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 년 전,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오셨을 때 그는 로마 정부와 유대교의 핍박과 추적을 당했고,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혔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여전히 우주와 땅끝까지 전파되었고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반드시 흥한다는 말을 입증하게 되었어요. 말세인 오늘날 예수님은 다시 성육신으로 돌아오셨고,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중국에서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시면서 끊임없이 중국 정부의 잔혹한 박해와 추적을 당하는 동시에 또 종교 각종 각파의 훼방과 정죄와 버림을 당했어요. 이는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한 것이에요.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24~25) 하나님께서 사역하는 기간 중국 정부는 미친 듯이 말세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따르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체포하였고, 여러 차례 긴급회의를 열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의하고 제거하려고 했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곳곳에 공고문을 붙이고 TV, 라디오, 신문 등 매체를 이용하여 제멋대로 날조하고 비방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을 모독했고 강제로 그릇된 사설을 주입하고 쇠뇌시켰어요. 그들은 또 거액을 포상금으로 내걸어 하나님의 선민을 신고하게 하였고 비밀리에 하나님의 선민을 함부로 감금하고 노동 교육을 시키고 갖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어요. 심지어 무장 경찰과 군대를 풀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진압하기까지 했어요. 이와 동시에 종교계도 중국 정부에서 인터넷에 날조한 유언비어로 신도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막고 현혹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세요, 사탄의 세력들이 아무리 미친 듯이 날뛰고 대적하고 반격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불과 20여 년의 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나라 복음은 가혹한 핍박 속에서도 온 중국 대륙에 전파되었고 수십만 개의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잇따라 세워졌으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어요. 또 각종 각파의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발하시는 음성을 듣고 속속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왔는데 이는 성경의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이사야 2:2)라는 예언을 성취한 것이에요.
모진 핍박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가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반드시 흥한다는 말을 입증한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아요. 『나의 나라는 온 우주 위에서 형성되고, 나의 보좌는 억만 백성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천사의 협력으로 나의 대업이 곧 완성될 것이다. 아들들과 백성이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내가 그들과 함께 모이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 나라의 백성이 어찌 나와 함께함으로 인해 뛰어다니며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것이 대가 없이 모이는 것이란 말이냐? 나는 모든 사람의 눈에 존귀하게 보이며, 모든 사람의 말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나는 돌아올 때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을 정복할 것이다. 때가 왔도다! 나는 나의 사역을 펼칠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왕권을 잡을 것이다! 나는 돌아올 것이다! 나는 떠날 것이다! 이는 사람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날이 도래하는 것을 보게 하고 기쁘게 맞이하게 할 것이다!』(<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제27편 말씀> 중에서) 지금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면으로 확장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속속 전능하신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나라 복음이 가혹한 핍박 속에서도 여전히 신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이 사실은 바로 성령의 역사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고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흥하리라”는 말을 증명해 주고 있어요. 이와 동시에 모든 인류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바로 계시록에 예언된 재난 전에 들림 받는 빌라델비아 교회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어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면 다음의 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탄생과 발전>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의 진정한 함의를 깨달아야 한다. 이전에 내가 너희에게 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의 함의는 모두 너희의 긍정적인 진입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와 달리, 너희의 믿음에 대한 본질을 분석하려 한다. 물론 이것은 부정적인 면에서부터 너희를 인도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자신의 진면목을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가 경건하고 충성스럽다며 끝없이 과시할 것이다. 내가 너희 마음속 깊은 곳의 추한 모습을 들춰내지 않는다면, 너희는 저마다 면류관을 제 머리에 씌우고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릴 것이라는 의미이다. 너희는 오만 방자한 본성 때문에 양심을 팔아먹었으며,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였다. 또한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면서 너희의 속셈과 생각,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두 눈도 빛 속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말끝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한평생 몸을 바치겠다고 외치고, 그가 일찍이 말씀했던 진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끊임없이 되뇐다. 이것이 곧 너희의 ‘믿음’, 바로 너희의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믿음’이다. 예로부터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매우 엄격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감언이설로 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를 진심으로 대했으므로 너희 또한 나를 참된 믿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이란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구태여 이러한 고난을 받겠느냐’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왜 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또한 조금도 없느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 왜 그를 멸시하느냐? 왜 그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왜 그를 공개적으로 판단하느냐? 왜 늘 그의 행적을 캐느냐? 왜 그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느냐? 왜 일을 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지 않느냐? 왜 그의 제물을 강탈하고 훔치느냐? 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말하느냐? 왜 그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느냐? 왜 그를 뒤에서 모독하느냐? 이런 것들이 너희의 ‘믿음’이냐?
너희의 언행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분이 드러나고, 너희가 일을 행하는 동기와 목표에는 ‘불신’의 성분이 가득하다. 심지어 너희의 눈빛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이 섞여 있다. 너희는 일분일초도 불신을 버린 적이 없었기에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배반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피가 온몸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에 새긴 발자국이 참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는 착실하게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너희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한 말씀을 반신반의할 뿐 곧장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이는 너희가 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에 대해 늘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도 그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항상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취하며, 그의 말씀도 늘 귓등으로 흘려보낸다. 또한 편견으로 인해 그가 행하는 일들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무리 설명을 해 줘도 관념을 내려놓기 어려워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너희 마음속에 섞여 있는 불신의 요소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따르면서 아직 뒤처진 적이 없긴 하지만, 너희의 마음속에는 패역의 성분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 그 패역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데에 끼어 있는 불순물이다. 어쩌면 너희는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을 보고 자신의 속셈을 깨닫지 못한다면, 너희는 멸망할 존재가 분명하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는 사람은 그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지, 그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그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으면서 억지로 따르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지는 오래됐으나 대부분 ‘하나님’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흐리멍덩하게 따를 뿐, 대체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또는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른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할 뿐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큰 웃음거리 아니겠느냐?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천상의 비밀을 보고, 이제껏 이해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의 ‘지식’을 수없이 들었지만, 가장 얕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수많은 진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왜 모르겠어요? 사람 얕잡아 보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사람은 지금 나를 따르고 있으면서도 오늘날의 모든 사역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다. 가장 쉽고 가장 간단한 문제도 그냥 흘려보내는데, 하물며 가장 복잡한 ‘하나님’ 같은 문제는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너는 마땅히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네가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야말로 네가 가장 잘 알아야 할 문제이다. 너는 큰 흐름을 따르는 것만 알 뿐 네가 갖추어야 할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정말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아느냐? 정말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 정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모른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의 존엄성을 잃은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 내가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인간의 본질과 나의 모든 행사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는 경륜의 마무리이자 내 사역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인생의 모든 비밀을 미리 알려 주어 내게서 받아들이게 하려 한다. 이는 말세 시대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너희가 받아들인 적 없는 모든 생명 진리를 반드시 너희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너희는 너무도 부족하고, 갖춘 것이 몹시 적기 때문이다. 어둠이 닥쳤을 때 너희가 또다시 길을 잘못 들어 악한 자의 간계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해야 할 사역을 다 하고, 너희에게 맡긴 사명을 모두 전하여 사역을 끝내려 한다. 너희는 깨닫지 못한 도가 너무 많고 알지 못하는 일도 한없이 많다. 너희는 너무 무지하다. 나는 너희의 분량과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너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씀이 많다 해도 너희가 지금까지 받아들인 적 없는 모든 진리를 알려 주고자 한다.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나를 위해 굳게 설 수 있을지 늘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너희를 얕보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모두 나의 정식 교육을 거치지 않은 우마 부류이며, 너희에게서 과연 어느 정도의 영광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많은 정력을 쏟아 너희에게 사역하였음에도 적극적인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소극적인 요소도 손꼽을 정도로, 겨우 사탄에게 치욕을 주는 간증만 할 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다 사탄의 독소이니 내 눈에 너희는 구제 불능처럼 보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러 나는 너희의 갖가지 표정과 태도를 보고 나서야 너희의 진짜 분량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늘 너희를 염려한다. 사람이 혼자 살아간다면 정말 오늘보다 낫거나 오늘과 비슷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작은 분량이 걱정되지 않느냐? 너희는 정말 이스라엘 선민처럼 언제나 나에게 일편단심일 수 있느냐? 너희가 드러내는 것은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어린애의 장난기가 아니라 주인의 채찍을 벗어나기 위해 분출하는 우마의 야성이다. 너희는 너희의 본성이 너희, 모든 사람의 약점이자 공통적인 병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하고 싶은 유일한 당부는 절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굳게 서서 나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증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내 사역의 중심이다. 너희는 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리아가 꿈에서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들인 것처럼 믿고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결’이다. 너희는 나의 말을 가장 많이 들었으므로 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자들이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귀중한 재산을 주었고, 모든 것을 베풀었다. 너희의 지위와 이스라엘 백성의 지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지만 너희는 그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얻었다. 그들은 나의 출현을 고대했으나 너희는 나와 함께 좋은 나날을 보내며 나의 풍성함을 누렸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너희는 무슨 자격으로 나와 다투고 재산을 쟁탈하려 하느냐? 너희가 얻은 것이 아직도 적단 말이냐? 나는 너희에게 아주 많은 것을 주었지만 너희가 돌려준 것은 가슴 시린 슬픔과 걱정, 그리고 억누르기 힘든 울분이다. 나는 너희가 너무나 밉지만, 한편으로는 또 안쓰럽다. 그래서 모든 분노를 참으며 너희에게 거듭 저항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사역하면서 한 번도 인류에게 항의한 적이 없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나는 너희의 ‘기만책’만이 가장 유명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명성 높은 옛 ‘선조’가 너희에게 남겨 준 귀중한 유산 같다. 나는 이런 비인간적인 개돼지 부류를 실로 증오한다. 너희는 너무 양심이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도 저열하다! 너희의 마음은 너무나 강퍅하다! 나의 이런 말과 사역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가져갔다면 벌써 영광을 얻었겠지만 너희 가운데서는 불가능하다. 너희에게는 무자비한 매장과 차가운 눈빛, 책임 전가만 있을 뿐이다. 너희의 감각은 지나치게 마비됐고 너무도 무가치하다!
사람에게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믿음’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왜 믿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아는 것이 너무 없고 부족함도 너무 많다. 그저 무지몽매하게 나를 믿을 뿐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데도 ‘집요하게’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게 내게 간구하거나 아무렇게나 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나를 알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 사역으로 나를 달리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수많은 권능도 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게 매우 ‘탄복’했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나의 뛰어난 능력을 몹시 흠모하기도 했다. 당시 유대 백성은 내가 의술이 뛰어나고 범상치 않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그 많은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를 앙모하고 나의 그 모든 능력을 참으로 부러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행한 권능을 본 자들은 나를 가까이 따르기 시작했으며, 수천 명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음에도 사람은 나를 훌륭한 의사로만 생각했고, 내가 많은 말로 당시 사람들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제자보다 뛰어난 스승으로만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은 내가 행한 사역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음에도, 그 성경 구절에서 나를 병 고쳐 주는 ‘대단한 의사’, 무지한 자들의 ‘스승’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 나를 ‘인자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은 나의 ‘의술’을 뛰어넘고 심지어는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었지만, 의아하게도 그렇게 명망 높고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나를 보잘것없는 의사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 족속은 나의 은혜 때문에 나를 믿었고 곳곳에서 나를 따랐다. 그 무지하고 식견이 좁은 자들은 그저 내가 나타내는 이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 나를 따랐다. 그들은 나를 유대 족속 중 가장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지도자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을 때,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나를 엘리야 또는 모세라고 하고 가장 오래된 선지자라고도 했으며, 또 최고의 의사라고도 했다. 나 스스로 내가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라고 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나의 어떠함과 신분을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하늘은 본디 내 아버지가 거하는 곳이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전 인류를 구속하고 속량하리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인류의 구속주임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그저 나를 인자한 사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전부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일 뿐,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했고,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이렇게 나를 믿고 있고, 또 이렇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믿음’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왜 믿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아는 것이 너무 없고 부족함도 너무 많다. 그저 무지몽매하게 나를 믿을 뿐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데도 ‘집요하게’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게 내게 간구하거나 아무렇게나 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나를 알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 사역으로 나를 달리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수많은 권능도 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게 매우 ‘탄복’했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나의 뛰어난 능력을 몹시 흠모하기도 했다. 당시 유대 백성은 내가 의술이 뛰어나고 범상치 않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그 많은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를 앙모하고 나의 그 모든 능력을 참으로 부러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행한 권능을 본 자들은 나를 가까이 따르기 시작했으며, 수천 명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음에도 사람은 나를 훌륭한 의사로만 생각했고, 내가 많은 말로 당시 사람들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제자보다 뛰어난 스승으로만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은 내가 행한 사역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음에도, 그 성경 구절에서 나를 병 고쳐 주는 ‘대단한 의사’, 무지한 자들의 ‘스승’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 나를 ‘인자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은 나의 ‘의술’을 뛰어넘고 심지어는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었지만, 의아하게도 그렇게 명망 높고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나를 보잘것없는 의사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 족속은 나의 은혜 때문에 나를 믿었고 곳곳에서 나를 따랐다. 그 무지하고 식견이 좁은 자들은 그저 내가 나타내는 이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 나를 따랐다. 그들은 나를 유대 족속 중 가장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지도자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을 때,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나를 엘리야 또는 모세라고 하고 가장 오래된 선지자라고도 했으며, 또 최고의 의사라고도 했다. 나 스스로 내가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라고 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나의 어떠함과 신분을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하늘은 본디 내 아버지가 거하는 곳이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전 인류를 구속하고 속량하리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인류의 구속주임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그저 나를 인자한 사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전부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일 뿐,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했고,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이렇게 나를 믿고 있고, 또 이렇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맹장림은 중국 삼자 교회의 일원이었다. 처음에는 삼자 교회를 다니면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중국 정부는 종교 탄압을 더 강화했다. 정부가 허가한 삼자 교회까지 탄압 대상으로 간주하여 많은 교회의 십자가나 건물을 강제로 철거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교회도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 게양과 시진핑의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의 이런 박해에 직면한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길로 이끌지 않고 계속 공산당의 요구에 복종했다. 맹장림은 이런 행위가 주님의 도를 지켜 행하지 않는 것이고, 사탄 마귀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목사에게 삼자 교회를 탈퇴하고 가정 교회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목사는 되려 그를 꾸짖고 반대한다. 이럴 때, 맹장림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항지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찾고 구하며 서로 교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삼자 교회 정책을 내놓은 것은 종교를 근절시키기 위한 계략이었음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아가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데리고 공산당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자 배반하는 행위이고, 그런 목회자는 사탄을 위해 일하는 거짓 목자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맹장림은 믿음의 길에서 핍박과 시련, 환난을 당하는 의의를 깨닫게 되고, 사탄 정권인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지, 절대 사람에게 복종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맹장림과 일부 사람들은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보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돌아오신 예수님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들은 드디어 사탄 정권과 종교 거짓 목자인 적그리스도의 속박을 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오게 되어 모두가 기쁨과 환희에 차 행복해한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잡은 이래로 중국을 무종교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지속해 왔다. 특히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종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과 박해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정부 관제하에 있던 삼자 교회의 십자가까지 강제 철거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우종광은 복음 전도사다. 그는 중국 당국의 체포망에서 벗어나 심자 교회에 가입한 천은송의 집에 가게 된다. 그 시각, 천은송이 있던 삼자 교회도 중국 당국에 의해 철거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중국 공산당을 위해 기도하며, 그것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을 위해 오랫동안 축복 기도를 해왔지만 중국 당국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교회를 무참히 부수고 있으니 과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냐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모두가 이 문제를 놓고 계속 옥신각신했지만 명확한 답은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종광과 함께 교제를 하면서 사람들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의 진정한 뜻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중국 공산당의 사탄의 본질에 대해서도 분별하게 되고, 목회자들을 좇아 삼자에 가입해 사탄 정권에 의존해 온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게 되는데…
우종광은 전도자입니다. 그는 중국 공안 당국의 체포를 피해 다니다 가정 교회의 교역자인 정흠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정흠의 교회 사람들과 함께 진정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지 등의 신앙에 관한 진리를 나누게 됩니다. 그 교제를 통해 정흠과 교회 사람들은 그동안 가졌던 의문을 모두 풀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게 되며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성경참고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이사야 62: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시록 1: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계시록 4:8)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시록 15:3)
대표적인 하나님 말씀
『예수가 행한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대표한 것이자 은혜시대를 대표한 것이고, 여호와가 행한 사역은 여호와를 대표한 것이자 율법시대를 대표한 것이다. 그들의 사역은 한 분의 영이 서로 다른 두 시대에 행한 사역이다. … 서로 다른 두 이름으로 불렸지만, 한 분의 영이 두 단계의 사역을 한 것이다. 그 사역은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이름과 사역의 내용이 다르기에 시대 역시 다르다. 여호와가 오면 여호와의 시대이고, 예수가 오면 예수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일단 오게 되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그 단계의 새로운 길이 하나의 이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언제나 새롭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발전함을 의미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신기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역사 이상(3)〉 중에서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에는 시대마다 자신이 나타내는 진정한 성품이 있고, 그의 이름과 사역은 모두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오롯이 갖춰진 새로운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사역을 하였고, 지상에서 첫 단계의 사역을 하였다. …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그의 사랑과 긍휼, 그리고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 주었다. 사람은 오직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해야만 평안과 희락을 누릴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구원과 죄 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며,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의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불렸다. 예수는 구약성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역을 행하였지만,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사역은 끝이 났다. 이것이 예수가 한 모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이었고, 은혜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말세에는 그의 이름을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얻으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끝낸다. 모든 시대와 모든 단계의 사역에서 다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다.』
〈역사 이상 (3)〉 중에서
『따라서 말세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면 나의 이름은 또 바뀌게 된다. 여호와는 물론 예수라고도 칭하지 않고, 메시아라고는 더욱 칭하지 않는다. 크나큰 능력을 갖춘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하는데, 나는 이 이름으로 전체 시대를 끝낸다. 나는 여호와라고 칭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 불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 구주 예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늘날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예전에 알았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와 시대를 끝내는 하나님이자 나의 모든 성품을 가득 지니고, 권능과 존귀 그리고 영광이 충만하며 땅끝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는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들은 나와 접촉한 적도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이가 바로 말세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으면서도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는 사람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마치 뜨거운 해 같고 불꽃 같으며, 능력이 충만하고, 권능을 가득 지니고 있다. 세상의 온갖 것이 나의 말에 심판받고 불사름 속에서 정결케 될 것이다. 결국에 만국은 반드시 나의 말로 말미암아 복받기도 하고 산산이 부서지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말세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바로 돌아온 구세주이고, 온 인류를 정복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사람의 속죄제가 된 적이 있지만, 말세에는 또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해와 같은 불꽃이 되고,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태양임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세에 행하는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택하고 이런 성품을 지닌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들이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뜨거운 해이자 불꽃임을 알게 하고, 유일한 참 하나님인 나를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는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구속주만도 아니라, 천지와 바닷속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라는 내 본래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호와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만 지키며 다시 오신 주님의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이 늘 나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도 내가 이미 말세에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고 새로운 사역을 행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구주 예수의 강림만 하염없이 기다린다면, 나는 그런 자들은 나를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거짓으로 나를 믿는 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 자들이 어찌 ‘구주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나의 강림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의 강림이다. 또한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내가 이 더러운 옛 세계를 철저히 멸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다시 강림하여 그들을 구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가 온 인류를 다시 구속하여 더럽고 불의한 땅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소망한다. 그런 자들이 어찌 나의 말세 사역을 성사시키는 인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으로는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도 없고 나의 사역을 성취할 수도 없다. 그들은 내가 행했던 사역만 앙모하거나 그리워할 뿐, 내가 언제나 새로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여호와이자 예수라는 것만 알 뿐, 인류를 끝내는 말세의 그이라는 것 또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망하고 아는 것은 그들의 고정 관념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맨눈으로 본 것일 뿐, 내가 행하는 사역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는 것이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진리를 찾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글귀나 이치만을 고집스레 지키는 자는 모두 성령의 역사에 의해 내쳐질 자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새로운 사역이 시기마다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라간다면 그것도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에게 내쳐질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이 요구한 것을 실행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역사와 그의 발걸음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을 만큼 늘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성령의 역사를 조금 얻으면 영구불변한 것으로 삼고, 인식이 조금 생기면 하나님의 더 새로운 역사를 ‘뒤쫓’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 보면 하나님을 특정한 조각상으로 규정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히 자신이 본 그 형상이고, 이전에 이랬으면 이후에도 영원히 이러할 것이라고 여긴다. 천박한 인식이 조금 생기면 우쭐거리면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원문: 所有所是)을 제멋대로 퍼뜨리기 시작하고, 한 단계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고 나면 누군가 하나님의 새 사역을 아무리 전해 준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고, 지나치게 옛것을 고수하느라 새 사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를 저버리는 자들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역할과 ‘메시아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아에게 대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한 단계 성령 역사를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패역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 … 어린양의 발자취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이라야 마지막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똑똑한 자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킨다. 또한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그를 따르고 그의 말씀을 지킨 그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말과 행동은 여전히 사람을 너무 역겹게 한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대적하고, 간계를 부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도 따르지 못하면서 옛 사역만 고수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그에게 대적하고, 새 시대에 버림받으며, 징벌을 받는 자가 된다. 이들은 가장 가련한 자들이 아니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낡은 율법을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말하고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에 자신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앞날을 망칠 것이다. 하나님조차 역사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자신이 행한 역사일지라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내쳐야 할 것은 내친다. 그런데 사람이 오히려 경영 사역의 사소한 부분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황당무계함이 아니냐? 사람의 무지함이 아니냐? 복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자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마지막 복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그들은 그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하나님에게 더욱 대적하는 패역자가 된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시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해서도 안 되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날의 사역과 서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도 바뀌고 사람의 실행 또한 바뀌었으므로,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은 하나님에게 칭찬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 중에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성경 안에 국한시키고 유한한 사역에 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정해진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메시아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진정한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생명이 없는 조각상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예수는 이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고불변의 존재로 생각하며 한낱 성경 한 권에 기대어 그를 규정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경영을 모조리 꿰뚫어 보고 그의 모든 행사를 파악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고 거만하며, 과장해서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안다고 생각하든, 내가 보기에 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가장 많이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을 전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 왜 늘 못마땅해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한 고정 관념이 너무 많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실제에 완전히 어긋나고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또다시 사람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 것이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는다〉 중에서
『너희는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은가?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만 믿으며 생명과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생명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예수가 한 진리의 말씀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메시아를 알지 못한 까닭이다. 메시아를 본 적도,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며 온갖 수단으로 메시아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가르치는 진리가 아무리 높아도, 권능이 아무리 커도, 메시아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관점은 매우 잘못되지 않았는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의 잘못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는가? 너는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가?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는가? 만약 네가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하지 않을지 모른다면, 너는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훼방할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도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수도 있다. 너희는 두렵지 않은가?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찢어 버리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혼수 상태인데 예수에게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가 이처럼 고집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다. 그 사람들은 확실히 멸망의 족속이다. 너희는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을 생각만 하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하면서 예수가 하는 말씀에는 전혀 순종하지 않았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희는 무엇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대신하겠는가? 여러 번 범죄하고는 또 입으로 죄를 자백하는 그 정성스러운 마음인가?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드리겠는가?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여러 해 동안 사역한 밑천인가? 너희는 무엇으로 다시 온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는가?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인가
…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된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에게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신앙의 길을 갈 것을 권한다.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또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은 더욱 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 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것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다 이성이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보았을 때, 그 말씀에서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겸손한 사람이 되며,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높이 보지 말기를 권한다. 아주 작긴 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마음으로 너는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마디마디 말씀이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얼마 보지도 않고 “이것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라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정죄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다. 나는 너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너희는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고, 미혹받을까 봐 두려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네가 여러 번 살펴본 후에도 이런 말씀이 진리도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최종에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네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잘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 말고 덤벙대지도 말라. 하나님 믿는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기지도 말라. 마땅히 자신의 귀착지와 앞날,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야지, 자신을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런 말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성경참고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8~11)
『성육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가짜이다. 그리스도란 땅에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역사를 완성하는 하나님만의 독특한 육신을 가리킨다. 이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육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육신, 하나님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영생의 말씀을 베풀어 줄 수 있다〉 중에서
『성육신한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신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적인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며, 인성과 신성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은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 하나님은 성육신함으로 그의 본질을 육신에 실체화하여 그의 육신이 그의 사역을 하기에 충분케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역사는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신하고, 성육신 기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핵심으로 하며, 어떤 시대의 사역과도 섞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며, 육신으로 왔으니 육신 안에서 그가 해야 하는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든 결국 모두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하는 사역을 하고 그의 직분을 다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 나타난 분이고, 하나님 자신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육신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 것을 통해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육신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어떠하심 등등을 모두 구체화하고 인성화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하면, 인자의 겉모습은 어느 정도 국한성이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어떠하심은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나타내는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육신의 각도에서 말씀하고, 인자의 신분과 지위에 서서 인류를 마주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실제적인 말씀과 역사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하였을 뿐이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과 자신을 낮춘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또 사람에게 하나님의 참됨과 실제에 대해 기초적인 인식과 기초적인 정의도 있게 하였을 뿐이다. 비록 예수가 행한 사역이나 역사하는 방식, 말씀하는 각도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본체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예수의 모든 것은 다 조금도 틀림없이 사람이 본 적이 없는 그 유일한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는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각도에서 말씀하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하지 않고, 그 어떤 타락된 인류도 대표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예수가 당시에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피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정상 사람을 입었기에 피조물의 외형이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의 안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정상 사람이다. 즉, 예수 자신이 말한 것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인자라고 한 이상,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한 것은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으로, 피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너희는 예수가 가르쳐 주어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였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한 이상 그는 너희와 지위가 평등한 관점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칭한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한 이상 예수도 자신을 너희와 지위가 평등한 사람,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본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땅에서 예수의 권능이 얼마나 컸든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고 땅의 피조물에 속하였다.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했는데,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하늘 위의 영)을 그렇게 칭했다고 해서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의 아들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관점이 다를 뿐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위격이라는 잘못된 이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육신의 제한을 받는 인자여서 영의 모든 권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관점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었다.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 번 기도한 것과 같다.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그는 유대인의 왕이고 인자이며 그리스도였을 뿐, 영광의 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해야 했던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이 분명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라는 말씀은 물론 하나님이 한 말씀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자신을 증거한 것인데, 하늘에서 영의 관점으로 말씀으로 된 육신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알기나 하는가?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라고 한 예수의 말은 원래 영이 하나라는 뜻이 아닌가? 그저 성육신한 것 때문에 하늘 위아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여전히 하나이다. 어쨌든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시대가 다름으로, 사역상의 필요로, 경영 계획 절차가 같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이 그를 부르는 것도 달랐다. 첫 단계에서 역사할 때는 여호와라고 불렀는데,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자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성육신 하나님을 주님,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당시에 하늘의 영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지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어찌 독생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성육신한 까닭에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불린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이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예수가 기도한 것은 육신의 입장에서 한 것이다.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입었기 때문에 그는 육신의 입장에서 “나의 외형은 피조물이다. 내가 육신을 입고 땅에 왔기 때문에 하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의 입장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본분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면 갖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육신의 입장에서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해서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했을지라도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자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이 성육신한 것일 뿐, 본질은 변함없이 영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당시에 사람들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의 몸에 임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예수 자신이 전적으로 사용하는 영이 아니라 성령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영이 성령과 분리될 수 있겠는가? 예수는 예수이고 성자이며 성령은 성령이라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 그러면 사역을 할 수 없다. 예수 안의 영과 하늘의 영과 여호와의 영은 하나로, 성령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며,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자 만유를 포괄하는 영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의 영은 매우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할 수도, 홍수로 세상을 멸할 수도 있고, 전 인류를 구속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정복할 수 있고 멸할 수도 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지 어느 한 위격의 하나님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은 여호와라고도 할 수 있고, 예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전능하신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주이고 그리스도이며, 인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우주 위에도 있고 만인 속에도 있는데,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관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스스로 한 것이다. 하늘에서 한 사역이든 육신에서 한 사역이든, 그의 고유한 영이 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한 사역이어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하늘의 피조물이든 땅의 피조물이든 다 그의 전능한 손에 장악되어 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영이라고 해도 하나님 자신이고, 사람들 속에 육신으로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의 이름이 무수히 많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그는 하나님 자신이며, 그의 영이 직접 선포한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전 인류를 구속한 것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말세에 각 나라 각 지역에 분명하게 알리는 것 역시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은 전능하고 유일한 참 하나님, 만유를 포괄하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칭할 뿐, 위격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이란 이론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에는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