 천계에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누구나 다 볼 수는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인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는 사람이 모두 긴 꿈속에서 깨어나 평상시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기억하건대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은 마치 범의 굴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번에 역사함은 육신에 왔을 뿐만 아니라 큰 붉은 용이 군거한 곳에 강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번에 땅에 와서는 더욱더 극대한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면한 것은 총칼과 몽둥이이고 직면한 것은 시험이고 직면한 것은 만면에 살기등등한 사람 무리여서 수시로 피살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이 진노를 지니고 왔지만 그는 와서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한다. 즉 와서 구속 사역의 제2부분 사역을 잇는 것이다. 이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노심초사하였고 백방으로 시험의 공격을 피하였으며 비미은장(卑微隱藏)하면서 여태껏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지 않았다. ……만인이 다 새벽을 깨닫지 못하고 날이 금방 밝아올 때, 하나님이 땅에 와서 그의 육신의 생애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각의 도래를 사람은 전혀 모른다. 혹시 사람들이 다 깊이 잠들어 있겠고 혹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고 혹시 많은 사람들이 하늘 위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있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이미 땅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역을 더 순조롭게 전개하기 위해서이고 더 좋은 사역 효과를 위해서이며 또 더 많은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 잠에 동이 틀 때는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끝난다. 그는 땅을 떠나 땅에서 유랑하며 기거하던 그의 생애를 끝마칠 것이다.』
2천 년 전,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재난들이 갈수록 더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진, 전염병, 기근, 전쟁, 수해가 끊이지 않고 있지요.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했습니다. 놀랍도록 빠른 전파 속도로 불과 몇 개월 사이 전국 각지에서 감염 사례가 나왔고, 중국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성(省)과 시(市), 촌(村)들이 봉쇄되었고 사망자 수는 끊임없이 증가했습니다. 이 전염병은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전파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외에도, 2019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호주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로 현지의 5,900여 채 건물이 소실되고, 십억 마리의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월, 호주에 이번엔 백 년 만의 폭우가 내려 수많은 담수 생물이 홍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달, 인도네시아에서도 홍수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필리핀의 화산이 폭발하고, 아프리카는 25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았으며, 신장에선 6.4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성경 속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들이 모두 이루어졌으니, 주님이 분명 돌아오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아직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걸까요? 이렇게 가다간 모두 재난 속에 떨어지지 않을까요? 대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다,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 1:7),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라는 구절을 보고 주님은 분명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지금껏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걸까요? 주님은 오직 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오시는 걸까요? 사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우리 모두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실 거라는 예언도 있다는 것을요.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 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눅 17:24~25)
주님은 어떻게 오실까요
성경의 ‘도적 같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라는 구절들은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조용하고 은밀하게 강림하신다는 걸 말해 줍니다. 그럼 ‘인자’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인자’라 하면 사람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피와 살이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 가운데 생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인자’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영체는 인자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또한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많은 고난을 받으시며, 심지어 이 세대에 버림받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자가 되어야만 사람에게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통 사람처럼 대할 테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고난을 받게 되시는 겁니다. 만약 주님이 영체로 사람에게 나타나신다면, 좋은 사람, 악한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가릴 것 없이, 심지어 하나님께 대적하던 사람마저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겠으며, 또 하나님은 어떻게 고난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말세에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인자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는 걸 말해 줍니다.
2. 주님은 재림하여 어떤 사역을 하실까요
이 얘기를 하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말세에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여 사람들 가운데 사역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예언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사실, 하나님의 사역에는 계획과 절차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육신을 입고 은밀히 강림하셔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 후에 구름을 타고 다시 강림하셔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성경에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성경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말세에 오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님을 맞이해 주님 앞으로 들림 받습니다! 오늘날,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선포하셨고, 이는 모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은 전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진리와 비밀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류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사탄은 어떻게 인간을 패괴시키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대상인지,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과 종착지는 무엇인지 등등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우리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된 사람들은 모두 재난 전에 만들어진 이긴 자들로, 마지막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은밀히 사역하는 기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찾아보지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관념과 상상에 따라 성육신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고 내쳐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밀과 가라지, 양과 염소,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선한 종과 악한 종, 진리를 사랑하는 자와 진리를 싫어하는 자를 모두 드러내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십니다. 그 후, 하나님은 구름을 타고 강림하여 만국 만민 앞에 나타나셔서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하십니다. 이렇게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분을 버리고 정죄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악행 때문에 가슴을 치며 깊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시며, 지혜로우신지 볼 수 있습니다!
3. 어떻게 재림한 주님을 맞이할까요
오늘날,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한 무리 사람들을 정복하고 구원하셨고, 이긴 자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은 곧 끝이 나고, 이어서 각종 대재난이 내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어떻게 재림 예수님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거침없는 거센 파도와 같아서 아무도 그를 만류할 수 없고,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귀 기울여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찾고 갈망하는 자만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치명적인 재앙과 응분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온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당신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길 원합니까? 주님을 맞이하길 원합니까? 환난 전에 들림 받길 원합니까?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배워,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진리가 맞는지, 성령이 교회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맞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우리에게 겸허히 찾고 구하고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서 대환란 시기에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지 방향을 좀 찾으셨나요? 누군가는 예수님이 오셨다고는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가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미혹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신 걸 알아보고, 미혹받지 않겠냐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아래의 영상을 통해 진짜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는 방법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하단의 온라인 채팅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또는 아래의 메일이나 앱을 구독하시면, 매주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구세주의 강림을 보기를 소망했다. 구주 예수가 수천 년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 왔던 사람들 가운데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보기를 소망해 온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구세주가 돌아와 자신들과 재회하기를 소망했다. 바로 수천 년 전에 사람들을 떠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유대인 가운데서 했던 구속 사역을 또 행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대신 짊어지며, 심지어 사람의 모든 과오를 대신 짊어지고 죄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친절하며 존경스러운 구세주가 되어 사람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대신 짊어지며 심지어 사람을 위해 예전처럼 십자가에서 죽기를 소망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물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 그를 그렇게 간절히 그리워하고 그의 강림을 고대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기쁨이 넘치는 말세의 어느 날에 흰 구름을 타고 사람들 가운데 임하여 만인에게 나타나기를 소망했다. 물론, 이 또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소망하는 바이다. 온 우주에서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그가 세상에 있을 때 했던 “나는 떠난 그대로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간 것처럼, 여전히 유대인의 모습을 하고 유대인의 옷을 입은 채 흰 구름(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탄 흰 구름을 가리킴)을 타고 수천 년간 그를 애타게 기다려 온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나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가 솟게 하며, 은혜와 자비로 충만한 예수가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고정 관념이다. 하지만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게 하였다. 그는 자신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흰 구름을 타고 만인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강림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고만 있다. 사실 그는 이미 ‘흰 구름’(여기서 흰 구름은 그의 영과 그의 말씀, 그리고 그의 모든 성품과 어떠함을 뜻함)을 타고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비로 가득한 거룩한 구주 예수라 하더라도, 더럽기 그지없고 더러운 귀신들이 떼를 지어 사는 그런 ‘성전’ 안에서는 사역할 수 없음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 사람들이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가 어찌 또 불의한 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또 그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를 모르고 계속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내려는 그런 자들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자비와 긍휼로 충만하고 속량으로 가득한 속죄 제물이라는 것만 알 뿐, 공의와 위엄, 진노, 심판을 가득 지닌, 권병이 있는 존엄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간절히 바라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자신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생명 양식]‘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 제물을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 제물을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죄에서 인류를 속량한 속죄 제물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사람들이 말세에도 구주 예수가 강림하기를 소망하고, 유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서 강림하기를 소망한다면, 전체 6천년 경륜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구속시대에 머물 것이다. 또한 말세가 영영 도래하지도 않고, 시대를 끝내지도 못할 것이다. ‘구주 예수’는 단지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는 분이고, 내가 택한 ‘예수’란 이름은 단지 은혜시대의 모든 죄인을 위해 생겨난 이름이지 온 인류를 끝내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 예수 그리고 메시야는 모두 나의 영을 대표하지만, 이 이름들은 내 경륜의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할 뿐, 나의 모든 것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땅의 사람들이 부르는 나의 이름이 나의 모든 성품과 어떠함을 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시대에 따라 나에 대한 호칭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면 나의 이름은 또 바뀌게 된다. 여호와는 물론 예수라고도 칭하지 않고, 메시야라고는 더욱 칭하지 않는다. 대신 크나큰 능력을 갖춘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하는데, 나는 이 이름으로 전체 시대를 끝낸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예전에 알았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낸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을 가득 지니고, 권병과 존귀 그리고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들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종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임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말세에 강림한 구세주가 여전히 예수라 불리고 그때처럼 유대에서 태어나 사역한다면, 내가 이스라엘 사람만 만들었고 그들만 속량한다는 것이지 이방과는 무관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한 “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다.”라는 이 말과 모순되지 않겠느냐? 내가 유대를 떠나 이방에서 사역하는 까닭은 내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세에 이방에 나타난 것은 내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인 여호와일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선민의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라엘과 애굽 그리고 레바논은 물론, 이스라엘 외의 모든 이방 족속까지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다만 나는 이스라엘을 내 사역의 발원지로 삼았고, 유대와 갈릴리를 구속 사역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이방을 전체 시대를 끝내는 사역의 근거지로 삼았을 뿐이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의 사역(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사역)을 행했고, 이스라엘 외의 온 땅에서도 두 단계의 사역(은혜시대와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의 사역)을 행했다. 또한 이방에서 정복 사역을 함으로써 시대를 끝낼 것이다. 사람들이 늘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세에 새 시대를 개척했고 새 사역을 전개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주 예수의 강림만 하염없이 기다린다면, 나는 그런 자들을 나를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거짓으로 나를 믿는 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어찌 ‘구주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나의 강림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의 강림이다. 또한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내가 이 더러운 옛 세계를 철저히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다시 강림하여 그들을 속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가 온 인류를 다시 속량하여 더럽고 불의한 땅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소망한다. 그런 자들이 어찌 나의 말세 사역을 성취하는 인류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는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도 없고, 나의 사역을 성취할 수도 없다. 그들은 내가 행했던 사역만 앙모하거나 그리워할 뿐, 내가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내가 여호와이자 예수라는 것만 알 뿐, 인류를 끝내는 말세의 그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망하고 아는 것은 그들의 고정 관념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본 것일 뿐, 내가 행하는 사역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는 것이다. 사람들 생각대로 행한다면 나의 사역은 언제 끝나겠느냐? 인류는 언제 안식에 들어가겠느냐? 그럼 내가 어떻게 일곱째 날인 그 안식일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나는 나의 계획대로, 나의 근본 취지대로 하지 사람의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어느 가정 교회의 설교자였습니다. 오랜 시간 사역하면서 주의 재림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녀는 주님이 말세에 오실 때는 부활하신 영의 몸으로 구름 타고 오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육신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외면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예배에서 성경 여러 곳에 마지막 때에 ‘인자가 임한다’ ‘인자가 온다’ ‘도적처럼 온다’고 예언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예언은 모두 주께서 마지막 때에 육신으로 은밀히 오심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더 이상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깊이 생각해 보면서 찾고 구하게 됩니다. … 과연 말세에 주님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요? 주인공은 어떻게 주님을 맞이하게 될까요? 영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에서 확인하십시오.
현재 점점 더 큰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여기 나눔의 창구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한 장교의 회개>주인공은 원래 순박한 시골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에 입대한 후, 진급하기 위해 빠르게 부대의 불문율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부하고 뇌물도 주면서 대대장의 자리까지 올랐고, 그 뒤로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그는 악에서 떠나는 마음으로 부대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철학에 계속 얽매여 있던 그는 교회에서도 리더의 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쓰게 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형제자매들의 책망과 훈계였고, 지위를 얻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롭고 힘들기만 합니다. 그 뒤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앞에서 주인공은 지위를 추구하는 본질과 결과를 깨닫게 되고, 진리를 추구하며 올바른 인생길로 나아갑니다.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한 장교의 회개>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확산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환란이 임박했음을 느끼며, 분위기가 흉흉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방콕하며 전염병을 피할 뿐, 전염병과 대재난을 어떻게 피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미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눅 21:10~11) 전염병과 각종 재난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이 인류에게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회개일까요? 주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면 진정한 회개를 하였다고 믿으며, 그것이면 충분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대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맞을까요?<전염병 사태 앞에서>는 재난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진실로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주님이 그러셨죠.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태복음 25:6) 계시록 예언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요한계시록 2:7) 이 예언들을 보면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게 주님을 맞이하는 키에요.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게 유일한 방법이죠. 그런데 대부분 착각하는 게 목사들이 성경을 잘 알고,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니까 주님을 맞이하는 이런 큰일은 목사님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그래서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증언을 들어도 알아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걸 알고도 외면하죠. 그럼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걸까요, 목사를 믿는 걸까요? 주를 맞이하는 일에서 누구 말을 들어야 될까요? 하나님의 음성일까요, 목사의 말일까요? 예전엔 저도 이걸 잘 몰라서 목사님 말만 맹신했다가 주님을 맞이할 기회를 놓칠 뻔했어요.
주인공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교회에서 자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출세를 해야 인정받는다”, “마음을 쓰는 자는 다스리지만 힘을 쓰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 등의 사탄 독소에 물들고 패괴된 이유로, 자기도 모르게 지위와 명예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거기다 교만한 성품으로 동역자들과 명예와 권력을 다투고, 형제자매들을 훈계하고 통제하며 모든 결정권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된 추구 관점과 패괴한 성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나중에 또 경찰에 잡혀 갖은 고문과 세뇌 교육을 받으며,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실체를 알게 되고, 자신에게 있는 큰 붉은 용의 독소까지 알게 되면서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을 미워하고 뉘우쳐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로 이어지는 삶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어떻게 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크리스천인 송은택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잡혀 7년의 감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석방된 후에도 복음 전도에 힘쓰며 헌신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은 다 버리고 열심히 사역을 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다고 생각하며 얼마든지 하나님께 칭찬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중병으로 앓아눕게 된다. 이로 인해 송은택은 하나님께 항변하고 원망하며 맡은 본분에서도 마음이 멀어진다. 이런 일을 겪고, 또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송은택은 그동안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던 목적이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맞바꾸려는 것에 있었을 뿐, 전혀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최종에 찾고 구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어떻게 추구해야 패괴된 성품을 벗어 버고 진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기독교 영화 <누구를 위한 헌신인가> 열심히 사역하는 게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