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20 8월
1995~1999년 하나님나라 복음이 동북, 화북, 중원 지역에 빠르게 확산되다
1995~1999년 하나님나라 복음이 동북, 화북, 중원 지역에 빠르게 확산되다
1995년 초, 4년 넘게 하나님 말씀의 사역을 체험한 하나님 선민들은 진리를 얼마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세 단계 사역의 비밀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으며, 말세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 그들은 모두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짊어진 채 하나님나라 복음을 사방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선 기독교 각 종파의 가정교회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리며 증거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던 수많은 크리스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임을 확신하여 줄지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중공 정부와 종교계의 적그리스도 세력은 진리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극도로 증오했습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온갖 유언비어와 황당한 주장을 꾸며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습니다. 각 종파의 지도자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봉쇄하고, 참도를 구하고 연구하는 신도들을 미혹하고 방해했습니다. 심지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욕설과 구타를 가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체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나라 복음이 종교계에 전파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선민들은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내 최소 50%에 이르는 크리스천들이 이방에서 온 자들인 이유입니다. 이들 이방인들은 순전히 말세에 현현하시어 사역을 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종교계의 대적과 정죄, 배척 덕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기회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덕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중공 정부의 광기 어린 탄압과 체포, 종교계의 모욕과 구타, 배신으로 인해 복음 사역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마음이 연약해진 수많은 하나님 선민은 다급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길을 열어 주시길 구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혜를 내려 주시고,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피조물 사역의 인도 아래, 복음 사역에는 눈에 띄는 진전이 생겼습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하나님나라 복음은 허난,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산시(陝西), 안후이, 장쑤(江蘇) 및 동북 3성 등지에서 신속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기독교 가정교회 중 호함파, 인신칭의파, 중생파, 대찬미파, 안식일파, 영은파 등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고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절정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비할 바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꼈고, 모두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실감했습니다. 또한, 복음 사역은 모두 하나님이 하시고, 사람이 협력하는 곳마다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것도 체득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 선민들은 각 종파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능력 덕분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 음성을 듣는 모든 이를 정복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을 칭송하고 찬미했습니다. 하나님나라, 권병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야로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예전에 알았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낸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을 가득 지니고, 권병과 존귀 그리고 영광을 가득 지니고 땅끝에서 나타난(원문: 興起)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들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최종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자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임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인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의 사역이 확장될 때 나는 너희를 분산시킬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 각 지파를 친 것처럼 너희를 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복음을 온 땅에 널리 전파하기 위한 것이고, 나의 사역을 이방으로 확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나의 이름을 높이 받들며, 각 나라 각 족속도 모두 나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가장 마지막인 이 시대에 나의 이름이 이방에서 높임을 받고, 나의 행사를 이방 사람들이 보며, 또한 나의 행사로 인해 내가 전능자로 불리고,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족속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설령 내가 저주한 족속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사역이고, 말세에서의 나의 사역과 계획의 근본 취지이며, 내가 말세에 성취하려는 유일한 사역이다.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나의 사역은 말세가 되어야만 사람들 앞에 완전히 드러나 보여질 수 있다. 오늘날에야 나는 내 경영의 모든 비밀을 사람에게 완전히 공개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내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게 되었고, 나의 모든 비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의 관심사인 종착지까지도 전부 알려 주었고, 5천 9백 년 넘게 감추어 두었던 나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모두 공개했다. 누가 여호와인가? 누가 메시야인가? 누가 예수인가? 너희는 내 사역의 전환점이 이 몇 개의 이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어떻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전하고 칭송해야 하는지, 또 지난날 나의 이름 중 어느 한 이름을 부르짖었던 모든 족속에게 어떻게 나의 이름을 전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느냐? 나의 사역은 이미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나의 모든 사역을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확장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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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하는 3가지 원칙
기독교 신자에게 기도란 매일 해야 하는 필수 과제이자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대체 어떻게 기도드려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지?’ 오늘 우리 같이 기도의 3가지 원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1. 당신의 기도는 순수하게 하나님께 털어놓는 마음의 소리입니까
우리는 기도드릴 때 기도드리는 시간이나 말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신경 쓸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우리의 다짐을 내비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진 않습니다. 평소 기도드릴 때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헌신하겠습니다. 그 어떤 위험과 고난이 닥쳐도 물러서지 않고 평생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거나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제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자 빛입니다. 범사에 당신의 말씀을 따르고 당신의 뜻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역경이 닥치고 좌절을 맛보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겼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의지도 없어집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멀리합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한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아니라 허풍과 빈말, 그리고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의 기쁨을 얻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여 주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사실 그 속에는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그 본질은 하나님을 농락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10~14)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이 기도드릴 때 교만하고 자신의 죄를 전혀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 자신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충성심을 자랑하고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세리를 낮추었습니다. 이런 외식하는 기도로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세리는 진심으로 기도드렸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의 기도에서 그의 진심을 보셨고 그의 기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빈말이나 허풍, 또는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고 기만하는 기도를 싫어하시고 우리가 마음을 열고 진짜 마음의 소리와 진실한 말을 통해 하나님과 마음으로 통하길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3~24) 그리고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품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중에서) 이처럼 우리는 기도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마음속 이야기와 진실한 말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진짜 모습과 실제 어려움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드릴 때 우리는 삶 속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타락한 성품을 유로 했을 때도 하나님의 앞으로 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하나님과 진실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미련을 갖고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으로 올 수 없을 때 이렇게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진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은 휘황찬란한 바깥세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저도 육적인 것을 배신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당신의 영이 감각이 없는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믿음과 힘을 주시어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당신의 앞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진심으로 여러 번 기도드리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어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죄악 속에서 살게 할 뿐이며 하나님과도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우리가 진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육적인 것을 배신하면 사탄의 시험과 유혹 역시 배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눴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입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드리지 않고 그저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거나 하나님을 속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며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분별하거나 이겨 낼 수 없어 결국 사악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사탄에게 고통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앞에서 순수하게 마음을 터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첫 번째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기도드리고 있나요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우리 몸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등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던 하나님께서 모두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병이 낫고,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가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해 달라는 등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관련된 일을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대로 이루어주지 않으셨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자신의 육적인 이익만을 위해 줄곧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지는 않았나요?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기도는 사실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고 하나님께 우리의 뜻대로 모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미움만 살 뿐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우리는 육적인 복을 추구하거나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길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축복은 우리에게 한순간의 육적인 복만 가져다줄 뿐 우리의 생명을 자라게 해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해 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생명이 자라길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런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누가복음 12:29~3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대로 살아 내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시고 끊임없이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체면, 지위, 돈, 이익 등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죄를 저지릅니다. 입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속으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지킬 수 있는지 계산하고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이익이 피해를 보지 않을지 생각합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남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앞으로 와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정직할 수 없으며 늘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님의 미움만 살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겐 당신의 구원이 절실합니다. 부디 제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앞으로 제가 또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이거든 저를 징계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드린 후 우리가 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때면 성령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질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기쁨과 축복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하나님의 미움만 살 뿐입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간사한 마음을 배신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며 가감 없이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실천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줄어들 것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에서도 서서히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기도가 이뤄 낸 효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누가복음 11:9~10) 여기서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진리 진입에서 진실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주시어 우리의 영적 생명이 서서히 자라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굳게 서기 위해 기도하나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은 일에 직면하곤 합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집안에 평화롭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천재지변이나 인재가 덮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께 이런 상황을 모두 거두어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힘들게 사역을 하고 심지어 결혼 생활이나 일도 뒤로 한 채 하나님만 믿었던 사람도 큰 병이 덮치면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하며-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나 하루빨리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께 실망하고 비관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적 이익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며 이기적이고 비겁하게 하나님께 바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뜻대로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빨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온갖 고통을 끝까지 견뎌 당신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얼마나 큰 좌절을 겪든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이런 의지를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면 너는 굳게 설 수 있다.』(<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속은 괴로워 심히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제 안은 어둡지만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니 당신의 사랑을 제 안에 더 많이 만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기를 원한다면….』(<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중에서) 따라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며 증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는 마음으로 육적인 고통이 닥친다고 해도 굳게 서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입니다. 시련 앞에서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생겨 몸과 마음으로 큰 고통을 견뎌야 했던 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왜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을 주셨냐고 원망하지 않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욥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건 거두시건 피조물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나 원망도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갖춰야 할 마땅한 이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그 후 욥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순종,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도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증거하며-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믿음에 힘을 주시어 우리가 난관을 헤쳐 나가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굳게 설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이상이 바로 기도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이 원칙에 따라 실천하고 진입한다면 형제자매님들은 예상치 못했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 나라
제5장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 단계
홍수 후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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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간증 영화 <천국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에 가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천국의 백성
영상 소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3)
시립병원 의사 정승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항상 욥과 같이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 달리 자신과 관련된 일이나 체면 깎이는 일이 닥치면 늘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었다. 그리고 연단과 시련이 닥칠 때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기까지도 했다.
자신의 이기적이고 간사한 사탄의 본성을 보게 되고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게 되는지, 그 근원을 알게 되면서 점차 정직하게 사는 길로 추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승윤은 교회 사역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들어가게 되는데, 과연 그녀는 이런 일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겪게 될까?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정승윤의 체험을 그린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을 증거하는 말씀 선포
전능하신 하나님이 현현하시어 사역하시기 전,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동북(東北) 3성 및 허난(河南), 안후이(安徽), 산시(山西) 등지의 가정교회에서 사역하였습니다. 예배와 설교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 많은 이들이 성령역사의 뜨거운 열기를 누리고, 믿음과 사랑이 부단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성령 흐름 가운데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은 바로 이들 가정교회의 리더였습니다. 1991년,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들 가정교회 가운데서 음성을 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당시 선포된 성령의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고 설교를 하며 하나님 선민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그리고 시련과 연단을 경험하며 수많은 고통을 겪었고, 진솔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줄곧 교회에서 설교하고 사역하며 하나님 선민들을 이끌었고, 하나님 선민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끄는 성령의 인도를 누렸습니다. 1992년 8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라는 말씀을 선포하여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을 증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해 사역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사람이자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더 많이 충족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 받는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는 데 필요한 매개자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통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 집에 있는 어떤 일꾼이나 사도와는 다르다. 그들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다른 일꾼이나 사도들과 사역의 본질, 그리고 쓰임 받는 배경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역의 본질과 쓰임 받는 배경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자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으로 역사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이다. 반면, 다른 일꾼이나 사도의 사역은 그저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다방면의 지시를 전달하고 실시하는 것이거나, 교회 생활을 유지하는 일부 단순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일꾼들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자가 아니며, 또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쓰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진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이므로 일부는 리더가 된 후 실체가 드러났고, 또 어떤 이는 많은 악행을 저질러 결국 도태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한, 어느 정도 자질과 인성을 갖춘 사람이며, 성령이 미리 예비하여 온전케 한 사람이다. 성령이 그를 완전히 인도하는 것은 물론, 특히 사역 면에서는 성령이 지배하고 주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민을 인도하는 길에 오차가 생길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사역에 책임을 질 것이며, 언제든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적인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것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안 된다. 또한, 절대적으로 순종하되, 옳고 그름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은 너와는 무관하니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중에서)
『하나님 집의 재물과 물질, 모든 재산은 사람이 마땅히 바쳐야 하는 제물이다. 그 제물은 제사장과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다. 사람이 바친 제물은 하나님께 누리라고 드린 것이고, 하나님은 그 제물을 제사장에게 베풀어 누릴 수 있도록 해 줬으므로 다른 사람은 그 제물을 누릴 자격이나 권리가 전혀 없다. 그 제물(돈과 누릴 수 있는 물질)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을 교회의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모든 행정 및 사무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그의 직책은 바로 하나님 선민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체험하도록, 그리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확장하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것처럼, 은혜시대에 예수님께 쓰임 받은 베드로가 하나님 교회를 목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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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 반복 되는 죄를 이기는 방법
최근 몇 년간, 세계 각지에선 점점 더 큰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졌으니 주님은 이미 돌아오셨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 11:45)란 성경 말씀을 떠올리면 걱정부터 앞섭니다. 밥 먹듯죄를 짓는 자신은 주님께 버려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왜 걸핏하면 죄를 짓게 되는 걸까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주님 앞에서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지만 왜 그 후에도 계속 죄를 짓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반복 되는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이어서 이 문제들에 대해 교제해 보겠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죄가 있을까?
반복해서 죄를 짓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죄란 무엇인지, 우리에겐 어떤 죄들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죄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다음 성경 구절을 떠올립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살인, 방화, 약탈, 도둑질, 우상 숭배 등은 율법에 어긋나는 죄들로 사람이 볼 수 있는 죄입니다. 하지만 이 밖에도, 사람이 볼 수 없는, 생각으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8~19) 그리고 주님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건 살인이고, 속으로 음란한 마음을 품는 건 간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죄든, 생각으로 지은 죄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선 무릇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어긋나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대적을 초래하는 생각과 행위는 모두 죄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비춰보면, 사실 우리에겐 많은 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행동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화를 냅니다. 남이 자신보다 뛰어나면 우리는 상대를 질투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되고, 상대를 포용하고 인내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합니다. 병의 고통, 재난과 재해, 환난과 시련이 닥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결국,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죄든, 생각으로 지은 죄든,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다음의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4~35),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겔 18:20)
주를 믿는데 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주님을 믿는데도 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선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람은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러면 속죄 제물이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한 것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여전히 패괴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구속되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를 저질렀어도 주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면, 주님은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있어, 걸핏하면 죄를 짓고 패괴 성품을 드러내며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뉘우치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이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에게 맞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입니다. 축복이 임하면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지만, 재난이 닥치면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매도하며 아우성을 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았어도 내면의 패괴 성품들은 결코 정결케 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이었지,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수천 년간 패괴되어 온 우리의 본성에는 사탄의 성품이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거짓말과 기만, 질투와 다툼, 음흉함과 악독함, 그리고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모습 등등, 이런 성품들은 죄보다 더 완고하게 자리 잡혀 있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죄를 뉘우친다 해도 내일 또 똑같이 죄를 지으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죄의 속박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7~48)
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으로 인류는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게 되고,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심판 사역을 하심으로써 인간의 패괴 성품을 철저히 해결해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오늘날, 예수님은 벌써 육신을 입고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신 구속 사역의 기초에서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된 심판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셔서, 우리의 죄짓는 본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십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죄악에서 벗어나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지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가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도대체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셔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해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걸까요?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심판 사역이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이라면 하나님께 정죄당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게 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진상을 다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날 선 검과 같습니다. 말씀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시고 우리를 심판하고 폭로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탐욕과 사악함 같은 자신의 사탄 패괴 성품을 알게 됩니다. 전에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주님이 주신 축복과 약속을 보며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성경을 보고,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늘 붙들어 주고,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봉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가를 치르고 헌신도 했으니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평안하고 순조롭게 지켜 주실 것이고 나중에는 천국으로 데려가 영생을 누리게 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이닥쳤을 때 주님이 우리를 돌보지도 지켜 주시지도 않으면 전에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렀던 걸 후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돼.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되지.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돼.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돼.’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정곡을 찌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어 왔던 우리의 속내와 관점을 폭로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나서야 우리 자신이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해 고생스럽게 사역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헌신을 대가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긍정적인 행위들을 보였던 것입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법칙에 따라 살면서 무슨 일에서든 자신의 이익을 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얼마간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그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작은 대가로 큰 축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이번 생에서는 백배로 받고, 내세에서는 영생하고자 했던 것이지, 결코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뜻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변해 원망을 품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습니다. 양심과 이성이란 조금도 없이 너무나 더럽고 패괴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상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뉘우치며 자책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도 증오스러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회개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더는 하나님께 뭔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하며 우리는 자신의 사탄 본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은 사람의 죄를 증오하시기에 더러움이 있는 곳엔 어디나 심판을 내리신다는 사실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본질과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하나님께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 아래, 우리는 점차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알게 되었고, 착실하고 진지하게 피조물의 위치에서 사람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는 마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패괴 성품도 어느 정도 변화되어 마침내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변화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 사역으로 맺은 결실입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형벌을 몇 년간 체험하면 모두 눈에 띄는 변화와 수확을 얻게 되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너무도 큼을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이 너무도 실제적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구원임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해야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제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문제는 해결되셨나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셨나요? 도움이 되셨다면 계속 이 사이트를 찾아주세요. 새로운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 할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을 공유해 주세요! 다른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시면 저희에게 나눠 주세요.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봅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다>란 교회 간증영상를 추천해 드립니다. 크리스천이 하나님 심판을 체험 후 진정 회개하고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상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출처: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 선포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1년 2월부터 1993년 초까지 이미 80여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여 성경 속의 일부 중요한 비밀을 밝히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깨닫고 진입해야 할 수많은 진리를 천명하셨습니다. 어떤 말씀은 세 단계 사역의 실상과 그것이 맺는 결실에 대해 천명했고, 어떤 말씀은 하나님 이름의 비밀과 성경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지녀야 할 관점, 하나님 사역이 사람에게 시련을 주고 연단하는 것의 의미,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지, 어떻게 생명 성품의 변화에 이를 수 있는지 등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교만함과 거만함, 독선, 교활함과 간사함, 이기심과 비열함 등 사탄 성품을 심판하고 폭로하셨고, 사람의 사탄 본성과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여러 가지 속셈과 생각을 폭로하고 해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절마다 사람의 마음에 와닿았고, 비록 매섭고 마음을 찌르기는 했지만 모두 실상만을 폭로함으로써 사람을 진심으로 감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패괴를 아는 걸까? 어떻게 우리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는 걸까?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가 사람을 이렇게 제 손금 보듯 훤하게 알 수 있을까? 누가 사람의 패괴된 진상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오직 성령만이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할 수 있을 뿐이야!’ 그렇게 하나님 선민들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자 성령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시는 인자가 성육신하신 하나님 자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특수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만 여겼습니다.
당시,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임을 알리는 것이 급하지 않으신 듯, 그저 끊임없이 음성을 발하시며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다 1993년 2월,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육신의 비밀> 1편부터 4편까지의 말씀을 선포하여 성육신의 비밀을 밝히시고, 성육신하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천명하셨습니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자신이 만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무엇보다 먼저 육신, 특히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
… 성육신이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체화되며,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선포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이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도,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도 할 리가 없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그는 패괴된 인류라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위치와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진리인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고, 이는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의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에서,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사회 경험이 있는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는 그의 사회적 이력을 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그는 인성이 없고 인성의 상규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사역을 놓고 보면 사람은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행한 사역을 놓고 보나, 그의 어떠함을 놓고 보나 사람은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어 비인류로 분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몰라 ‘신’으로 분류했다. 사람의 이런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이는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즉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이 그의 본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어깨에 놓인 사명을 완성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한다. 이는 모두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역시 그의 본질로 결정된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드러내는 것들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모방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배우거나 수년간 양육받은 결과도 아니며, 그가 스스로 배우거나 꾸민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말씀을 부정하고, 그의 인성과 그가 지닌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한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한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의 형상은 사람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의 말에는 비범한 분위기가 풍기지 않으며, 그의 사역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천지를 개벽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분명 진심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리스도이다. 그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를 쉽게 믿지 못하지만 이는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직분을 완전히 다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육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닌,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서 사역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의 위치에서 말씀하며, 영의 음성을 발하고, 영을 대신해 사역한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하나님의 영은 오늘날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도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가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신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재능이 출중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사역했다. 즉,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킨 것으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에는 생각하는 것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생각도 없다.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할 뿐이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한다. 사람의 뜻이 전혀 없이 신성이 직접 사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지, 사람의 사유나 생각은 없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은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성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고 평범한 사람이 된 것이며, 그분이 정상 인성뿐 아니라 완전한 신성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겉모습을 가지셨지만 신성의 본질을 지니셨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하나님 영이 직접 선포하신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고 사역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필요에 따라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양육하고 공급하십니다. 평소 그분이 사람과 접하며 마음을 터놓고 한 이야기들 역시 모두 진리이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그분의 인성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이더라도, 사람은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경외심이 생겨나 ‘참으로 성령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틀림없구나!’라고 찬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의 본질은 사람이고 그에게 신성의 본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또한 비록 성령의 깨우침이 들어 있고 진리에 부합하며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로 교제한다 해도 그는 그저 하나님 말씀 사역의 기반 위에 자신의 깨달음과 인식 혹은 체험 간증을 말하는 것일 뿐,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선지자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는 그저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말할 수 있을 뿐, 직접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은 한계가 있고, 그들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신분으로 사역을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신성의 본질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진리를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구세주의 현현과 사역을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본 하나님 선민들은 줄곧 말씀을 선포하신 인자가 결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며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드디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그제야 비로소 크게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사역해 온 인자가 바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자, 현현하시어 사역을 시작하신, 돌아오신 예수님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크게 뉘우치며 괴로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도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특수한 역할을 이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해 소홀히 대했던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슬프게 통곡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 그리스도의 낮춤과 감추심이 사람을 정복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지만, 그리스도는 한 번도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지도,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널리 소문내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분을 자처하신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시며,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공급하고 이끄시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사역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고, 그가 드러내는 것으로 자신의 본질을 증명한다. 그의 본질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분은 그가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본질로 결정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감추신 하나님의 크나큰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당시 슬픔과 기쁨이 뒤엉킨 복잡한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 그들은 자발적으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엎드리니 기쁨이 있었고, 자신이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왔음을,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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