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하나님의 영은 땅에 임하여 찾고 또 찾으면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고, 하나님은 역대로 많은 사람을 사용해 그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끝내 합당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각기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어 갔다. 결론적으로 전부 사람을 통해 일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사역을 멈춘 적이 없이 계속 사람에게 전개하였고, 오늘날까지 계속 사역해 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고 그토록 많은 사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현현한 적이 없고, 또한 형태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실제 하나님의 실제 의의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현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뼈와 살, 형태와 모양이 있는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 가운데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깊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육신에만 거한다면 사역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육신으로는 일부분 사역을 하고, 육신을 입은 사람이 해야 할 직분을 이행한다. 예수처럼 정상 인성으로 일부분 사역을 하며,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육신을 벗어나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영계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너희는 ‘길 … 5’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땅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아버지의 부탁을 완수하기를 구하라. 나머지는 너와 무관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이 말씀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땅에 임하여 신성의 사역만을 행한다. 이는 하늘의 영이 성육신 하나님에게 준 부탁이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곳곳에서 말씀하는 것뿐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을 하는데, 기본 목적과 사역 원칙은 사람에게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해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선포할 뿐, 사람의 사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즉, 인성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 사역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성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영의 음성을 발하며, 영을 대표해 사역할 수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 역시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재능이 출중하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그들에게 역사했다. 즉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생각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사유도 없다. 그는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한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하고 신성이 직접 사역하므로,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사유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만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해야 한다. 즉, 인성 사역으로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다. 예수와 몇몇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세상에 있을 때, 낡은 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계명을 정했으며, 수많은 말씀을 했다. 그 사역들은 모두 신성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이 후에 한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하나님은 시작 사역을 하여 은혜시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즉, 새 시대를 인도하고 옛 시대를 폐했으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반드시 신성 사역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말씀을 다하고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들을 떠났다. 그 후에 사람의 모든 사역은 전부 그의 말씀을 원칙으로 하고, 그가 말씀한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역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예수만 사역했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어도 사람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성으로 사역하기에 신성의 말씀만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석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의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갖고 있는 원칙은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말씀하고 사역하여 신성 사역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보충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인성으로 양육하고 목양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와서 신성의 사역만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접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상인을 통해 이 사역이 완전해지게 하고, 많은 교회를 돌보고 목양하게 해야만 사람의 사유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번역’하여 풀어 주는 것이다. 즉, 신적 언어를 인간적인 언어로 바꿔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어쨌든 소수이고, 사람의 이해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그 말씀들을 확실히 전달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 하는 인성 사역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 또한 새로운 기점을 열지 못하고 그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옛것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할 말씀과 사역을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서 끝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또 그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고 체험해야만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 신성 사역은 하나님을 대변하지만, 인성 사역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은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여 사람에게 새로운 기점을 열어 준다. 이때가 되면 육신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그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 인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할 뿐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정상 인성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 다르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정상 인성’은 아내와 남편, 자녀 등이 있는 것을 말하며, 이것으로 정상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 인성’이란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의 생활이 있고,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정상’의 범주에 사람들이 말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가 있는 것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는 ‘정상 인성’은 인성이 없고, 감정이 없다시피 하며, 마치 육신에 필요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상인의 외형을 갖추고 정상인의 모습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던 예수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은 정상 인성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꼭 갖춰야 하는 것들의 일부만 갖추는 것이다. 이는 정상인의 생활 법칙과 정상인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갖춰야 할 것들이다.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께 아내와 자녀, 가정이 있어야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너에게 묻겠다. 하나님께 아내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남편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자녀가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돌 틈에서 튀어나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역시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에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들이다. 예수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은 다 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이 원하는, 성육신 하나님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신성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가 없었지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그리고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신성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생각하는 ‘정상인’이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만이 신성 사역을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필요한 정상 인성만 갖췄을 뿐,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 인성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흔히 사람의 인식과 판이하게 다르며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에는 사람의 관념을 일축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으며, 사람의 관념과 크게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전적으로 신성이 개입해 사역하고, 인성은 조연의 역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친히 자신의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직접 말씀이 육신(완전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 되어 자신의 사역을 한다. 또한, 이번에 성육신한 것을 기회로 사람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알려 주어 모든 사람이 그가 말씀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므로, 그는 사람을 떠나고 사람과 이별할 것이다. 더 이상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에 거하지 않고 사람을 떠나 다른 부분의 사역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땅에서의 사역을 계속 완성해 나갈 것이다. 단, 그것은 인성에서 행해진다.성육신 하나님이 항상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육신을 벗어나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사역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인처럼 죽을 때의 모습이 되어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역이 끝나면 사람을 떠난다. 그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그는 사람의 나이 계산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단계에 따라 육신의 생명을 끝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언젠가 육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야 떠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지, 정상인의 삶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등 정상인의 갖가지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은 것이고, 육신에 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 경륜의 한 부분을 완성한 후에 사람을 떠날 뿐이다. 그가 육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영은 육신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에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며, 그의 직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의 수명과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이 단계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얼마나 유지될지, 땅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부 영의 사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는 육신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다. 육신의 수명만 보자면 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떠나서도 안 됐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이 끝나자 육신도 거두어들이니, 육신은 영을 따라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에 있을 때 이러한 사역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땅에 온 이유는 정상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정상인의 삶을 산 후에 사역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신성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뜻도, 혈기도 섞여 있지 않으며, 사회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사람의 사유나 관념은 물론 처세 철학과도 관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성육신의 실제 의의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주된 이유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지, 다른 번잡한 과정은 없다. 그는 정상인의 체험을 갖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해야 하는 사역에는 정상인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은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나머지는 그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번잡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성육신한 의의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 이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이 끝나고 육신의 직분은 전부 이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육신에 거하며 사역할 수는 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해야 하므로 그때는 육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의 사역이 전면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더 잘 전개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래의 계획에 따라 사역한다.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사역을 끝냈는지, 그는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가 예정한 길로 인도하므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후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영이 사람의 삶을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실제에 더 잘 진입하여 실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룰 사역이자,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니, 너희는 여기에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봐야 할 것이다!

출처: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하나님의 영은 땅에 임하여 찾고 또 찾으면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고, 하나님은 역대로 많은 사람을 사용해 그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끝내 합당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각기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어 갔다. 결론적으로 전부 사람을 통해 일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사역을 멈춘 적이 없이 계속 사람에게 전개하였고, 오늘날까지 계속 사역해 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고 그토록 많은 사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현현한 적이 없고, 또한 형태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실제 하나님의 실제 의의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현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뼈와 살, 형태와 모양이 있는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 가운데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깊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육신에만 거한다면 사역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육신으로는 일부분 사역을 하고, 육신을 입은 사람이 해야 할 직분을 이행한다. 예수처럼 정상 인성으로 일부분 사역을 하며,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육신을 벗어나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영계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너희는 ‘길 … 5’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땅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아버지의 부탁을 완수하기를 구하라. 나머지는 너와 무관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이 말씀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땅에 임하여 신성의 사역만을 행한다. 이는 하늘의 영이 성육신 하나님에게 준 부탁이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곳곳에서 말씀하는 것뿐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을 하는데, 기본 목적과 사역 원칙은 사람에게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해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선포할 뿐, 사람의 사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즉, 인성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 사역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성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영의 음성을 발하며, 영을 대표해 사역할 수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 역시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재능이 출중하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그들에게 역사했다. 즉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생각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사유도 없다. 그는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한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하고 신성이 직접 사역하므로,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사유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만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해야 한다. 즉, 인성 사역으로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다. 예수와 몇몇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세상에 있을 때, 낡은 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계명을 정했으며, 수많은 말씀을 했다. 그 사역들은 모두 신성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이 후에 한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하나님은 시작 사역을 하여 은혜시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즉, 새 시대를 인도하고 옛 시대를 폐했으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반드시 신성 사역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말씀을 다하고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들을 떠났다. 그 후에 사람의 모든 사역은 전부 그의 말씀을 원칙으로 하고, 그가 말씀한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역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예수만 사역했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어도 사람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성으로 사역하기에 신성의 말씀만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석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의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갖고 있는 원칙은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말씀하고 사역하여 신성 사역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보충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인성으로 양육하고 목양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와서 신성의 사역만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접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상인을 통해 이 사역이 완전해지게 하고, 많은 교회를 돌보고 목양하게 해야만 사람의 사유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번역’하여 풀어 주는 것이다. 즉, 신적 언어를 인간적인 언어로 바꿔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어쨌든 소수이고, 사람의 이해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그 말씀들을 확실히 전달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 하는 인성 사역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 또한 새로운 기점을 열지 못하고 그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옛것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할 말씀과 사역을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서 끝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또 그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고 체험해야만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 신성 사역은 하나님을 대변하지만, 인성 사역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은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여 사람에게 새로운 기점을 열어 준다. 이때가 되면 육신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다.

확장열람: 두 번의 성육신 모두가 인류에게 필요했나니

하나님은 땅에 와서 그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 인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할 뿐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정상 인성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 다르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정상 인성’은 아내와 남편, 자녀 등이 있는 것을 말하며, 이것으로 정상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 인성’이란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의 생활이 있고,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정상’의 범주에 사람들이 말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가 있는 것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는 ‘정상 인성’은 인성이 없고, 감정이 없다시피 하며, 마치 육신에 필요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상인의 외형을 갖추고 정상인의 모습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던 예수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은 정상 인성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꼭 갖춰야 하는 것들의 일부만 갖추는 것이다. 이는 정상인의 생활 법칙과 정상인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갖춰야 할 것들이다.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께 아내와 자녀, 가정이 있어야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너에게 묻겠다. 하나님께 아내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남편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자녀가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돌 틈에서 튀어나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역시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에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들이다. 예수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은 다 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이 원하는, 성육신 하나님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신성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가 없었지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그리고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신성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생각하는 ‘정상인’이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만이 신성 사역을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필요한 정상 인성만 갖췄을 뿐,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 인성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흔히 사람의 인식과 판이하게 다르며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에는 사람의 관념을 일축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으며, 사람의 관념과 크게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전적으로 신성이 개입해 사역하고, 인성은 조연의 역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친히 자신의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직접 말씀이 육신(완전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 되어 자신의 사역을 한다. 또한, 이번에 성육신한 것을 기회로 사람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알려 주어 모든 사람이 그가 말씀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므로, 그는 사람을 떠나고 사람과 이별할 것이다. 더 이상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에 거하지 않고 사람을 떠나 다른 부분의 사역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땅에서의 사역을 계속 완성해 나갈 것이다. 단, 그것은 인성에서 행해진다.

성육신 하나님이 항상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육신을 벗어나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사역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인처럼 죽을 때의 모습이 되어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역이 끝나면 사람을 떠난다. 그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그는 사람의 나이 계산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단계에 따라 육신의 생명을 끝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언젠가 육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야 떠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지, 정상인의 삶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등 정상인의 갖가지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은 것이고, 육신에 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 경륜의 한 부분을 완성한 후에 사람을 떠날 뿐이다. 그가 육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영은 육신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에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며, 그의 직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의 수명과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이 단계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얼마나 유지될지, 땅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부 영의 사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는 육신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다. 육신의 수명만 보자면 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떠나서도 안 됐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이 끝나자 육신도 거두어들이니, 육신은 영을 따라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에 있을 때 이러한 사역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땅에 온 이유는 정상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정상인의 삶을 산 후에 사역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신성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뜻도, 혈기도섞여 있지 않으며, 사회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사람의 사유나 관념은 물론 처세 철학과도 관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성육신의 실제 의의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주된 이유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지, 다른 번잡한 과정은 없다. 그는 정상인의 체험을 갖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해야 하는 사역에는 정상인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은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나머지는 그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번잡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성육신한 의의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 이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이 끝나고 육신의 직분은 전부 이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육신에 거하며 사역할 수는 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해야 하므로 그때는 육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의 사역이 전면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더 잘 전개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래의 계획에 따라 사역한다.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사역을 끝냈는지, 그는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가 예정한 길로 인도하므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후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영이 사람의 삶을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실제에 더 잘 진입하여 실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룰 사역이자,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니, 너희는 여기에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봐야 할 것이다!

출처: 전능하신 하나님

 

말세의 징조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말세 경고

영상 소개:
노아 시대의 인류를 돌아보면, 패괴하고 음란했으며, 그것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없었고, 강퍅하고 사악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 큰 홍수에 파멸됐습니다. 오직 노아의 식솔 8명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말세입니다. 지금의 인류는 갈수록 더 심하게 패괴되어 가고 있고, 사악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온 교계까지 세상을 좇으며 진리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노아의 때와 같은 날이 또 임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번 영상은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 칭핑향의 주민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번이나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됩니다. 중국 원촨 대지진 때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보호로 기적같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 이 두 부류에게는 각기 다른 결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A-7】우리, 계속해서 다음 구절 말씀을 교통합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늘 종교 의식을 행하고 늘 외식하는 사람을 싫어하시고 축복하지 않으시며 더욱이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쓰지 않으신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그 사람은 폐인이 되어 쓸모가 없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는 본분이 다 같지 않습니다.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하지만 어떤 방면의 본분을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성령의 인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이고, 모두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과 인도 가운데서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다면 본분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잘할 수 없죠. 왜 효력자는 온전케 될 수 없습니까? 왜 바울처럼 사역하면서 그렇게 많은 고난을 받아도 온전케 될 수 없습니까? 여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교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인정하지 않으실까요? 사람이 자기 뜻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거나 또는 고난도 많이 받고 대가도 많이 치렀는데, 나중에 하나님은 왜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태시키십니까? 왜일까요? (그런 사람이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것은 한 방면입니다. 또 어떤 원인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는데, 이것이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면 그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영원히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 역사를 얼마큼 체험하고 경력하고 인식했으면 그만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늘 성령의 역사를 접촉하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를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왜 자라지 못할까요?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이렇게 오랫동안 믿었는데, 여태껏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은 적이 없고, 하나님을 느껴 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저는 하나님을 느꼈어요, 하나님은 정말 계세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봤습니까?” “보지 못했습니다.” “만져 봤습니까?” “만져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정말로 계신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저는 마음속으로 성령의 역사를 느꼈고, 하나님 영의 행사를 느꼈어요. 하나님 영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느꼈고, 하나님 영이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도 느꼈고, 이끄신다는 것도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랐고 진실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계셔요. 하나님은 사람을 이끄시기도 하고 또 사람을 깨우쳐 진리를 깨닫게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저에게 역사하셔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정결케 하심을 느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경력하면서 성령의 행사를 느끼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느끼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주된 방면입니다. 다른 한 방면은 사람이 이런 경력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도달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지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해 드리려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럼 이런 효과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입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과 말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며 성령의 역사를 얻어 도달하게 되는 효과입니다.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많이 체험할수록 하나님을 점점 더 알게 되고, 성령 역사를 체험하고 경력한 것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적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작은데, 이것은 다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령의 역사가 있고, 많은 일에서 하나님과 진실한 기도가 있으며,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체험하게 되며, 많은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를 깨닫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런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한다는 것은 뭘 말한 것입니까?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마음속 말로 하나님과 교통하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를 얻으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본 것처럼 하나님이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진실하세요. 하나님은 절대 막연하지 않아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정말 진실하고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거든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실하고 살아 계신 분이세요! 단지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하나님의 행사와 깨우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저는 다 느꼈어요. 경력한 것이 많아요! 느낀 것도 많구요! 다 이 마음속에 있어요. 자기 눈을 믿으면 안 돼요.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다 봤어요. 마음으로 느낀 것이 눈으로 본 것보다 백배, 천배 더 진실해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성령 역사를 많이 느낄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 알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죠? 사람이 늘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면 늘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느끼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수록 정상적이 되며 갈수록 진실하게 됩니다. 교계 사람들처럼 공기에 대고 기도하라고 하면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안 맞아요, 그건 중언부언하라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경건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고 싫어하실 거예요.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느끼지 못할 때가 있어도 이렇게 하나님께 말할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성령 역사를 느낄 때면 경건함을 좀 보이고, 느끼지 못하면 허튼소리를 하는데, 그러지 마세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너무 어리석습니다! 어떤 때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나는 은밀한 중에 너의 기도를 듣고 있고, 은밀한 중에 너를 감찰하고 있다. 나는 네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진실한지, 나를 경외하는지, 나에 대해 경건한지를 볼 것이다.” 그래야 사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일 늘 그렇게 역사하셔서 여러분에게 성령이 이렇게도 역사하시고 저렇게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고, 뒤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은 당신에게 느끼게 하실 때도 있고 느끼지 못하게 하실 때도 있는데, 사람에게 숨기고 얼굴을 가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있는지, 참된 순복이 있는지, 참된 경외심이 있는지의 여부를 보십니다. 제가 말한 것을 다 알아들으셨겠죠?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이렇습니다. “때로는 성령의 역사를 경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성령이 저에게 숨기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에 대해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감찰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숨기셔도 저는 하나님과 마음을 털어놓고 마음속 말을 합니다.” 이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생명과 믿음이 절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랍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134집 (a)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 관한 설교 교통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기도할 때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기도가 정말 영적이었고 말도 아주 잘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계속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난 후 이런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이런 느낌이 사라진 후에 저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숨기셨을까?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지? 내가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노엽게 했지? 그렇다면 빨리 죄를 고백해서 다시 그 느낌을 되찾고 싶어. 그런 느낌이 없으면 나는 못 살아! 어떻게 해서든 회복해야겠어, 성령이 나를 뚜렷하게 감동시키고 인솔하시면 내가 느낄 수 있어. 이런 영 생활을 회복해야 돼.” 이런 생각은 맞습니까?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정말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늘 초자연적인 느낌을 구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늘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이 늘 나타나시고 영이 감동을 주시고 인솔하셔서 점점 더 뚜렷하게 느끼게 한다면, 분량이 작고 아직 ‘어린애’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부모가 늘 갓난 아기 곁에서 보고만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기는 ‘으앙’하고 울며 찾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의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말하면서 아기를 다독이면 아기는 잠들고 조용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포대기 속에 있는 아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보살피십니다. 만약 철이 든 대여섯 살 아이한테 부모들이 밖에 일하러 나가면서 “아가야, 집에 있어.” 하면 아이는 “응.” 하고 대답합니다. 부모들이 밖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는 좀 있다가 “왜 아직도 안 오지?” “엄마, 왜 아직도 안 와, 어디 갔어?”라며 ‘으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한참 울고 나니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울긴 왜 울어?” “반나절이나 안 보이니까 무서웠어.” “엄마가 밖에서 일한다고 했잖아.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들어와서 너랑 놀겠니? 말 잘 들어, 엄마 밖에서 일하고 있을 테니!” “알았어.” 그제야 아이는 두세 시간 정도 울지 않고 버팁니다. 만약 한 살 더 먹으면 부모가 5시간을 비워도 괜찮고, 두 살 더 먹으면 부모가 밖에 나가 반나절 일을 하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갈수록 철이 듭니다. 사람의 생명도 이렇게 자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셔서 제가 하나님을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늘 이렇게 구한다면 맞습니까? 틀렸습니다. 그럼 뭘 구해야 합니까? 효과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역사를 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효과에 도달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기도를 다 하고 나서도 하나님을 만지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저는 진리를 깨달았고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이러면 족합니다. 저의 기도가 효과에 도달했습니다.”라고 합니다. 꼭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 밖에서 일해도 돼요, 근데 내가 배고플 때, 나한테 밥하고 김치만 주면 돼요. 엄마 아빠가 밖에서 일하고 있는 거 알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구하고 이렇게 하나님과 지내면 좋습니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저를 인도해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해야 당신을 만족케 해 드릴 수 있는지만 알게 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명확한 느낌을 달라고 구하지 않고 효과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하겠습니다.”라고 이렇게 그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구한 후에 3, 5일 혹은 7, 8일 동안 그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깨닫게 되고 길이 생기고 빛 비춤이 있게 되면, 그 일에 대해 점점 더 환해집니다. 오늘은 조금 빛 비춤이 있게 되고, 다음날에는 더욱 환해지며, 이틀 뒤에는 꿰뚫어 보게 되며, 3일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어 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깨우쳐 주시니 알겠습니다. 요즘 저는 이 일에 대해 꿰뚫어 보게 됐습니다. 이게 다 당신께서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당신을 만족케 해 드려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보시고 “네가 깨달았구나, 성과를 얻었구나, 답을 얻었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어떻습니까? 실제적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 관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정상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 마음속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이렇게 교제하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면서 이루어질 때까지 이렇게 한 가지씩 처리하고 한 가지씩 간구하는 것입니다. 간구할 때는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고, 이루어질 때는 어떻게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대로 합니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깨닫게 되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 믿는 길을 가면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더 많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갈수록 실제적이 됩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실제적이 되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갈수록 참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도 갈수록 실제적이 되며, 자신도 모르게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생명 성정이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과 진실로 교제하는 가운데 구원 받고 온전케 되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이렇게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길입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듬고, 마지막에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아 진리를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알게 되면 그렇게 하게 됩니다. 경력하면서 이런 부류의 일은 이렇게 처리하고 이렇게 경력하는 것입니다. 패괴를 유로하고 과오가 있어도 역시 이렇게 처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며, 마지막에 자신을 인식한 후에 진실로 뉘우치는 마음이 생기고 진실한 회개가 생기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이 일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했는지, 이제는 당신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꼭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이러면 됩니다. 과오가 있어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고, 복잡한 일이 닥쳐도 어떻게 진리를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각종 어려움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역자 간의 협력하는 관계에서 꿰뚫어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어떤 원칙에 따라 처리하고 대해야 하는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또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모든 문제를 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야 하며 진리를 찾고 구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1년 동안 이렇게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제하는 과정이 많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1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얻는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많습니다.) 1년에 10여 가지 일을 참으로 경력할 수 있으면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의지해서 해결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저는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한두 달 기도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에 자신이 어떻게 포기했다고 말하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경력입니다. 1년에 10여 가지 일에서 기도를 통해 진리를 찾고 구하여 철저히 해결하면 그 경력은 아주 풍부한 것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기도하고, 날마다 쓸데없는 말을 하며, 마지막에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자기 뜻대로 하고, 다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교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백배 낫지 않습니까? 교계 사람들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어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교계 사람들은 가는 길이 두 갈래 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고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습니다.

출처: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하나님】<산동성 맥도날드 사건 진상 규명> 맥도날드 고의 살인사건 뒤에 숨겨진 음모

영상 소개:
2014년, 중국 공산당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탄압할 여론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5.28’ 산동 맥도날드 사건을 조작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정죄하고 박해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그로 인해 진실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미혹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살인 사건의 의문점과 거짓들을 분석하고, 맥도날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복음 영상ㅡ말세의 징조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말세 경고


영상 소개
노아 시대의 인류를 돌아보면, 패괴하고 음란했으며, 그것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없었고, 강퍅하고 사악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 큰 홍수에 파멸됐습니다. 오직 노아의 식솔 8명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말세입니다. 지금의 인류는 갈수록 더 심하게 패괴되어 가고 있고, 사악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온 교계까지 세상을 좇으며 진리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노아의 때와 같은 날이 또 임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번 영상은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확장 열람: 구원 얻는 것이란? 구원받는 것이란?

중국 쓰촨성 칭핑향의 주민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번이나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됩니다. 중국 원촨 대지진 때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보호로 기적같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 이 두 부류에게는 각기 다른 결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전능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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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ㅡ다큐/다큐멘터리 영화<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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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ㅡ다큐/다큐멘터리 영화<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증거하다 (한국어 더빙)
광활한 우주에서는 모든 행성이 자기 궤도에서 정확하게 운행하고 있고, 천우(天宇) 아래에서는 산천과 호수에 경계가 있으며, 만물 생령(生靈)이 사계절 속에서 생명의 법칙을 따르며 끊임없이 번성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정교한데, 어떤 ‘능력자’가 주재하고 관리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갓난아기 때부터 이 세상에서 서로 다른 배역을 맡아 살면서 생로병사,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있다… 인류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누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는 걸까? 옛부터 지금까지 한 나라가 세워지고 왕조가 바뀌며, 하나하나의 국가와 민족이 역사의 파도 속에서 흥망성쇠 했다… 인류 발전의 규칙은 자연법칙처럼 그 속에 무궁한 비밀이 담겨 있다. 다큐멘터리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에서 그 비밀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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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출처: 크리스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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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합창 특집 찬양<하나님나라의 축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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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그리스도의 말씀ㅡ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면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해 하나님의 만족을 얻어야 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맡기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해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부어야만 조금씩 정상적인 영 생활이 이뤄진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종교 인사들의 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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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창 특집 찬양<하나님나라의 축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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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합창 특집 찬양 <하나님나라의 축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 만백성이 하나님나라가 임했음을 찬양하네
감동을 선사하는 하나님나라의 축가가 울려 퍼지며, 전 우주를 향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임하셨음을 선포하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도다! 만백성이 환호하고, 만물이 기뻐 뛰네! 온 누리에 기쁨이 넘쳐흐르네. 이 얼마나 동경했던 장면인가!
수천 년간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고통에서 살던 인류 중에 누가 하나님의 날을 열망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사탄의 권세하에서 핍박과 환난, 버림과 탄압을 받아 온,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중 어느 누가 하나님의 나라가 하루빨리 임하기를 소망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풍파와 고통을 맛본 사람 중 어느 누가 진리와 공의가 다스리는 날을 갈망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순간 열방이 고대하던 그날이 드디어 이루어졌도다! 이 순간, 천지 만물은 어떤 광경을 보일 것인가? 하나님나라의 삶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하나님나라의 축가,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임하였네>를 통해 천년의 그리움이 실현되는 그 순간을 느껴 보십시오!

출처: 복음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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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영상 모음 (韓)


 

하나님의 말씀 찬양 CCM 2020 <하나님과의 정상적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1.일을 할 때마다 본심이 올바른지 봐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일 것이다 이것이 최저 기준이다

자신의 본심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틀린 속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배반하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인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 되었고 행하는 것이 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말한다

기도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기도사진제공: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전능신교]

                             확장 열람: 경배와 찬양 <내 마음을 감싸는 하나님의 사랑>

2.일을 하고 말을 할 때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감정대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을 행하는 원칙이다

작은 일에서도 사람의 본심과 분량이 드러난다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려면

먼저 자신의 본심을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본문 출처: 하나님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