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20 7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믿는다면 최소한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의의도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수립하려면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해야만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 의혹을 품거나 부정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자신을 위해 타산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고, 설령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진 다음에 그에 따라 실행해도 늦지 않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 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적이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고,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나 교회를 교란하는 일을 하지 말고,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이롭지 못한 일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광명정대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때로 육적인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의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정상이 된 것이다.』

―<말씀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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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때가 이르렀다>말세에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경고

영상 소개

노아 시대의 인류를 돌아보면, 패괴하고 음란했으며, 그것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없었고, 강퍅하고 사악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 큰 홍수에 파멸됐습니다. 오직 노아의 식솔 8명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말세입니다. 지금의 인류는 갈수록 더 심하게 패괴되어 가고 있고, 사악을 숭상하고 있습니다. 온 교계까지 세상을 좇으며 진리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노아의 때와 같은 날이 또 임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번 영상은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 칭핑향의 주민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번이나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됩니다. 중국 원촨 대지진 때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보호로 기적같이 살아남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 이 두 부류에게는 각기 다른 결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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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관한 성경 예언: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6가지 예언이 성취되다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취지를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

『나의 전체 경영 계획, 다시 말해 6천년 경영 계획은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뉘는데, 그것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역사한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행한 궤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킴으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해 내는 것이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그지없이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에게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 인류의 쓰레기, 인류의 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며,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이런 무지한 인류가 모두 나를 증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즉, ‘내’가 인류를 *패괴시킨 것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인 나 자신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자이고 사탄은 피조된 후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6천년 경영 계획을 3개 절차로 나누었는데, 내가 이렇게 나누어 역사하는 것은 이런 효과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피조물이 나를 증거하고, 나의 뜻을 깨달으며, 내가 진리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취지를 알아야 한다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취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이렇다. 즉,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창조주는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왜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이런 인류를 사탄에게 내어 주어 사탄이 제멋대로 패괴시키게 한 다음, 또 인류가 완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탄과 단절할 수 있을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인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이다. 이것은 듣기에 마치 신화 같고, 또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이 이것을 신화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이 수천 년 동안 사람에게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발생하였는지 모르고, 또한 이 우주 궁창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발생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더구나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는 이 물질세계의 배후에 있는 한층 더 기묘하고 무서운 그 세계를 전혀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의의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의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인류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탄의 패괴를 전혀 겪지 않은 아담과 하와 같은 인류를 원할까? 아니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복하는 한 무리 인류를 얻기 위한 것이다. 이 인류는 비록 사탄에게 패괴되었지만,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인식하여 그것과 단절하고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무엇이 추하고 무엇이 거룩한지에 대한 대비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도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힘쓰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사탄에게 참배하지 않고 사탄을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한 무리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확장 열람:하나님은 왜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가?

『하나님은 인류를 지었고, 인류를 땅에 두고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으며, 또 인류를 구원하였고 인류의 속죄제가 되었다. 마지막 때에 그는 인류를 정복하여 철저히 구원해 내고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는 사역은 사람의 원래 형상과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은 땅에서의 자신의 권병(역주: 권세)을 회복하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의 자신의 권병을 회복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가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그것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지 못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므로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경배하여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리를 잃게 되었다. 즉, 사람을 만든 의의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을 만든 의의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야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벗겨 버려야 한다.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려면 반드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원래 모습을 점차 회복시킬 수 있고,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마지막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다. 마지막에 그 패역의 자식들을 철저히 멸하는 것도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땅에서 더 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으신 이상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사람의 원래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이상 섞임이 조금도 없게 철저히 회복시킨다. 그가 자신의 권병을 회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원수들을 다 그의 권병으로 인해 훼멸되게 하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람들 가운데 존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고, 그가 원하는 인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완전히 순복하는 인류이며, 그의 영광이 있는 인류이다. 만일 패괴된 인류를 구원해 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만든 의의는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권병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또한 땅에 그의 나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만일 그를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받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인류의 그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을 다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그의 사역이 완성된 표징이고, 그의 큰 공이 이루어진 표징이다. 인류가 처음의 모습을 다 회복하고, 각자의 직책을 다하며, 자신의 본래 자리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면, 하나님은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얻게 되고,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가 땅에서 영원히 승리하고, 그와 적대되는 자들이 영원히 멸망되면, 그가 태초에 사람을 지었을 때의 뜻과 만물을 창조한 뜻을 회복하게 되고, 그의 땅에서의 권병과 만물 가운데서의 권병 그리고 원수 가운데서의 권병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그가 완전히 승리한 표징이다. 그로부터 인류는 안식에 들어가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들어가게 되며, 하나님도 사람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고 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삶에 들어가게 된다. 땅의 더러움과 패역 그리고 땅의 애곡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적대되는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며,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이 구원한 사람들만 남게 되고, 또한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만 남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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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기독교 영화 <선거를 앞두고>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의 체험 간증 (2020)

영상 소개

저우칭위는 사역 능력도 있고 자질도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맡은 본분에 효과도 좀 있고, 형제자매들의 평가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1년의 임기가 끝나면서 다시 선거 때가 돌아왔을 때, 저우칭위는 연임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때, 둥청 지역 교회 리더 양제 자매가 신고를 당해 중국 경찰에 쫓기면서 저우칭위가 있는 교회로 오게 되고, 선거에 참여하게 됩니다. 한동안 지난 후, 주변의 형제자매들은 양제 자매와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자매가 진리를 교제하면 실제적이라고 인정해 줍니다. 그때 저우칭위는 질투심을 느끼며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점점 자기 자랑을 하면서 양제 자매를 배척하며 명예와 지위를 쟁취하려는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과연 저우칭위는 명예 지위를 추구하는 매임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요? 선거할 때, 그녀는 손에 쥔 한 표를 어떻게 했을까요? 영화 <선거를 앞두고> 에서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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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활 간증 동영상 <감독을 향한 나의 꿈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네 본분을 다 이행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네가 체험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네가 책망, 징계, 심판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누릴 줄만 알 뿐, 하나님이 언제 너를 징계하고 책망하는지 느끼지 못해서는 안 된다. 네가 이번 연단에서 바른 입장을 견지했더라도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과는 끝없이 배워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경험한 후에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람의 상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사역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이 더 많이 나타난다. 반대로 받는 연단이 적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능력도 더 적게 나타난다. 연단을 많이 받을수록, 큰 고난을 받을수록, 많은 시달림을 받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더 갖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체험하는 과정에서, 너는 커다란 연단과 고통을 받고 책망과 징계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책망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인식이 매우 얕은 관계로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어 그분을 누리게 하십니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책망과 징계를 겪어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와 의의가 있고, 네가 헤아릴 수 없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며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사역은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의의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은 이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였고 또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세에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특별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너희에게 큰 사역을 행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순결하게 되며, 하나님이 큰 사역을 행할수록 사람이 그의 지혜를 더욱 깨달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이 말세에 끝날 것이지만 그렇게 쉽게 끝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하면 끝이겠느냐?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하나님이 행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어느 한 부분도 사람은 온전히 측량할 수가 없다. 네가 온전히 측량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아무런 의의도 가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측량할 수 없고 네 관념과도 크게 다르다. 네 관념과 다를수록 하나님의 사역이 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네 관념과 같으면 의의가 없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사역이 몹시 기묘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기묘할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행사가 아주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정복하고 끝낸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이 지닌 의의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지금 연단을 조금 받기는 하지만 이는 네 생명이 자라는 데 매우 이롭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 고난을 꼭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너희가 연단을 조금 받지만 연단이 지나가고 나면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너는 “하나님의 행사가 실로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 연단(봉사자 시련, 형벌 시대)을 겪은 후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했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가 그만큼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하는 일은 참으로 큰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사람이 소중히 여길 만하다는 의미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네가 조금도 알지 못한다면 내가 한 사역이 가치가 있겠느냐? 나는 네 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실로 기묘하구나.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러우시구나!”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네가 한동안 체험을 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이 네게 한 사역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음을 말해 준다. 훗날 네가 외국에 나가 전도할 때 누가 네게 “당신의 믿음은 어떠합니까?”라고 물으면, 너는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도 기묘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너의 이 말속에 실제 체험이 들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참된 증언이다. 또한 네가 하나님의 사역이 실로 지혜롭고, 너에게 한 사역이 너를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고 네 마음을 정복했으며, 그가 실로 사랑할 만한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를 사랑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데, 이것이 모두 증언이다. 네가 힘 있게 증거해 사람들이 모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은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할 수 있고, 너의 증거를 통해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굳게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증거이다. 지금 너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런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아주 가치 있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가 충분하며, 하나님은 참으로 보배롭고 풍부하다는 것을 말이다. 또 하나님은 말씀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의 마음을 연단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얻을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고 온전케 할 수도 있어 체험 속에서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러움을 알았다고 말이다. 너는 지금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 정말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우러나올 수 있다면 그때는 너에게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네가 이 정도까지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체험하지 못했다면 아직 멀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이 연약해지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연단 후에는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지혜롭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 말의 실제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보배로울 것이고 너의 체험도 가치 있게 될 것이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너는 지금 무엇을 추구해야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할 수 있는지,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지,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지, 이것이 네가 추구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느냐? 너는 그 사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깨달았느냐? 얼마나 체험하고 얼마나 직접 경험했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주든, 너를 책망하든 징계하든, 어쨌든 하나님은 너에게 자신의 행사와 사역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너의 실제 체험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할 수 있느냐? 실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느냐? 너는 너의 실제 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기 위해 너의 일생을 헌신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려면 너의 체험과 인식, 네가 치른 대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사람이냐? 너에게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요구한 백성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너는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증거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기를 갈망하며, 너의 입으로 증거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해야 한다. 네가 정말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는 목적이 결국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이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다. 너는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그를 만족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기묘함과 지혜를 어떻게 증거하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것이 모두 지금 네가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마음이 단지 하나님께 온전케 된 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됐다면,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고 아직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증거하고, 그의 요구를 실제적으로 충족시키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을 받든, 눈물을 흘리든, 근심으로 슬퍼하든 모두 실제로 체험해야 한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도록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지금 대체 무엇의 지배를 받아 고난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있느냐? 오늘날 네가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증거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육체의 복을 받거나 앞날과 운명을 위한 것이냐? 너는 마음가짐, 동기, 추구하는 목표를 바로잡아야지 너 자신의 뜻에 따라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는 복을 받기 위해, 왕 노릇 하기 위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다른 누군가는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한다면 너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 전자를 택한다면 너는 아직 하나님의 기준과 거리가 멀다. 나는 나의 행사를 전 우주에 공개하고, 내가 전 우주에서 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너희에게 맡긴 일은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지 왕이 되어 우주 전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우주 궁창에 가득 나타내 모든 이가 보게 하고 인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증거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그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겠느냐? 너에게 온전케 되기를 원하고, 또한 자신이 살아 낸 것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겠다는 원동력이 있다면, 모든 어려움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지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너에게 이런 원동력이 있다면 그 어떤 소극적인 것, 수동적인 것, 육적인 나태함, 육적인 관념, 처세 철학, 패역한 성품, 감정 등을 모두 쉽게 버릴 수 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욥이 비록 연약하여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지만,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지게 된 모든 것은 여호와가 베풀어 준 것이고,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가는 것도 여호와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련을 주든 그의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가 체험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떤 연단을 받든 하나님은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원한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믿음과 사랑이자 사람의 의지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모를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분명한 입장을 갖고 굳게 서야 할 필요가 있다. 욥이 이 정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며,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네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준다. 너에게 믿음이 없으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능은 더더욱 볼 수 없다. 네가 실제 체험 중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할 것이다. 반대로 네게 그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희망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어야 네가 체험 중에서 그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고, 그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단이 있어야 믿음이 있게 되고, 연단이 없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아 이를 수 없을 때 갖춰야 하는 참된 신뢰와 진실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믿음이다. 사람은 고난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고, 연단받을 때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있으면 그에 따라 연단도 있게 된다. 이 둘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언제나 생명을 추구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알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알고 진리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네가 연단 속에서도 진리를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 대해 의심이 생기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계속 진리를 실행하여 그를 만족게 하고, 깊은 곳에서 그의 뜻을 구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 너에게 왕권을 잡게 할 것이라고 했을 때는 네가 그를 사랑하고, 너에게 공개했을 때는 네가 그를 추구하다가 하나님이 모습을 감추어 네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고난이 임하자 하나님에게 실망했느냐? 그러므로 너는 언제든 생명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을 참된 믿음이자 가장 참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다들 하나님 앞에서 각오를 다지며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저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너에게 임한 연단이 네 관념과 다르자 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이냐? 예전에 여러 번 본 욥의 행적을 지금 너는 잊었느냐? 믿음 안에서만 참된 사랑이 생길 수 있다. 네가 연단을 받으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체험하는 중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믿음으로 자신의 육을 배반하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네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반드시 고난받겠다는 각오, 믿음, 인내, 순종 등 모든 것을 갖춰야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단이 닥칠 때마다 믿음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줄만 알아서도 안 된다.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육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서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예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차라리 자기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사랑과 참된 믿음이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너는 우선 고난받겠다는 각오와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육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개인적인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며 또 스스로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했더라도 지금은 스스로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너는 온전케 될 수가 없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을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모든 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쓰는 것은 너를 연단하여 고통받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네게 하나님의 행사와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면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깨우쳐 준 것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고 심판한 것도 체험할 수 있다면, 너는 전체를 체험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심판 사역도 하고 형벌 사역도 했으며 하나님이 말씀으로 너를 책망한 적도 있지만, 너를 깨우쳐 주었고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네가 소극적이 되어 연약할 때도 하나님은 너를 염려하였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역을 통해 너에게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알게 한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육체가 평안한 것 또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편안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하는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으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갖게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에 따라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대로 살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우주 전체에서 행하는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실제 사역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사람에 대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 안의 불결한 것과 불의한 것을 벗어 버리고 너의 옳지 못한 속셈을 버리며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생겨나야 한다. 이런 참된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지 않는데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이왕에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열의가 생겨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면 바로 열의가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고, 수많은 종교 관념을 버리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버릴 수 없고, 아직도 육적인 복이 내리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너의 육과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은 관점이 바르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종교 신앙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이는 전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겠다는 마음과 자기를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품이 변화될 수도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네게 시련이 닥쳤을 때 너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과 연관 지어 그 시련을 대했느냐? 너는 소극적인 자세로 대했느냐, 아니면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이 주는 시련과 연단을 알려고 했느냐? 시련과 연단을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더 커졌느냐? 연단을 받을 때 욥의 시련과 연관 지어 하나님이 너에게 행한 사역을 참답게 대할 수 있느냐? 욥의 시련을 통해 너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는 방식을 볼 수 있느냐? 욥의 시련을 통해 어떤 일깨움을 얻을 수 있느냐? 너는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려고 하느냐, 아니면 편안한 환경에서 육체를 만족시키고자 하느냐? 너는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느냐? 진정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진정 육을 위하지 않느냐? 목표를 가지고 추구하는 것이냐? 너는 연단을 겪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형벌을 받고 하나님께 저주받기를 원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환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진실로 증거하는 것이겠느냐? 실제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너에게 많은 사역을 했는데, 너는 어째서 늘 떠날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너희들 중 많은 이가 자신을 위한 타산을 품고 있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이것은 모두 패역이 아니냐?

연단 사역은 주로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자기 앞날에 대해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는 정도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연단이 끝나게 된다. 사람이 죽도록 힘든 지경에 이르러 죽음의 기분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이 연단이 끝나지 않는다. 봉사자의 단계에서도 연단은 극한에 이르지 않았다. 욥의 경우는 의지할 곳이 전혀 없을 정도로 극한의 연단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런 희망도 없고 의지할 곳도 전혀 없는 지경까지 연단을 받아야만 그것이 참된 연단이다. 봉사자일 때 네가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계속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면, 최종적으로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네가 욥의 시련을 겪는 것은 베드로의 시련을 겪는 것이기도 하다. 욥이 시련을 받을 때 굳게 서자 마침내 여호와가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굳게 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거룩한 나라에는 나타나지만 더러운 땅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말했겠느냐? 다시 말하면, 네가 성결하게 되고 굳게 서야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있는 것이지, 굳게 서지 못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연단으로 인해 떠나거나 원망하고 굳게 서지 못해 사탄의 조롱거리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약 욥처럼 시련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를 증오할 수는 있어도 절대 불평하지 않고 입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네가 심하게 연단을 받을 때에도 욥처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에게 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며 관념도 없다면, 그때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너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너에게 수많은 관념과 선입견이 있고, 사심, 잡념, 요구, 육적인 이익이 많아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이고, 또 네가 하나님을 만나도 너 자신의 관념을 가지고 평가함으로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많은 일이 닥쳤을 때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아도 내려놓을 수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으며, 연단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굳게 선 것이다. 만약 네 가정이 평안하고 육체적으로 누릴 수 있으며 너를 핍박하는 사람이 없고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너에게 순종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너를 연단할 수 있겠느냐? 연단 속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고, 너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닥쳐야만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많은 일을 역이용하고, 또 사탄의 수많은 행위, 참소, 교란과 미혹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너에게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똑똑히 보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네가 사탄을 분별하게 하고 나아가 사탄을 증오하고 저버리게 한다.

네가 많은 실패를 겪고 연약함을 수없이 체험했으며 소극적인 경우도 많은데 이 역시도 하나님이 주는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만사와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든, 연약해서 넘어지든, 모두 하나님께 달렸고 하나님이 주관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네게 시련을 주는 것이지만 네가 알지 못하면 그것이 시험이 된다. 사람은 두 가지 상태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는 사탄에게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전자는 성령의 빛 비춤을 받아 자신에 대해 알고 증오하고 통회하게 되며,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게 된다. 반면 후자는 자신에 대해 알 수는 있지만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게 된다. 이것을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탄의 시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임을 알고 하나님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며 앞으로 보완하여 다시는 그렇게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잘 먹고 마시며,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 갈급해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시련이다. 고통을 받은 후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계속 인도하고 빛을 비추어 주고 깨우쳐 주고 먹여 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임을 알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아예 자포자기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탄의 시험이 닥친 것이다. 욥이 시련을 겪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 사탄이 내기를 한 것이고, 사탄이 욥을 학대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사탄이 욥에게 임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욥을 시험한 것이지만 욥은 하나님 편에 섰다. 욥이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다면 시험에 빠졌을 것이다. 사람은 시험에 빠지면 위험하다. 연단 겪는 것을 하나님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태가 좋지 못하면 사탄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네가 이상(異象)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하면 사탄이 너를 참소하고 이상에 대해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에 빠지게 된다.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지 않으면 온전케 될 수 없다. 너는 세부적으로 체험하며 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유로 관념이나 많은 속셈이 생기는지, 또 그런 것에 대한 적절한 실행 방법이 있는지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안다면 분량이 있다는 의미다. 겉으로만 열정이 있다면 참된 분량이 아니므로 전혀 굳게 설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알고 또 언제 어디서든 체험할 수 있고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목양자들을 떠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볼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줄 모르고, 일이 닥쳐도 처리할 줄 모르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모르고 영 생활을 할 줄도 모른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너의 실생활에 적용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너에게 마음이 누림을 잃고, 하나님의 함께함이 없고 어둠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연단이다. 네가 무엇을 하든 문제가 생기고 실패하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이다. 어떤 때 네가 거역하는 일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했어도 사람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징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성령 역사는 아주 세밀하다. 사람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생각 하나까지도 아주 또렷하게 감찰하고 사람이 속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네가 일을 할 때 한 번, 두 번 문제가 생기다 보면 너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차츰 알게 될 것이다. 여러 번의 징계를 통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지 알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인도에 정확하게 반응하게 된다. 어떤 때 네가 거역하면 마음에 하나님의 책망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는 징계이다. 네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소홀히 하면, 하나님은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답게 대할수록 하나님은 너에게 더 많이 깨우쳐 줄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 어떤 사람은 흐리멍덩하게 믿고 지나친 일을 많이 해도 징계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서는 성령의 뚜렷한 역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위해 사명을 버리고 사업하러 떠나도 징계가 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더 위험하다. 지금 성령의 역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온전케 되기도 어렵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성령의 역사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징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연단 속에서 굳게 설 수 있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따라가며, 최소한 떠나지 않고 베드로의 0.1%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사용 가치가 없다. 반대로, 빨리 깨닫고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며 베드로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들 또한 많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는데, 그들에게 징계하고 깨우쳐 주는 일을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벗어 버릴 수 있게 한다. 이런 사람은 금은보석이고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많은 사역을 했는데도 여전히 모래나 돌이라면 너는 가치가 없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하는 사역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데, 한 무리 사람을 온전케 하고 또한 일부 사람들을 도태시킬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어, 분명 일부 불신파나 악인이 도태될 것이라는 말이다.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부정적인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일부 소수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지, 이때 모두 드러난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한 단계 한 단계 역사를 통해 드러나 도태될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정복 사역에서 드러난 사람들이고, 온전케 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온전케 될 사람은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져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정복된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사랑할 뿐이다. 정복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란 실제로 체험하여 알게 됨으로써 생기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마음을 점유하면 사람은 자각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이 근간이 되어 하나님을 위해 고난도 받게 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정복되기만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룬다면 ‘봉사자’ 단계에서 사역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를 정복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것보다 온전케 하는 사역과 도태시키는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그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또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데, 이 두 사역은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해도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복하는 목적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복된 사실이다. 그러나 연단은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연단이 없으면 사람을 온전케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연단은 아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한 무리 사람들을 얻는다. 예전에 말한 열 가지 복은 모두 온전케 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고, 땅에서 형상을 바꾼다는 것은 모두 온전케 되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온전케 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

출처: 하나님 나라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성경의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세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은 말세의 끝자락에 와 있는데,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미 돌아 오셨을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다시 돌아오셨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성경 예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사실을 결합하여 더 많이 생각해 보면 곧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하여 다 함께 교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1.전쟁, 기근, 지진이 발생하는데 대한 예언

마태복음 24장 6~8절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각 언론에서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각지의 재난은 점점 커져가고 있고, 지진, 수해, 가뭄, 화재, 기근, 전염병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 정세는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하며, 전쟁이나 폭력 사태 등이 빈번히 일어나며,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15년 4월 미국의 16개 주에서 H5N2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는데, 전문가들은 이 독감이 미국에서 지난 30년 중 가장 심각한 독감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2015년 4월 25일에는 네팔 중부 지역에서 규모 8.1급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약 9000명이 사망했고 2만2000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것은 이 나라에서 80년여년만에  일어난 가장 큰 자연재해였습니다.  2016년 4월에 인도에서는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3억 명 이상이 식수난을 겪었고,  2017년 2월 4일부터 6일까지는 많은 양의 지속적인 눈이 내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일련의 눈사태가 발생해 이 눈사태로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였으며 약 2,617가구 15,702명이 눈사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빈번하게 재난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의 인류에게 주는 경고이며 여기에서 이 성경 예언이 오래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아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2.이스라엘의 독립에 대한 예언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독립을 보았을 때에 인자가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지 이미 70년이 지났고, 그 때에 주께서 바로 문 앞에 계신다고 하셨으니, 이제는 주께서 벌써 오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이 예언도 이미 이루어졌음이 분명합니다.

3.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예언

마태복음 24장 14절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예언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하늘아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을 때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듣거나 사람마다 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오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후에야 제자들을 인도하고,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에도 주님의 복음은 방송국, 인터넷, 서적, 또는 신도들의 선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점차 확장되었고, 세계 방방곡곡에 기독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나라들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였고 무신론 정당이 권력을 잡은 중국조차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은 일찍이 땅끝까지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 어느 나라, 혹은 어느 지역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데가 있습니까?

4.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예언

마태복음 24장 12절에는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오늘날 종교계에는 불법을 행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이미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겉모습은 열정으로 가득하지만 그 역시 속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신도들은 돈에 연연하고 돈벌이에 급급해 더 이상 주님의 사역에 전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세속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목사 장로는 성경 지식과 신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만 중시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지 않으며 주님을 높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신도를 이끌어 주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사람을 성경 지식에로만 이끌고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어떤 목사와 장로들은 서로 암투와 시기분쟁을 벌이고, 심지어 당을 짓거나 편 가르기를 하면서 주님에 대한 조금의 경외심도 없습니다. 이렇게 종교계는 불법을 행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교회는 점점 더 황량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율법시대 말기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했던 성전이 황량해졌던 상황을 방불케 합니다. 제사장들이 열등한 제물을 바치고, 성전이 매매의 장이 된것과 같이 오늘날 교회가 율법 시대 후반의 성전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로부터 우리는 이 성경 예언도 이미 이루어졌고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출현에 대한 예언

마가복음 13장 6절에서 제자들이 말세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떤 징조가 있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4장 24절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최근 몇년동안에 한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잇따라 나타나 자신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예수의 이름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표적과 기사를 모방하여 표적과 이사를 보이고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등등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 것으로 볼때 예수님이 재림하는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났을 때, 참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습니다, 이 때 우리는 더욱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나타나셔서 하는 사역을 찾고 구해야 했습니다. 아마 어떤 형제 자매회는 “지금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이렇게 많이 나왔는데, 만약 우리가 스스로 찾고 구하다가 미혹되면 어떡하나요?”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혹될까 두려워서, 하나님의 나타나셔서 하시는 사역을 찾고 구하지 않고, 주님께서 돌아오셨는데도 우리가 알지 못하여, 주님께 버림을 받게 된다면 , 이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격이고, 산돼지 잡다가 집돼지 잃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무릇 현혹당할까 두려워 주님을 전하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접촉하지 않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의님 재림 영접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이렇게 하여야 주님을 맞을 수 있고, 또 미혹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거짓 그리스도의 주된 특징은: 그들은 간단한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 그럴듯한 잘못된 이론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고 인류의 죄를 짓고 죄를 인정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타락된 사람들이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거짓 그리스도의 실질은 극히 사악한 악령이기에 조금의 진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며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며 생명을 공급해 주십니다.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그저 간단한 표적과 기사를 보이는 자들은 모두 거짓 그리스도이며 이것은 참 그리스도와 거짓그리스도를 분별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며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으면 미혹될 염려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그리도를 분별할지는 복음영화 <돌아온 그분은 누구실까>의 명장면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성경에서의 예수님 재림에 대한 5대 예언이 이루어졌다

위와 같은 사실들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예언이 모두 이루어졌고,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능하게 어떤 분들은 “주님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영접하지 못했을까요?”라고 물을것입니다. 그럼 우리 다 함께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있어 빗나간 행동은 없었습니까? 

예를 들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일을 대할 때, 많은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목사의 말을 믿고 무릇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하는 사람은 모두 가짜이다라고 여기며,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슬기로운 처녀가 될 것인지에는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깨어서 기다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며 주님의 도를 지키는 일을 중히 여기지만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스스로 주님을 찾고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실행하는데 어떻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7),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 3,8)

주님은 진실하시므로 우리가 오로지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말세에 나타나셔서 하시는 사역을 살펴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선포한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실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면 주님께서 기필코 우리를 이끌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생활 간증 동영상 <진정한 회개>

영상 소개

주인공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교회에서 자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출세를 해야 인정받는다”, “마음을 쓰는 자는 다스리지만 힘을 쓰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 등의 사탄 독소에 물들고 패괴된 이유로, 자기도 모르게 지위와 명예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거기다 교만한 성품으로 동역자들과 명예와 권력을 다투고, 형제자매들을 훈계하고 통제하며 모든 결정권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된 추구 관점과 패괴한 성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나중에 또 경찰에 잡혀 갖은 고문과 세뇌 교육을 받으며,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실체를 알게 되고, 자신에게 있는 큰 붉은 용의 독소까지 알게 되면서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을 미워하고 뉘우쳐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로 이어지는 삶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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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이 돈이다’, ‘내 자녀는 출세해야 한다’라는 좌우명은 모든 부모가 갖고 있는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영업부 대리로 일하고 있는 허문혜 또한 딸 가예가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그 소망을 실현시키고자 직장에서 사직까지 하고 딸의 공부에 도움을 주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압박감을 떨쳐내지 못해 딸 가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에 엄마 허문혜는 딸이 잘되길 바랐는데, 오히려 상처가 될 줄 몰랐다며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고… 이때 동창 방형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준다. 허문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학벌이 돈이다’, ‘내 자녀는 출세해야 한다’라는 관점이 자신과 자녀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어떤 교육 방식이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인지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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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림은 중국 삼자 교회의 일원이었다. 처음에는 삼자 교회를 다니면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중국 정부는 종교 탄압을 더 강화했다. 정부가 허가한 삼자 교회까지 탄압 대상으로 간주하여 많은 교회의 십자가나 건물을 강제로 철거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교회도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 게양과 시진핑의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의 이런 박해에 직면한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길로 이끌지 않고 계속 공산당의 요구에 복종했다. 맹장림은 이런 행위가 주님의 도를 지켜 행하지 않는 것이고, 사탄 마귀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목사에게 삼자 교회를 탈퇴하고 가정 교회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목사는 되려 그를 꾸짖고 반대한다. 이럴 때, 맹장림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항지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찾고 구하며 서로 교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삼자 교회 정책을 내놓은 것은 종교를 근절시키기 위한 계략이었음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아가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데리고 공산당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자 배반하는 행위이고, 그런 목회자는 사탄을 위해 일하는 거짓 목자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맹장림은 믿음의 길에서 핍박과 시련, 환난을 당하는 의의를 깨닫게 되고, 사탄 정권인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지, 절대 사람에게 복종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맹장림과 일부 사람들은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보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돌아오신 예수님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들은 드디어 사탄 정권과 종교 거짓 목자인 적그리스도의 속박을 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오게 되어 모두가 기쁨과 환희에 차 행복해한다.

[기도찬양]참된 기도의 효과

[기도찬양]참된 기도의 효과

말씀 찬양 CCM

참된 기도의 효과
1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간사한 마음 버리기 위해 기도하라
기도를 통해 자신을 깨끗게 하고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으면
너의 성품이 변화되리
사람의 성품은 기도로 변화되리
하나님 영의 감동받을수록
더욱 순종하고 적극적이게 되리
참된 기도로 마음이 점점 정결케 되리

[기도찬양]참된 기도의 효과

[기도찬양]참된 기도의 효과

2
참된 영적 삶은 기도하는 삶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삶
성령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이라네
사람의 성품은 기도로 변화되리
하나님 영의 감동받을수록
더욱 순종하고 적극적이게 되리
참된 기도로 마음이 점점 정결케 되리

3
성령의 감동이 없는 삶은
그저 종교 의식에 불과한 삶
성령의 빛 비춤이 있고 늘 감동받을 때
비로소 영적인 삶을 살게 되리
사람의 성품은 기도로 변화되리
하나님 영의 감동받을수록
더욱 순종하고 적극적이게 되리
참된 기도로 마음이 점점 정결케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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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뮤직비디오 <하나님 백성들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