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은 부각물의 시련을 겪고 나서 자신의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탄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도 직접 느꼈으며, 진리 추구를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위, 미래나 종착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겠노라고 확고한 뜻을 세웠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진리를 얼마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알게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비록 하나님 사역 속의 부각물이지만, 그래도 말세에 현현하여 사역하시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심판하고 정결케 할 대상이자, 하나님이 재난 전에 만드시려는 이기는 자, 즉 첫 열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행세하면서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가 다른 나라의 하나님 선민들보다 높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지위를 향한 욕심과 교만한 성품을 겨냥한 진리를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모압 후대의 시련으로 이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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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3년 5월부터 7월까지 <정복 사역의 실상 2> <사람의 본질과 신분> 등 몇 편의 말씀을 선포하시어 중국의 하나님 선민들이 모압의 후손임을 폭로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압의 후손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함의 후손이 가장 비천한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큰 붉은 용의 자손과 함의 후손은 상징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함의 후손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아무리 저주받았어도 노아의 후손이지만, 모압은 본 뿌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음란함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비록 둘 다 저주를 받았다고는 해도 그 지위는 여전히 다르다. 그래서 모압의 후손이 가장 비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정복되면 이는 무엇보다 큰 설득력을 갖는다.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규례를 타파한다. 네가 저주받은 자든 징벌받은 자든, 내 사역에 이롭고 지금의 정복 사역에 도움이 되면, 모압의 후손이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상관없다. 네가 이 단계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철저하게 행할 수만 있으면, 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어쨌든 육에 속한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만든 존재이다. 너는 피조물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이것은 너의 본분이다. 물론 오늘날 창조주는 우주 전체를 향해 사역한다. 네가 누구에게서 태어났든 결국 너는 피조물 중 하나이다. 너희, 모압의 후손들 역시 신분이 비천할 뿐 피조물의 일부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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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내가 구원하는 사람은 일찍이 내가 예정하고 구속한 적이 있는 인류이다. 그러나 너희는 원래 내가 선례를 깨고 인류 가운데에 둔 가련한 영혼이었다. 너희는 자신이 다윗의 집이나 야곱의 집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압의 족속, 이방 족속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와 언약을 맺지 않았으므로 그저 너희들 가운데서 일하고 말하며 너희를 인도할 뿐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증거를 위해 너희 가운데서 사역할 뿐, 너희를 위해 피를 흘린 적이 없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이냐? 나의 사역이 정말 예수처럼 너희를 위해 피를 흘려 죽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를 위해 이렇게 큰 치욕을 견디는 것은 처음부터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죄가 없는 하나님이 혐오스럽고 역겹기 짝이 없는, 사람 대신 개돼지가 사는 곳에 거리낌 없이 왔지만 내가 처음부터 이 모진 치욕을 참아 온 것은 내 아버지의 영광과 영원한 증거를 위한 것이었다. 너희는 자신의 ‘행위’를 알아야 한다. 또한, 너희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나 인류의 창조자가 아니라 가난하기 그지없는 사탄의 자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인권과 자유가 없으며, 처음부터 인류의 복과 천국의 복은 너희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너희는 인류의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 또한 너희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오늘날 너희를 온전케 하는 것이 처음부터 내 계획의 일부였을지라도 이는 미증유의 사역이다. 너희는 지위가 비천하기 짝이 없고, 본래 인류의 몫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복이 아니더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본질과 신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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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모압은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음행에서 비롯된 인물입니다. 모압의 후손은 하나님 선민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모압의 후손으로 출신이 비천하고, 사악하고 패괴된 존재라는 것을 알고 매우 치욕스러웠으며, 도무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선민들은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하나님 선민들의 마음은 너무나 소극적이 되고 무거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도 할 말이 없고, 모압의 후손인 자신들은 하나님을 찬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찬양을 부를 때도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알고 난 후 크게 열등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졌으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 출처:

하나님 나라

큰 붉은 용 자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에게 시작된 길고 긴 심판과 형벌의 시대

큰 붉은 용 자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에게 시작된 길고 긴 심판과 형벌의 시대

“모압 후대의 시련이 끝난 후, 수많은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의 비천한 지위 때문에 다시는 하나님께 분에 넘치는 요구를 할 엄두를 못 냈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던 잘못된 관점도 눈에 띄게 변화되었으며, 진리와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길 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큰 붉은 용의 나라, 중국에서 태어나 큰 붉은 용의 독소에 물들고 패괴된 탓에 사탄의 본성이 내면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이는 몇 번의 시련을 겪는다고 해서 철저히 정결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교회들을 다니시면서 선민들이 자주 드러내는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간사함 등 사탄 성품과 큰 붉은 용의 여러 가지 독소들을 매우 혐오하고 증오하셨고, 큰 반감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국의 하나님 선민들이 큰 붉은 용의 자손이라는 진실을 폭로하셨습니다. 이로써 ‘큰 붉은 용의 자손의 시련’을 가져오셨습니다.

중국은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땅입니다. 수천 년간 이어진 전통문화와 교육은 사탄의 처세 철학과 논리, 법칙으로 점철되었고, 중국인들은 큰 붉은 용의 자손이 되었으며, 그러고도 자신이 ‘용의 계승자’, ‘용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큰 붉은 용의 독소는 중국인들의 마음속 깊이 심어져 있는 사탄의 여러 가지 논리와 법칙,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처세 철학 등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세상에는 신이 없다”, “여태껏 구세주는 없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고, 유독 독서만 고상하다”, “하늘 위와 땅 아래에서 오직 나만 홀로 존귀하다”,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창성하고, 거역하는 자는 멸망한다”, “도량이 좁으면 군자가 아니요, 배짱이 없으면 장부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아는 자가 걸출한 인물이다”, “고생 중의 고생을 이겨 내야 사람 위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살아서는 걸출한 인물이 되어야 하고 죽어서도 귀신 중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남보다 두각을 나타내 가문을 빛내야 한다”, “이름을 죽백에 드리우고, 위대한 업적을 대대로 전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이러한 것들입니다. 이런 사상과 관점들은 사람의 마음속 깊이 심어져 사람의 생존 법칙과 좌우명, 그리고 본성이 되었습니다. 큰 붉은 용의 독소는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독소들에 의해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며, 교만함과 거만함, 간사함과 교활함, 이기심과 비열함, 사악함과 탐욕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양심과 이성을 잃은 채 오직 사탄의 성품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큰 붉은 용의 독소와 사탄 성품을 정결케 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진리를 선포하셨고, 사람의 사탄 성품에 대해서도 매서운 심판과 폭로, 책망과 훈계를 가하셨습니다. 하지만 큰 붉은 용의 독소가 모든 사람에게 깊이 뿌리내려 사람들이 오로지 사탄 성품만을 드러냈기 때문에 큰 붉은 용의 자손의 시련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역이 되었습니다.

큰 붉은 용 자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에게 시작된 길고 긴 심판과 형벌의 시대

큰 붉은 용 자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에게 시작된 길고 긴 심판과 형벌의 시대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종착지에 관하여> <훈언 3칙> <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등 여러 편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인류의 패괴 본성과 여러 가지 사탄 성품을 한층 더 심판하고 폭로하셨습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인류를 심판하고 폭로하신 말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너희들이 자신을 아는 진리에 공을 들이면 좋겠다. 하나님이 왜 너희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너희의 성품을 혐오할까? 왜 너희의 언사를 증오할까? 너희는 충성심이 좀 있으면 뽐내고 공헌을 좀 하면 보답을 바란다. 또 조금 순종하면 타인을 업신여기고 사역을 좀 하면 하나님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을 대접하고는 돈과 물질을 요구하고 칭찬해 달라고 하며, 동전 두 닢을 내놓고는 아까워하고, 동전 열 닢을 내놓고는 축복해 달라고 하며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한다. 너희의 이런 인성은 정말 입에 담기 민망하고 듣기조차 거북하다. 너희의 언행에 자랑스러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본분을 이행하는 자나 이행하지 않는 자, 인도하는 자나 따르는 자, 하나님을 대접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헌금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전도하는 자나 받는 자 등등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랑만 하는데 우습지 않으냐?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자랑하는데, 너희들의 이성이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냐? 이런 이성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접할 수 있단 말이냐? 너희는 이런 자신이 걱정스럽지 않으냐? 너희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너희의 믿음이 우습지 않으냐? 너희의 믿음이 터무니없지 않으냐? 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 네가 가야 할 길을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사람은 내 오랜 사역 속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람이 나를 진실로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입으로만 나를 하나님이라고 인정할 뿐, 내 입에서 나온 진리는 수긍하지 않고 내가 요구한 진리는 더욱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인정할 뿐, 진리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본질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의 열정 때문에 사람을 혐오한다.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기만하기만 할 뿐, 진심으로 나를 경배하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의 말은 독사의 유혹을 품고 있으며, 극히 교만하여 천사장의 ‘소리’ 같다. 너희의 행실은 썩어 빠졌고, 너희의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속셈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너희는 모두 내 집의 좀 벌레, 내가 혐오하여 내치는 대상이 되었다. 너희는 전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땅에서 권세 잡는 장관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희같이 극도로 패괴되어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연 하나님을 따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느냐? 전례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자격이 있겠느냐? 너희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의 입에는 나를 기만하는 말과 더러운 말, 그리고 나를 배반하는 말과 교만한 말로 가득하다. 너희는 진실한 말로 나에게 간절히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거룩한 말도, 나의 말을 체험하여 나에게 순종하는 말도 한 적이 없다. 이런 너희의 믿음은 과연 어떠하냐? 너희의 마음속은 욕망과 돈으로 가득 찼고, 너희 머리는 물질로 가득 찼다. 너희는 날마다 어떻게 해야 내게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지, 내게 얻은 돈과 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으며, 더 많은 축복이 임하여 더 많고 좋은 물질을 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서 온 진리도 아니라, 너희의 남편(아내)과 아들딸, 그리고 너희가 먹고 입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지 등이다. 너희가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여전히 시체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겉으로 아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산송장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세도록 고생하면서도 내 사역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또 너희는 자신의 육체와 아들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머리를 쥐어짜지만 내 마음을 생각하며 조급해하고 근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너희는 내게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사람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까지 따를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너는 댈 만한 이유도 많을 것이고, 사랑도 아주 클 것이다. 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는 본질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이란 티 없이 순수한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느끼고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도 간격도 거리도 없다. ‘사랑’에는 의심도 추측도 없고 기만도 간교도 없다. ‘사랑’에는 거리도 어떠한 불순물도 없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만도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고, 배반도 거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무엇을 얻고자, 얼마큼 얻고자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너에게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바치고, 고난을 감내할 것이다. 또한 나와 마음을 합할 것이며, 나를 위해 너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너의 가정과 앞날, 청춘과 결혼까지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기만이고 배반이다! 너에게는 어떤 사랑이 있느냐? 참된 사랑이냐, 거짓된 사랑이냐? 너는 얼마나 포기하였느냐? 얼마나 바쳤느냐? 내가 너에게서 얻은 사랑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너는 알고 있느냐? 너희 마음속에는 악과 배반, 기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너희의 사랑에는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위해 충분히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고, 나에 대한 사랑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어째서 너희의 언행은 늘 패역과 기만을 띠고 있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저버린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를 믿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나의 신분에 걸맞게 나를 대하지 않고 늘 나를 난처하게 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따르면서도 매사에 나를 속이고 기만한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섬기면서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사사건건 내게 반기를 든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바친 것은 많지만 정작 내가 요구한 것들은 단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자세히 따져 보면, 너희에게서는 나를 사랑하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했고 이토록 많은 말씀을 공급했는데, 너희가 얻은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나는 너희에게 권고하고자 한다. 내가 불러 모은 이는 패괴된 사람이고, 내가 택한 이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는 마땅히 자신의 언행을 경계하고 속마음과 생각을 성찰하여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또 마지막 때에 온 힘을 다해 너희의 사랑을 내 앞에 바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진노는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내가 많은 말을 하고 내 뜻과 내 성품까지 나타내었건만, 사람은 여전히 나를 알지도, 믿지도 못한다. 혹은 나에게 순종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성경만 따르며 사는 사람, 율법만 따르며 사는 사람, 십자가에만 기대어 사는 사람, 규례만 따르며 사는 사람, 오늘날 나의 사역을 따르며 사는 사람, 이들 가운데 그 누가 내 마음에 합하겠느냐? 너희는 복받거나 상받을 궁리만 하였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와 적이 되지 않고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너희가 너무나 실망스럽다. 너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베풀어 주었지만, 내가 너희에게서 얻은 것은 너무나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기만과 교만, 너희의 탐욕과 사치스러운 욕망, 너희의 배반과 불복종,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를 무성의하게 대하고 속이며 욕되게 한다. 또한 기만하고, 사기 치며, 나의 제물을 강탈한다. 이런 악행들이 어떻게 내 징벌을 피해 갈 수 있겠느냐? 이 악행들은 너희가 나를 적대시하며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너희는 저마다 내 마음에 합하는 부분이 아주 많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이 확실한 증거는 또 누구에게 해당하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는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변치 않는 마음으로 충성한다고 여긴다. 또한 너희는 자신들이 더없이 착하고, 동정심도 넘쳐난다고 여기며, 나에게 셀 수 없이 많이 바쳤고, 나를 위해 행한 것도 충분히 많다고 여긴다. 하지만 너희는 그런 생각들을 자신의 행위와 대조해 본 적이 있느냐? 내가 말해 주겠다. 너희는 교만으로 가득 찼고, 너무나 탐욕스러우며, 건성으로 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나를 속이는 데 탁월하고, 비열한 속셈과 수단이 너무 많다. 너희는 충성심과 진심이 한없이 부족하고, 양심은 더욱 없으며, 마음씨 또한 너무나 악독하여 어떤 사람도 그냥 두지 않는다. 심지어 나에게도 예외는 없다. 너희는 자녀와 남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문전 박대 한다. 너희의 가정과 자녀, 지위와 앞날, 그리고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둘 뿐, 나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너희가 말을 할 때, 일을 할 때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날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너희는 자녀와 남편(아내), 그리고 부모를 생각하지, 나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네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신변 안전, 그리고 너의 가족이다. 네가 행한 일 중에 나를 위한 것이 있었느냐? 언제 나를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나와 내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한 적이 있었느냐? 내 마음에 합하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 실제로 나에게 충성하였느냐? 실제로 나에게 순종하였느냐? 복을 얻으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느냐? 너희는 모두 나를 건성으로 대하며 기만하고 있다. 또한 진리를 우롱하고, 진리의 존재를 덮어 감추며, 진리의 본질을 배반하고 있다. 나를 이토록 적대시했으니,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세력이나 재물은 좋아하지만 심판은 물론, 진리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세력파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에서 세력이 있는 교파만을 골라 찾아다니고, 신학교를 나온 목사와 강사만을 찾는다. 그들은 설령 진리의 도를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반신반의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치지 못한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주시하는 사람은 대단한 목사와 강사일 뿐, 그리스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밖에 없다. 그들은 이렇게 작디작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정복할 수 있고, 이렇게 볼품없는 한 사람이 사람들을 온전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또한 먼지와 거름으로 되범벅된 이 변변찮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라면 천지가 뒤집힐 일, 그야말로 배꼽 잡고 웃을 일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은 하나님이 이들을 택해 온전케 한다면, 저 대단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점에는 불신의 요소가 섞여 있다. 어찌 불신뿐이겠는가? 그들은 진정 이치로는 깨우칠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들은 지위와 명망, 세력, 그리고 거대한 단체와 파벌만 중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이끄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진리와 생명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배반자들이다.

너는 높디높은 지위를 가진 저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지,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상과 야합하는 저 음탕한 자들을 좋아하지,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지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는 제물을 약탈하고 주색에 빠져 사는 저 시체들에 감탄할 뿐,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의 고통은 비웃기만 한다. 또한 제멋대로 행하는 저 적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길 원하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너에게 공급하는 것이 육체와 글귀, 그리고 통제뿐일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에게 향해 있고, 그들의 명예와 지위, 세력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이유로 너에게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다. 너의 마음속에는 높고 큰 형상이 우뚝 솟아 있다. 너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그들의 말과 두 손도 잊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의 그들은 영원히 지고지상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네 마음속의 그는 영원히 초라하고 경외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권세도 거의 없으며, 너무도 위대하지 않기 때문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너희는 오만 방자한 본성 때문에 양심을 팔아먹었으며,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대적하였다. 또한 너희의 그 추악한 몰골이 드러나면서 너희의 속셈과 생각, 사치스러운 욕망과 탐욕스러운 두 눈도 빛 속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너희는 말끝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한평생 몸 바치겠다고 외치고, 그가 일찍이 말씀했던 진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끊임없이 되뇐다. 이것이 곧 너희의 ‘믿음’, 바로 너희의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믿음’이다. 예로부터 사람에 대한 내 요구는 매우 엄격했다. 네 충성심에 다른 속셈이나 조건이 있다면, 나는 너의 그 소위 충성심을 차라리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저의를 지닌 채 나를 기만하고, 조건을 내밀며 뭔가 얻어 내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나에게 변함없이 충실하고, 무슨 일을 하든 오직 ‘믿음’을 위해, 그리고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감언이설로 나의 환심을 사려는 것을 미워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를 진심으로 대했으므로 너희 또한 나를 참된 믿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이란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이 ‘‘믿음’이 있으니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구태여 이러한 고난을 받겠느냐’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왜 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또한 조금도 없느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인정하면서 왜 그를 멸시하느냐? 왜 그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왜 그를 공개적으로 판단하느냐? 왜 늘 그의 행적을 캐느냐? 왜 그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느냐? 왜 일을 할 때 그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지 않느냐? 왜 그의 제물을 강탈하고 훔치느냐? 왜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서 말하느냐? 왜 그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느냐? 왜 그를 뒤에서 모독하느냐? 이런 것들이 너희의 ‘믿음’이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중에서)

『나는 너희의 충성심이 일시적이요, 정성도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다짐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도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오로지 마지막 한 번의 노력으로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종착지를 쟁취할 생각만 하는데, 그 목적은 교환하는 것일 뿐 진리에 부응하기 위함도 아니요, 나의 대가에 보답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각고의 노력은 싫고 머리만 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너희의 본심이 아니더냐? 자신을 위장하지 말라. 더욱이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식음을 잊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애쓰며 머리를 쥐어짜지도 말라. 결국 너희의 결말은 정해진 것이 아니더냐? 너희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각자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행해야 한다. 너희가 말했듯이 때가 되면 하나님은 고생하며 대가를 치른 그 어떤 이도 홀대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신념은 그래도 간직할 만하며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종착지에 관하여>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정직한 말을 하거나 성실하게 일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러한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너희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너희들이 너무도 ‘영리’하고,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에 능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저마다 딴마음을 품고 있으니 나의 일도 훨씬 쉬워졌다. 그러면 좋다! 나는 너희 한 명 한 명을 모두 재난 속에 두어 불의 ‘가르침’을 받게 할 것이다. 그러면 후에 너희들은 ‘확고부동’하게 내 말을 믿을 것이다. 결국, 나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교하구나!’라며 울 것이다. 그때의 너희는 어떠한 심정이겠느냐? 아마 지금처럼 거들먹거리고 득의양양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짐작할 수 없는’ 모습은 더욱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착실하게 굴며 매우 ‘얌전’하지만, 영 앞에서는 매우 흉포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자들이 정직한 사람에 속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위선자이고 ‘사교’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우롱하는 자일 것이다. 네가 말에 변명이 많고 쓸데없이 설명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진리를 행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너에게 입을 열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기 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훈언 3칙> 중에서)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피는데, 내 눈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참된 믿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은 더욱 논할 것도 못 된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제멋대로 추측하기까지 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누구보다 간사한 사람일 것이다. 너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죄 사함을 못 받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속이 좁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정의감이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수단이 악랄하고, 음험하고 간교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사악함과 흑암을 좋아하지는 않을까….’라고 의심을 한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한 믿음은 그야말로 죄업을 쌓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내가 비위를 잘 맞추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처럼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서 환대를 받지도, 발을 붙이지도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오랜 기간 동안 너희가 얻은 인식이더냐? 이것이 바로 너희가 얻은 수확이더냐? 너희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런 오해에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하늘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그런 믿음이 너희가 내게서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너희가 나를 더욱 적대하게 만들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사역을 통해 너희도 수많은 진리를 보고 접했다.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것들이 전부 무엇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 중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는 하나같이 자신이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리를 위해 고난받은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너희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는 불의뿐이다. 그래서 너희는 누구나 다 똑같이 간사하고 교활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까지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한 마음과 인자한 사랑이 없다고 여긴다. 나아가 고상한 품성이나 인자하고 자비로운 본성은 오직 하늘의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런 성인(聖人)은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은 어둠과 사악이 권력을 잡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아름다운 소망의 정신적 존재이자 사람이 만들어 낸 전설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너희 마음속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매우 정직하고 공의로우며, 또한 너무도 위대하여 경배하고 앙망할 가치가 있는 분이지만, 땅에 있는 이 하나님은 그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대역이자 도구일 뿐이다. 너희는 이 하나님이 하늘의 하나님과 절대 동등한 분이 될 수 없으며,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얘기할 때면 그것은 전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고, 사람의 본성과 패괴에 대해 논할 때면 땅에 있는 이 하나님도 거기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하늘의 하나님은 영원히 위대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영원히 하찮고 연약하며 무능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사로운 감정 없이 언제나 공의로운 반면, 땅의 하나님은 전혀 공평하거나 합리적이지 않고 사사로운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전혀 교활하지 않고 영원히 신실한 반면, 땅의 하나님은 정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은 사람을 지극히 아끼는 데 반해 땅의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보살핌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상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인식은 너희 마음에 이미 오랫동안 자리해 왔으며, 너희는 앞으로도 이 잘못된 인식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너희는 불의한 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을 바라본다. 또한 악인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 그의 신분과 본질을 평가한다. 너희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전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지금껏 면류관을 쓴 하늘의 위대한 하나님만을 섬기고, 보잘것없어 눈에 띄지 않는 이 하나님은 ‘시중’조차 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너희의 죄행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니겠느냐? 너희는 하늘의 하나님을 매우 숭배하고, 위대한 형상을 아주 숭상하며, 비범한 말재주를 가진 사람을 무척 존경한다. 너희 두 손에 재물을 가득 채워 주는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고, 무엇이든 너희 뜻에 딱 맞는 하나님을 그리워한다. 네가 유일하게 숭배하지 않는 대상은 바로 이 위대하지 않은 하나님이며,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도 높이 보지 않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며, 유일하게 원치 않는 것은 이렇게 지금껏 너에게 한 푼도 쥐여 주지 않은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또한, 네가 그리워할 수 없는 대상은 바로 이 사랑스럽지 않은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은 너의 시야를 넓혀 주지도, 너에게 보물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주지도 못하며,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너는 왜 그를 따르느냐? 너는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의 행위는 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의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것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모든 사람은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면목은 당연히 사람의 본성이다. 네가 말을 빙 돌려 하는 사람이라면 교활한 본성을 가졌을 것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본성을 지녔다면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손쉽게 사람들을 기만할 것이다. 네가 악랄한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이 듣기에는 그럴싸해도 너의 행동은 너의 악랄한 수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네가 게으른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모두 건성과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네 행동은 매우 굼뜰 것이며 또한 상황을 모면하고 진실을 감추는 데 능할 것이다. 네가 이해심이 많은 본성을 지녔다면 너의 말은 아주 합리적일 것이며 네 행동 또한 진리에 부합할 것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매우 충성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너의 말은 분명 진정성이 넘칠 것이다. 또한 너는 착실하게 일을 하여 주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네가 호색하거나 금전을 탐하는 본성을 가졌다면 네 마음은 항상 그런 것으로 가득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넘거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를 항상 기억하고 역겨워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네가 배반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일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 너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자신에게 배반의 본성이 없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몹시 역겨운 일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1> 중에서)

『사람의 본성과 나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의 패괴된 본성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되고, 사람의 본성은 사탄에 의해 가공되고 패괴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사탄의 사악함과 추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진리의 세상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본성에 선천적으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본질을 가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본성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문제, 즉 배반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시련과 연단의 드러냄을 통해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교만함과 거만함, 교활함과 간사함, 이기심과 비열함, 사악함과 탐욕 등 여러 가지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늘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성품에도 별 변화가 없는 스스로의 모습들은 하나님의 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선민들의 마음은 가혹한 연단을 받았습니다.

출처: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 24장 23~24절 설교: 어떻게 이단을 분별할 것인가

오늘날, 여러 재난이 임하면서 주님 재림과 관련한 성경 속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주님이 벌써 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예감에 주님을 찾고 싶어 하지만, 이단에게 미혹될까 두려워 대담하게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을 경계하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정말로 재림한 주님을 문전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련한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채 버려지고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정말 자질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진리를 구하며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가장 알아야 할 것은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이단에 속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馬太福音24章23-24節講道-如何分辨異端-ZB20200630

마태복음 24장 23~24절 설교: 어떻게 이단을 분별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이란 말씀 때문에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도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여전히 종교계를 따르며 ‘주님이 육신을 입고 돌아오신다고 증거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라는 관념을 고집합니다. 이러면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 여러 차례 예언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주님이 육신을 입고 돌아오신다고 증거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큰 죄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 있어서 우리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어선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 음성 듣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그리고 계시록에도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깨어서 기다리고 하나님 음성 듣기를 중요히 여기는 것,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왔다고 증거하면 사람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적극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진리에 대해 교제해 봅시다.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1: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인정한다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우리는 그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다.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혹은 참도인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은 언젠가 모두 쓰러질 것이다. 그들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본질은 조금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답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만이 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한 존재이자,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하심,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지혜가 모두 육신 안에 실체화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성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진리의 화신입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든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공급하고 목양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속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바로 이러하셨습니다. 어디서든 진리를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회개의 도를 가져다주셨고, 사람들을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법, 용서하는 법을 알도록 일련의 요구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 그리고 인류를 향한 그분의 자비와 긍휼은 그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신분을 온전히 대표해 줍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의 본질은 악령이자 마귀로, 진리라곤 전혀 없으니 당연히 진리를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 교만하고 황당무계한 인간들로, 사람들이 성경의 지식을 숭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여러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해대며 사람을 미혹시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성품이 변화되지도 하나님을 잘 알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영이 어두워지고 가라앉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전 인류가 구하고 알아보도록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뒤에서 몰래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미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본질을 가지고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신성의 본질을 가진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선포해 인류를 공급하고 구원할 수 있는데, 이는 신성의 본질이 없는 인간은 아무리 지식과 재주가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악령과 마귀 역시 당연히 진리를 선포할 수 없고,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처럼 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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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 23~24절 설교: 어떻게 이단을 분별할 것인가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2: 늘 새로운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하나님으로,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을 가지고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날 만약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권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칭 돌아온 예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악령이 가장한 것이고, 악령이 예수를 모방하여 행한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이미 완성되었기에 그 뒤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 … 만약 하나님이 예수가 행한 것과 똑같이 말세에도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중복된다. 그러면 예수의 사역은 의의도, 가치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단계 사역만 행한다.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칠 때마다 악령이 곧이어 모방하고, 사탄이 하나님을 뒤따라가면 하나님은 다시 방식을 바꾼다. 너희는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치면 악령이 이를 모방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볼 수 있다시피, 하나님은 늘 새로우신 분으로 중복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오셔서 사역할 때마다 하나님은 늘 새 시대를 여시고 옛 시대를 끝내시며,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가져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시대를 완성하시고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과거의 사역을 반복하지 않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셔서, 인류를 구속하고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런 사역들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새 시대를 열고 옛 시대를 끝낼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신 사역의 뒤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어조와 말씀을 흉내 내고, 하나님의 과거 사역을 모방해 약간의 이적과 기사를 보여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사칭하며 사람을 속일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권병이 없기에, 그들이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거나, 나사로를 부활시키는 등의 이적은 할 수가 없습니다. 즉, 말세에 다시 오신 하나님은 절대로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사역을 모방해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는 등 간단한 이적과 기사를 보이며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분명 악령이 외식하는 것이고, 거짓 그리스도로, 이단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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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4장 23~24절 설교: 어떻게 이단을 분별할 것인가

여기까지 교제를 통해, 우리 모두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생명의 본질이 있고,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진리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에 이끌려 정복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속한 사람들로 하나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고,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같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바로 다시 오신 메시야임을 알아보고 앞다투어 주님을 따른 것처럼 말입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의 비밀을 전부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탄 본성과 본질을 폭로하여, 사람이 자신의 패괴된 진짜 모습을 보고, 성품 변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입니다. 이는 성경의 예언대로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말씀집은 진리를 사랑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구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현현을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보고는 그분이 바로 말세에 다시 오신 예수님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앞다투어 어린양의 발자취를 좇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왔습니다. 이는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 맺은 결실이고, 이사야서 2장 2절에 나온 예언 대로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주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음성 듣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선 얼마든지 구하고 알아보며, 진리에 근거해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단의 미혹에 빠질 것을 두려워해 경계만 하고 미처 구하고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해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짓 아닐까요? 이런 식이라면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영원히 놓치고 말 것입니다!

추천 영상: 말세에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진짜는 가짜일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넷째 시련, 부각물의 시련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넷째 시련, 부각물의 시련

”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가 끝난 뒤, 하나님은 <성육신의 비밀> 1~4편과 <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를 선포하여 성육신의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제서야 하나님 선민들은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모습을 나타내시어 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었음을 알아차리고 크게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길 추구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그림전 제4장 참조). 그러나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되어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치스런 욕망이 내면에 깊이 뿌리내렸으며, 봉사자의 시련과 죽음의 시련을 겪는다고 철저히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앞날과 운명에 관계된 일이라면 여전히 무척 민감하고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복을 바라는 속셈,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 성품이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지위와 앞날, 종착지를 추구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부각물의 시련으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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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당신은 진정한 회개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요구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에 이르러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재난 전에 천국으로 들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진정한 회개에 이르렀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당신은 진정한 회개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당신은 진정한 회개했습니까?

좋은 행위가 진정한 회개를 의미하는가

회개에 대해 주님을 믿는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할 겁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저는 남을 욕하거나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았어요. 대신 포용과 인내하게 되었죠.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며 죄를 뉘우쳤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사역했어요.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주님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고요. 이런 좋은 행위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증거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주님을 믿게 된 우리는 과거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겸손한 태도로 인내하며 타인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증거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확실히 행위에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린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며 스스로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이익과 관련 없는 일에서는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해도 그와 논쟁하기보다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의 체면과 지위를 깎아내리는 말을 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면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론 그 사람에 대해 원한과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그에게 복수할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겉으로 큰 악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론 걸핏하면 악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내하고 자제할 때도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선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회개한 사람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보겠습니다. 『단순한 행위 변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흉악한 몰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행위 변화는 열정에서 비롯되는데, 거기에 성령의 역사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열정을 갖고 한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한 번 하기는 쉽지만, 평생 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방인들의 말처럼 사람은 좋은 일을 평생 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생명의 지배를 받으며, 그 생명에 따라 행위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생명과 본성을 대표하며, 위장한 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좋은 행위를 꾸며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환골탈태시키고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 좋은 행위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행위상의 변화는 도리에 기반해 열정으로 이뤄진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나 진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성령의 인도로 인한 것도 아니다. 때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도 같지 않다. 행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지는 않고,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임을 증명하지도 못한다. 행위상의 변화는 한때의 거짓된 모습이자 열정에서 비롯된 모습이지, 생명의 드러남이라고 할 수 없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하나님을 믿은 후 우리는 좋은 행위가 있게 되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생명 성품이 변화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행위는 열정에서 나오고 도리와 규례에 근거한 것이거나, 성령에 감동받아 실천해 내는 것들입니다.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겨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수천 년간 패괴되어 온 우리 몸에는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 여러 사탄의 패괴 성품이 가득합니다. 이 패괴 성품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규례를 지키고 겉으로 경건해 보이더라도 그 모습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만한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화를 내며 훈계하려 듭니다. 또한 이기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아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가정 내 모든 일이 순조로우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헌신하면서 얼마간의 고생도 개의치 않아 합니다. 하지만 화를 당하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치른 대가를 후회하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가끔 우리는 교회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명백히 위배되거나 심지어 교회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하는 걸 봅니다. 그렇다면 이를 지적해 줘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보고도 입을 다물어야 계속 친구가 될 수 있다’ ‘쓸데없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낫다’ 등 사탄 처세 철학의 영향을 받아 분명히 말해 주지 않습니다. 교회의 이익이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인간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이런 사례들은 우리의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진리를 실천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나아가 하나님께 대적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2천 년 전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뚜렷한 악을 행하지 않았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해 주고 율법을 지키라고 지도해 주며 좋은 행위들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타나 사역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의 외모가 너무나 평범하며, 메시야라 불리지도 않고 자신들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만한 사탄의 성품을 드러내며 멋대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독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도가 진리이든,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든,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로마 정부와 결탁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우리의 표면적인 행위가 아무리 변해도 내면의 생명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이어서 언제든 죄를 짓고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습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4~35)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는 죄를 증오하십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회개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는 각종 사탄 성품,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의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실천할 수 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어 온전히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도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속량받아 죄 사함을 받았는데 어째서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걸까요?” 그 주요 원인은 은혜시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구속 사역이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 서문> 중에서) 이 말씀에서, 은혜시대에 예수님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고, 그 사역은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결실을 맺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회개의 도를 선포했고, 어떻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하는지,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다음으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것과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할 것,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모두 당시 사람들의 분량에 맞춰 하신 요구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아 계속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을 선포하셨지만 거기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자신을 이겨 내려고 해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말씀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사람들의 분량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은혜시대 때 예수님은 사탄 본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시려 많은 진리를 선포하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다시 오겠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다시 오셔서 은혜시대 때보다 더 많고, 더 높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셔서 우리가 철저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얻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신 주님의 심판과 정결케 하는 사역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오셨습니다. 그는 바로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반으로 그 위에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고, 인류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며,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회개를 실천하는 몇 가지 방법을 단순히 알려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우리의 본성과 본질, 패괴된 참모습을 폭로하시고, 우리에게 각 방면의 진리, 예를 들어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등의 진리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일에서도 실천의 길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의 심판을 겪으며, 우리는 점차 자신이 사탄에게 너무도 깊이 패괴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성과 본질 안에는 교만함과 독선,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과 같은 사탄의 성품이 가득하고, 이런 것들에 기대어 살다 보니 우리의 삶엔 사람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어 사람의 미움은 물론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를 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말씀으로 우리는 비열하고 사악해 하나님 앞에 살 자격이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제야 자신의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깨닫게 되어 진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필히 하나님의 미움을 사게 될 거란 사실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가 생기고, 더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함으로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 더는 사탄 본성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해 변화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게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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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다,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필리핀 안위안

2천 년 전,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재난들이 갈수록 더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진, 전염병, 기근, 전쟁, 수해가 끊이지 않고 있지요.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했습니다. 놀랍도록 빠른 전파 속도로 불과 몇 개월 사이 전국 각지에서 감염 사례가 나왔고, 중국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성(省)과 시(市), 촌(村)들이 봉쇄되었고 사망자 수는 끊임없이 증가했습니다. 이 전염병은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전파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외에도, 2019년 9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호주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로 현지의 5,900여 채 건물이 소실되고, 십억 마리의 동물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월, 호주에 이번엔 백 년 만의 폭우가 내려 수많은 담수 생물이 홍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달, 인도네시아에서도 홍수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필리핀의 화산이 폭발하고, 아프리카는 25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았으며, 신장에선 6.4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성경 속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들이 모두 이루어졌으니, 주님이 분명 돌아오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아직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걸까요? 이렇게 가다간 모두 재난 속에 떨어지지 않을까요? 대체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다,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다,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1. 주님은 어떻게 오실까요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 1:7),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라는 구절을 보고 주님은 분명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째서 지금껏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걸까요? 주님은 오직 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오시는 걸까요? 사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일에서 우리 모두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실 거라는 예언도 있다는 것을요.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 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눅 17:24~25)

성경의 ‘도적 같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라는 구절들은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조용하고 은밀하게 강림하신다는 걸 말해 줍니다. 그럼 ‘인자’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인자’라 하면 사람에게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피와 살이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 가운데 생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인자’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영체는 인자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또한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구절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많은 고난을 받으시며, 심지어 이 세대에 버림받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자가 되어야만 사람에게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보통 사람처럼 대할 테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고난을 받게 되시는 겁니다. 만약 주님이 영체로 사람에게 나타나신다면, 좋은 사람, 악한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가릴 것 없이, 심지어 하나님께 대적하던 사람마저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겠으며, 또 하나님은 어떻게 고난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는 말세에 주님은 육신을 입고 인자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는 걸 말해 줍니다.

2. 주님은 재림하여 어떤 사역을 하실까요

이 얘기를 하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말세에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여 사람들 가운데 사역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예언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사실, 하나님의 사역에는 계획과 절차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육신을 입고 은밀히 강림하셔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 후에 구름을 타고 다시 강림하셔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성경에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성경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말세에 오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님을 맞이해 주님 앞으로 들림 받습니다! 오늘날,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선포하셨고, 이는 모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은 전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진리와 비밀을 열어 주셨습니다. 인류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사탄은 어떻게 인간을 패괴시키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대상인지,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과 종착지는 무엇인지 등등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우리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된 사람들은 모두 재난 전에 만들어진 이긴 자들로, 마지막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은밀히 사역하는 기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찾아보지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관념과 상상에 따라 성육신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고 내쳐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밀과 가라지, 양과 염소,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선한 종과 악한 종, 진리를 사랑하는 자와 진리를 싫어하는 자를 모두 드러내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십니다. 그 후, 하나님은 구름을 타고 강림하여 만국 만민 앞에 나타나셔서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하십니다. 이렇게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 대적하고, 그분을 버리고 정죄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악행 때문에 가슴을 치며 깊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시고, 전능하시며, 지혜로우신지 볼 수 있습니다!

3. 어떻게 재림한 주님을 맞이할까요

오늘날,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한 무리 사람들을 정복하고 구원하셨고, 이긴 자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은 곧 끝이 나고, 이어서 각종 대재난이 내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어떻게 재림 예수님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거침없는 거센 파도와 같아서 아무도 그를 만류할 수 없고,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귀 기울여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찾고 갈망하는 자만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치명적인 재앙과 응분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온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당신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길 원합니까? 주님을 맞이하길 원합니까? 환난 전에 들림 받길 원합니까?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배워,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이 진리가 맞는지, 성령이 교회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맞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우리에게 겸허히 찾고 구하고 진리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서 대환란 시기에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지 방향을 좀 찾으셨나요? 누군가는 예수님이 오셨다고는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가 여기저기에서 사람을 미혹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신 걸 알아보고, 미혹받지 않겠냐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아래의 영상을 통해 진짜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구분하는 방법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하단의 온라인 채팅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또는 아래의 메일이나 앱을 구독하시면, 매주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복음 영화 <기다림> 명장면 슬기로운 처녀는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안다

열 처녀의 비유(마태 복음 25장) : 주님을 맞이하는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되는

당신은 슬기로운 다섯처녀입니까? 오늘날 빈번히 발생하는 재난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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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였다.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역하는지, 어떻게 말씀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상상해서 믿든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사역할 때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육신을 통해 행하는 모든 행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 사람이 가졌던 모든 고정 관념은 물거품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면 정죄받지 않았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대적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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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하나님께 순종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네게 순종하고 너의 관념에 따르게 한다면, 너는 가장 패역한 사람이며 불신파다. 이런 사람이 어찌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장 패역한 사람은 일부러 하나님께 불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그리스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항상 적대적인 태도로 대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기꺼이 순종하거나 자신을 낮춘 적도 없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며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순종한 적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도’에 대해 가장 잘 나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일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보배’를 전혀 버리지 않고 가보로 삼아 섬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고, 이로써 자신을 우러러보는 아둔한 이들을 훈계한다. 교회에 확실히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굴복을 모르는 영웅 세가’이며 대대로 하나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리)를 얘기하는 것을 자신의 최고 직책으로 삼고, 한 해 또 한 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어 가며 그들의 신성불가침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그들을 공개적으로 질책하지 못한다. 하나님 집에서 ‘거물’이 된 그들은 시대마다 권세를 믿고 제멋대로 힘을 휘두른다. 이 악마의 무리가 연합하여 나의 사역을 허물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산 귀신이 내 눈앞에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진다> 중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거나 자신의 관념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판단하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을 모르는 데다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경솔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관념과 천성적인 교만 때문이고 너무도 패역한 천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뒤에도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감히 공개적으로 성령 사역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이야기하며, 게다가 또 성령의 새로운 사역이 있는 사도들을 훈계하고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불손하게 말하는데, 인성이 참으로 저급하고 이성이라고는 그야말로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자는 모두 언젠가 성령 사역에 의해 버려지고 지옥의 불에 태워질 대상이 아니냐?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평가하고, 게다가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해야 한다고 지휘할 생각까지 하는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모두 구하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이지 제멋대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깨우침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너의 관념과 옛 성품, 인성, 품성, 도덕 사상은 모두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천’이다. 또한 도덕이 부패하고 품성이 악랄하며 인성이 저급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자와 성품이 독선적인 자는 성육신 하나님의 원수인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대예배당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외우지만,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거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이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인배이고,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내세우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하에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자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이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마왕이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걸림돌이다. 이들이 비록 ‘건장하고 튼튼할’지라도,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이들이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어 가는 적그리스도임을 알겠느냐? 어찌 이들이 전문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산 귀신임을 알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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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참고 설교:

『겉으로 보기에는 적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 역시 진리에 대한 인식과 체험을 어느 정도 교제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그들에게 역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이의 체험과 인식을 가져다가 스스로를 꾸미고, 그럭저럭 진리에 맞는 다른 이의 인식을 가져와 다른 사람을 미혹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은 ‘이 사람의 말이 맞아. 말을 참 잘 하는구나. 이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것이 분명해.’라고 생각하며 숭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건 다른 이에게서 훔쳐 온 것에 불과합니다. 패괴된 사람은 이런 수법을 쓰지 않습니까? 패괴된 사람은 다 훔치고 도용하며 위장할 줄 압니다. 그러니 다른 이의 말을 훔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들은 다른 이의 교제를 들으며 가장 뛰어나고 좋은 말을 몰래 적어 놓았다가 몇 번이고 되뇌고 외웁니다. 그다음에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이죠. 때로는 여기에서 들은 말을 바로 저기에서 할 정도로 빠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거의 배우자마자 써먹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능력은 모두가 알아주는 사실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잘못된 길을 가고, 성령의 역사가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제하는 말 중 일부는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이 사람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해 이 정도의 인식을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그가 하는 말은 전부 다른 이에게서 훔치고 배워 온 것이니까요. 현재 교계의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집의 설교 내용을 가져가 읽은 후 주일이 되면 그대로 신도들에게 설교합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와, 정말 훌륭한 설교구나. 이번 설교에는 확실히 진리가 있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헌금을 합니다. 이렇게 교계의 목사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는 것이죠. 교계에 이런 설교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참도를 받아들이라고 하면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집의 서적을 손에 넣은 후 설교할 때 몰래 사용하며,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스스로를 높입니다. 엄연히 하나님의 말씀이건만 자기의 말인 양, 자기의 체험과 인식인 양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비열한 수법입니다.』

―<설교집(2)ㆍ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대한 분별> 중에서

『적그리스도 악마를 분별하려면 반드시 그 본성의 일곱 가지 특징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 악마가 지닌 사탄의 본모습을 간파하는 데 너무도 중요합니다. 다음은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7가지 특징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째, 적그리스도는 모두 교만하고 거만하며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습니다. 또한, 유아독존, 안하무인에 제멋대로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적그리스도를 승복시키거나 단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교회의 각급 리더와 일꾼은 그들에게 원수 같은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하나님께만 순종할 뿐, 다른 그 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저는 누구누구에게만 순종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순종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이를 통해 이런 자들은 다 사탄 악마의 본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만하게 젠체하고 같은 자리에서 답보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하나님의 장자,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놀라기는 이릅니다. 이런 악인이 일단 권력을 잡으면 모두 전형적인 적그리스도 악마가 됩니다.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못하고 거만하게 젠체하는 것,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둘째, 적그리스도는 악마 본성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나아가 진리를 증오하고 대적하며, 하나님과 맞서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먹고 마시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조금도 얻지 못하며, 자신의 패괴된 진상을 진실로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 악마에 속하는 자들은 자신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법이 없으며, 자신의 추한 면을 드러내거나 스스로를 분석하는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마치 자신에게는 패괴 성품이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또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교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증거하지도 못합니다. 그저 스스로를 세우고 증거할 줄만 알며, 심지어는 감히 자신이 ‘하나님의 장자, 사랑하는 아들,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증거합니다. 그야말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가 지닌 본성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셋째, 적그리스도는 악마의 본성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진리를 증오하고 대적하며 하나님과 적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 악마는 진리를 실행하는 법이 없는데, 그들의 행동은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시련과 연단에 조금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조금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3.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4. 책망 훈계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5. 진리를 교제하고 실행할 수 있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순종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불복합니다. 6. 말할 때면 항상 높은 위치, 심지어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며, 늘 남을 가르치려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진위를 전도하며, 적반하장 격으로 남을 물어뜯고, 함부로 정죄하며 판단합니다. 또 언제나 다른 사람을 미혹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모함하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증오가 가득합니다. 이를 통해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넷째,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는 권력과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여 독립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지위와 권력만을 추구하며, 사탄의 세력을 한없이 숭배합니다. 지위와 세력, 돈은 적그리스도가 숭배하는 우상이자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본질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오직 지위와 권력을 위해 노력하고 힘씁니다. 지위와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지만, 지위와 권력 쟁탈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듭니다. 그들은 지위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모함하고 해치는 것을 조금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보기에는 지위와 권력이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지위와 권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큰 붉은 용의 악마 본성과 본질의 표출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네 번째 특징입니다.

다섯째, 적그리스도는 권력과 지위 추구를 좋아하는 것 외에도 악인과 결탁하고 사귀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고 자신을 위해 힘을 써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하고, 자신을 숭배하고 치켜세워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귀죠. 적그리스도가 끌어모으는 자들은 다 악마와 야수, 영혼이 없는 짐승들입니다. 적그리스도 악마는 바른 길을 가고 진리를 추구하는 정직한 사람과 사귀는 것을 싫어하고, 마음이 선량한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법도 없습니다.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뒤집어 악인을 호인으로 말하고, 호인을 악인으로 이야기합니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이를 괴롭히고, 고의로 중상모략하고, 함부로 정죄하고, 적반하장으로 굴며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 각지 교회에서 혼란을 야기합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악마 본성을 더 잘 보여 주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 악마에 속하는 자들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을 견지하며 정의감이 있는 착한 사람이고, 적그리스도를 분별할 줄 알고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며 진리와 인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착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모함하고 괴롭히며 각급 리더, 일꾼들과 대립합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다섯 번째 특징입니다.

여섯째, 적그리스도 악마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며, 그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그들은 격분하여 정신이 나간 듯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며, 교회에서 민주 선거를 진행하는 모습,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날뛰며 반격하고, 온 힘을 다해 교회의 선거를 방해합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기 위해 각종 사설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유포하고, 하나님 집의 각급 리더와 일꾼은 모두 가짜라며 공격하고 판단하고 정죄하여 하나님 선민과 각급 리더, 일꾼의 관계를 이간질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고 통제하기 위해 후안무치하게도 사람들에게 그들을 뽑고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또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하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사람들을 각급 리더와 일꾼으로 뽑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를 손아귀에 넣고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야심을 여실히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 악마에 속하는 자는 모두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과 하나님 집의 각급 리더와 일꾼을 극도로 증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권세를 잡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적그리스도 악마의 비열한 본심을 더욱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 집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권세를 잡을 때가 바로 적그리스도 악마들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 악마가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바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과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각급 리더와 일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여섯 번째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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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일곱째, 적그리스도 악마에 속하는 자들은 아무리 처절한 패배와 버림을 당해도 진실로 회개하는 법이 없으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일부 악마가 눈물을 흘린다고는 하나, 그것은 회개나 통회, 죄책감의 눈물이 아니라 억울함과 불복, 증오의 눈물입니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은 모두 악마이며, 무릇 악마에 속하는 자들은 인성이 없는 사탄의 부류이므로 결코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 악마는 모두 사탄 악마의 본성을 지녔기에 구제 불능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깨닫거나 진실로 회개할 수 없으며,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악마 본성의 일곱 번째 특징입니다.

이상의 일곱 가지 특징은 적그리스도 악마의 사탄 본성과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적그리스도 악마의 일곱 가지 특징을 지닌 사람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마귀이며, 사탄 악마가 환생한 사탄의 심부름꾼입니다. …』

―<사역지침ㆍ모든 적그리스도를 출교시켜야 진실로 사탄을 배반하고 이긴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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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그리스도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믿음이란 무엇인가]‘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사람에게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한 ‘믿음’밖에 없다.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왜 믿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사람은 아는 것이 너무 없고 부족함도 너무 많다. 그저 무지몽매하게 나를 믿을 뿐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는데도 ‘집요하게’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게 내게 간구하거나 아무렇게나 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나를 알게 하려는 것이지, 결코 내 사역으로 나를 달리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수많은 권능도 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게 매우 ‘탄복’했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나의 뛰어난 능력을 몹시 흠모하기도 했다. 당시 유대 백성은 내가 의술이 뛰어나고 범상치 않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나의 그 많은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를 앙모하고 나의 그 모든 능력을 참으로 부러워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행한 권능을 본 자들은 나를 가까이 따르기 시작했으며, 수천 명이 나를 둘러싸고 내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음에도 사람은 나를 훌륭한 의사로만 생각했고, 내가 많은 말로 당시 사람들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나를 제자보다 뛰어난 스승으로만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은 내가 행한 사역의 역사적 기록을 보았음에도, 그 성경 구절에서 나를 병 고쳐 주는 ‘대단한 의사’, 무지한 자들의 ‘스승’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또 나를 ‘인자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은 나의 ‘의술’을 뛰어넘고 심지어는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었지만, 의아하게도 그렇게 명망 높고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나를 보잘것없는 의사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대 족속은 나의 은혜 때문에 나를 믿었고 곳곳에서 나를 따랐다. 그 무지하고 식견이 좁은 자들은 그저 내가 나타내는 이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 나를 따랐다. 그들은 나를 유대 족속 중 가장 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지도자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을 때,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나를 엘리야 또는 모세라고 하고 가장 오래된 선지자라고도 했으며, 또 최고의 의사라고도 했다. 나 스스로 내가 생명이요 길이요 진리라고 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나의 어떠함과 신분을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하늘은 본디 내 아버지가 거하는 곳이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또 나 스스로 내가 전 인류를 구속하고 속량하리라고 말했을 뿐, 나 외에는 누구도 내가 인류의 구속주임을 알지 못했다. 사람은 그저 나를 인자한 사람,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 모든 것을 전부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일 뿐, 사람은 모두 나를 알지 못했고,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그저 이렇게 나를 믿고 있고, 또 이렇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사람은 나를 믿지만 나를 증거하지 못한다. 또 내가 드러내기 전에 나를 증거하지도 못한다. 사람은 그저 내가 피조물을 능가하고 모든 거룩한 자들보다 뛰어나다는 것, 그리고 내가 행하는 사역을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부터 현재의 사람들까지, 내 영광스러운 행사를 본 사람은 나에게 큰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그 어떤 피조물도 나를 증거하지는 못한다. 오직 내 아버지만이 나를 증거하고, 내 아버지만이 피조물 가운데서 내게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해도 사람은 내가 창조주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그저 나에게 요구할 줄만 알 뿐, 내가 하는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를 알게 된 것은 내가 본래 무고하고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고, 내가 많은 비밀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며, 내가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거나 사람이 내게서 이로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창조주임을 믿는 이는 드물다. 그렇기에 사람은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고, 나를 믿는 목적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실제가 너무 적고 나를 증거할 조건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참된 믿음이 너무 적고 얻은 것도 극히 적다. 그래서 너희가 ‘증거하는 것’도 몹시 적은 것이다. 게다가 너희들은 아는 것이 너무 적고 부족함이 너무 많아 ‘나의 행사를 증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너희의 의지가 강하기는 해도 진정 ‘하나님의 본질’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체험하고 본 것들은 역대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너희가 그들의 말보다 더 훌륭하게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지금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것들은 모세보다 많고 다윗을 뛰어넘는다. 또한 나는 너희의 증거가 모세를 뛰어넘고 너희의 말이 다윗보다 훌륭하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백배를 주었으니 너희도 나에게 백배로 갚아야 한다. 인류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는 이는 나이며, 내 생명을 받아들이고 나를 증거해야 하는 존재는 너희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준 본분이자, 너희가 마땅히 나를 위해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모든 영광을 주었고, 이스라엘 선민들도 얻지 못한 생명을 주었으니, 너희는 마땅히 나를 증거해야 하며, 나를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쳐야 한다. 내게서 영광을 받는 자는 나를 증거해야 하고,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는 내가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다. 나의 영광을 받는 것은 너희의 복이며, 나의 영광을 증거하는 것은 너희의 본분이다. 너희가 그저 복 때문에 나를 믿는다면 나의 사역은 별 의미가 없어지며, 너희 역시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 것은 나의 긍휼과 자비, 위대함뿐이었고, 유대인들이 본 것은 나의 인내와 구속뿐이었다. 그들은 내 영의 역사를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의 만분의 일에 불과하다. 너희가 본 것은 그들 가운데 있는 대제사장보다 더 많다. 오늘 너희가 깨달은 진리는 그들보다 더 높으며, 오늘 너희가 본 것은 율법시대보다 더 많고 은혜시대를 뛰어넘는다. 또 너희가 체험한 것은 모세와 엘리야보다 더 많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만 알고 여호와의 뒷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예수의 구속만 알고 예수의 은혜만 받았으며 유대 족속의 형상을 지닌 예수를 본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희는 ‘여호와의 영광’과 ‘예수의 구속’과 오늘날 내 모든 행사를 보았다. 또한 직접 내 영이 하는 말을 들었고, 나의 지혜를 느꼈으며, 나의 기묘함을 깨닫고, 나의 성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내 경륜의 전부를 알려 주었다. 너희는 자비롭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공의가 충만한 하나님을 보았고, 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다. 또한 내게 진노와 위엄이 가득함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집에 진노를 쏟았던 내가 오늘날 그 진노를 너희에게 내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희는 하늘의 내 비밀에 대해 이사야와 요한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내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에 대해 역대 성도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나의 진리와 길과 생명뿐 아니라 요한보다도 더 큰 이상(異象)과 계시를 받았다. 너희는 더 많은 비밀을 깨달았고, 나의 본모습도 보았다. 너희는 나의 심판을 더 많이 받았고, 나의 공의 성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너희는 말세에 태어났지만 예전 것과 지난 것들을 깨닫고, 오늘날 내가 친히 행한 것까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 대한 내 요구는 과하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고, 너희도 내게서 매우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역대 성도들을 향해 나를 증거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원래는 내 아버지가 나를 증거했지만, 나는 더 큰 영광을 받을 것이며, 피조물의 입으로 나를 증거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었다. 그 목적은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게 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내 사역을 끝내는 데 있다. 너희는 너희가 왜 나를 믿는지 알아야 한다. 너희가 단지 나의 ‘제자’나 나의 ‘환자’, 혹은 천국의 성도가 되기 위해 나를 따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또 그런 식으로 나를 따르는 것은 헛되이 힘을 소모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런 식으로 나를 믿는 것은 허송세월하고 청춘을 낭비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괜한 헛수고를 한 것 아니겠느냐? 오래전에 유대인들을 떠난 나는 더 이상 사람의 의사가 아니고, 사람의 양약이 아니며, 사람의 마소가 되어 끌려다니거나 죽임 당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여 사람들이 나를 알게 한다. 너는 내가 구속 사역을 했고 예수였던 적이 있지만, 영원히 예수일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전에는 여호와였으나 나중에는 예수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인류의 하나님이자 창조주이다. 하지만 나는 영원토록 예수일 수는 없고 영원토록 여호와일 수도 없다. 나는 예전에 사람들에게 의사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단순히 인류의 의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네가 과거의 관점으로 나를 믿는다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네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요. 제 병도 고쳐 주셨고, 또 사람들에게 축복과 평안과 기쁨을 주셨지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얼마나 잘해 주신다고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돈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라며 아무리 나를 칭찬해도 나는 내 원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너는 나를 믿는 이상 오직 나의 영광을 얻고 나를 증거할 자격을 갖게 될 뿐 그 외에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너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너는 지금 왜 나를 믿어야 하는지 진정으로 알고 있느냐? 너는 내가 사역하는 목적과 의미를 진정으로 알고 있느냐? 너는 진정 너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너는 진정 나의 증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네가 나를 믿기만 할 뿐, 네게서 나의 영광을 볼 수 없고 나의 증거를 볼 수 없다면, 너는 내가 일찍이 도태시킨 대상일 것이다. 더구나 뭐든 다 알고 있다는 자들은 내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고, 내 집에서는 걸림돌에 불과하다. 또한 내 사역에서 걸러 내야 할 가라지로서 아무 쓸모도 존재감도 없는, 오래전부터 내게 혐오받은 자다. 나를 전혀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나의 분노가 따를 것이고, 나의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그들을 악한 자의 손에 넘겼으므로 그들에게는 나의 축복이 조금도 없다. 형벌받는 날이 오면 그들은 어리석은 여자보다 더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맡은 범위의 사역만을 하고 있는데, 모든 밀을 단으로 묶고 가라지도 그 속에 넣어 함께 묶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역이다. 내가 키질을 할 때 그 가라지들을 모두 걸러 낼 것이다. 그다음 알곡은 곳간에 넣고, 걸러진 가라지는 불 속에 넣어 재로 만들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사역은 모든 사람을 단으로 묶는 것, 즉, 철저히 정복하는 것뿐이다. 그 후에 키질을 시작해 모든 이의 결말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 어떻게 나를 만족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를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지금의 충성심과 순종이며, 지금의 사랑과 증거이다. 설령 네가 지금은 무엇을 증거라고 하는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모를지라도 마땅히 너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너의 유일하고 보배로운 충성심과 순종을 내 손에 바쳐야 할 것이다. 내가 사탄을 물리친 증거는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고, 내가 사람을 완전히 정복한 증거 또한 사람의 충성심과 순종에 있음을 너는 알아야 한다. 나를 믿는 이상 너의 본무는 나를 증거하고, 내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며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내가 다음 단계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너는 나를 어떻게 증거할 것이냐? 너는 또 어떻게 내게 충성하고 순종할 것이냐? 너는 네가 하고 있는 기능에서 충성을 다할 것이냐, 아니면 뿌리치고 그만둘 것이냐? 너는 내 모든 안배에 순종할 것이냐(설령 죽거나 멸망할지라도), 아니면 내 형벌을 피하려고 중도에 도망칠 것이냐? 내가 너를 형벌하는 것 또한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하며, 내게 충성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의 형벌은 다음 단계 사역을 펼치기 위함이고, 앞으로의 사역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자신의 생명과 생존의 의의를 가치 없는 한 줌의 흙처럼 여기지 말고 현명하게 행동하라고 권하겠다. 앞으로 나의 사역이 대체 어떤 것일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역할지, 사역을 어떻게 전개할지 네가 알 수 있겠느냐? 너는 내 사역을 체험하는 의의를 알아야 하며, 더욱이 나를 믿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는데, 어찌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느냐? 내가 이토록 큰 공사를 시작했는데, 어찌 허물 수 있겠느냐? 내가 시대를 끝내기 위해 온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시대를 여는 자이자 사역을 전개하는 자이며 더구나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확장하는 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지금의 사역이 그저 시대를 여는 것이고, 앞으로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며, 또 앞으로 시대를 끝내기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사역은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고, 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가치 없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너에게 알려 주겠다. 너는 내 사역을 위해 헌신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영광을 위해 너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나를 증거하는 것은 내가 일찍부터 바랐던 것이며, 나의 복음을 확장하는 것은 더더욱 내가 오랫동안 바라 왔던 것이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 영화 <저버릴 수 없는 신의> 크리스천의 참된 행복은 정직함에 있다 (한국어 더빙)

영상 소개

왕선우 부부는 옷 가게를 운영한다. 부부가 처음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양심에 따라 영업을 해 왔다. 하지만 버는 게 많지 않아 생활이 넉넉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같은 업계의 사람들이 거짓말과 눈속임으로 장사하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풍족하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에 뒤처지기 싫었던 왕선우 부부도 결국 그 시류에 합류하고 거짓말과 눈속임 수단을 쓰게 된다. 몇 년 후, 그들은 전보다 돈은 더 많이 벌게 되었지만 양심에 걸리고, 마음은 계속 공허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간사한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것과 어두운 세상의 근원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악한 세상에서 정직과 성실로 가게를 운영하면 돈벌이는 둘째치고 자칫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게 된다. 그렇다고 계속 고객을 속이던 수단을 쓰자니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것 같고… 이렇게 수차례 마음속 갈등과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에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 결과, 예상과 달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사업도 잘되고, 무엇보다 정직한 삶을 통해 얻게 되는 평안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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