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20 8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과 하나님 이름 간의 관계

(1) 율법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하신 의의

성경 참고: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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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말씀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말씀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지만,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육신 되었도다’,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사역)을 이룰 것인데, 이는 전체 경륜의 마지막 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이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다 육신으로 나타낼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이번에 온 하나님은 영체가 아닌 아주 평범한 몸으로 사역한다. 그 몸은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몸이며, 또한 하나님이 다시 육신을 입고 돌아온 몸이고, 아주 평범한 육신이다. 너는 그에게서 남다른 점을 찾을 수 없으나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 보잘것없는 육신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진리의 말씀의 화신이고, 하나님이 하는 말세 사역의 담당자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내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존재다. 너는 하늘의 하나님이 몹시 보고 싶지 않았더냐? 너는 하늘의 하나님을 몹시 알고 싶지 않았더냐? 너는 인류의 종착지를 몹시 궁금해하지 않았더냐? 그는 지금껏 아무도 알려 주지 못했던 이 모든 비밀을 너에게 알려 줄 것이고, 또한 네가 깨닫지 못한 진리도 알려 줄 것이다. 그는 너를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대문이자 너를 새 시대로 이끄는 인도자다. 이런 평범한 육신에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많이 깃들어 있다. 그의 행사는 네가 분명하게 측량할 수 없지만, 그가 행하는 사역의 모든 목표를 통해 너는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육신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말세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너는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불꽃 같은 두 눈을 볼 수 없으며, 그의 철장(鐵杖)의 다스림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는 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이 인류를 긍휼히 여기고 있음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하나님의 지혜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의 정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말세 사역을 통해 땅에서 사람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가 다시 육신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

… 너희에게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육신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생존할 기회를 얻었는데, 이 모든 복은 이 평범한 사람으로 인해 얻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만국이 모두 이 평범한 사람에게 경배하고,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가 가져온 진리와 생명과 길이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누그러뜨렸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소통시키고, 또 그가 하나님을 위해 더 큰 영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네가 믿고 앙모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이냐? 이런 평범한 육신이 그리스도라고 불릴 자격이 없단 말이냐? 이런 평범한 사람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발현이 될 수 없단 말이냐? 사람에게 재난을 면케 해 준 이러한 사람이 너희가 사랑하고 붙들 만한 가치가 없단 말이냐? 만약 너희가 그가 선포한 진리를 저버리고 또 그가 너희들 가운데에 거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너희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아느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큰 일을 하였다는 것을> 중에서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서 조용히 숨어 계시는 그 평범한 사람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하지도, 자신이 온 이유를 확실히 말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자신의 계획과 단계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할 뿐이었다. 그의 말씀은 갈수록 잦아졌다. 위로와 충고, 격려,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과 징계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에서 격하고 위엄 있는 말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갑절로 긍휼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두려움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꿰뚫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했으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

우리는 어느새 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 사역의 절차 속으로 한 단계씩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시련과 채찍질, 그리고 죽음의 시험을 겪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크나큰 능력과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았다. 이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며, 또한 사람의 본성과 본질도 알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를 ‘죽게’ 하는 동시에 ‘부활’시켰고, 우리를 위로하는 동시에 가책과 죄책감을 배로 느끼게 했으며,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다. 우리는 때로 그의 손안에 있는 어린양마냥 그의 뜻대로 처분되었고, 때로는 그의 눈동자처럼 그의 사랑을 받았으며, 또 때로는 그의 원수가 된 것처럼 그의 눈앞에서 그의 분노에 잿더미로 변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다. 그의 눈에 우리는 구더기와 다름이 없지만, 우리는 또 그가 주야장천으로 찾는 길 잃은 양이었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미워하시며, 우리를 들어 세우시고,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깨우치셨다. 또 그는 우리를 징계하거나 책망하시고,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셨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걱정하고 돌보고 지켜 주셨으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대가를 쏟아부으셨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종착지도 보게 되었다. …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여러 방식과 위치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훈계하시고, 마음의 소리를 전하셨다. 생명력을 가진 그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무의식적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으셨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으셨으며, 우리 때문에 우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시고, 우리의 종착지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디셨으며, 또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계시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도 우리의 본성과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지 못하며, 어떤 이도 인류의 패역과 패괴를 심판하지 못하고, 어떤 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거나 사역하지 못했다. 또한, 그 말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와 존엄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은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현되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거나 빛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밝히지 못했으며,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를 사탄의 속박과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당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셨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미망 속에서 보내던 우리의 삶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게 하셨으며, 우리를 정복했고,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생겼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우리들 가운데서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버림받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수가 아닌가? 이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분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다! 이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광명을 보게 하셨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방랑하지 않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열고, 말씀으로 사역의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말씀 시대에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각기 다른 위치에서 말씀함으로써 사람에게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진정으로 보게 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을 보게 한다. 이렇게 사역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며 도태시키기 위한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 시대에 말씀으로 사역하는 진정한 함의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과 성품을 알고, 사람의 본질을 알며,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말씀 시대에 행하려는 모든 사역을 이루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고 사람에게 시련을 준다. 사람은 말씀을 보고 들었기에 말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 나아가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게 된 것이다. ‘말씀’이라는 단어는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천지를 진동시키고, 사람의 마음과 고정 관념, 그리고 옛 성품을 변화시켰으며, 온 세상의 낡은 면모를 변화시켰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역하고 말씀하며 사람을 구원한 분은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밖에 없다. 이로부터 사람은 말씀의 인도 아래에서 살고, 말씀의 양육과 공급으로 살게 되었다. 또한 말씀의 세계에서 살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러한 말씀과 사역은 다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옛 창조 세계의 원래 모습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말씀으로 온 우주 사람을 인도하고 정복하고 구원하며, 마지막에는 말씀으로 옛 세상을 끝낸다. 이렇게 해야 전체 경륜의 모든 부분이 완성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중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에 실체화되었다. 즉, 모든 진리, 길, 생명이 모두 육신으로 임했고, 하나님의 영이 확실히 땅에 왔으며, 영이 육신으로 왔다. 겉으로 보면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사역을 통해 영이 육신에 실체화되었고, ‘도’가 ‘육신’ 되었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음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란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너는 오늘날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이것이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이러면 네가 단순히 성육신 하나님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가고 있는 길이 생명의 도, 진리의 도임을 깨달았기에 진정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했지만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본질적 의미만 이루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은 육신과 함께하므로 둘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즉,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므로 성육신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라는 증거가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되었다’는 말의 함의를 이룬 것이다. 또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의 의미와 더 깊게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까지도 확신하게 만든다. 즉, 천지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그의 말씀은 그와 함께하였으므로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한층 더 명확하게 드러내어 그의 모든 말씀을 보게 한다.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밝히 알아야 한다. 육신을 어떻게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의 관계를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마땅히 해야 할 간증이자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4> 중에서

『내 말은 영원불변한 진리이며, 나는 사람의 생명 공급자이자 인류의 유일한 인도자다.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 자체의 본질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설령 이 세상에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도움은 그 누구도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말을 거역하고 반박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뿐이다. 시간과 사실이 나를 증거할 것이다. 내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이며,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옳은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실증할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내 말에 정죄받을 사람들이고, 더욱이 내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들로, 내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 중에서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말씀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 전편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생명의 도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본질과 생명의 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자 끝없이 솟아나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창세 이후 하나님은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사역,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사역을 수없이 행하였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숱한 대가를 치렀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자 사람을 부활시키는 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 순간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시시각각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과 생존하는 근본이 되었으며, 또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사람을 소생시켜 모두가 흔들림 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도록 했다. 사람은 그의 힘과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생명력에 의지해 한 세대 한 세대 이어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힘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사람들을 지탱해 주고 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치른 적 없는 대가를 치렀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의 생명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눈부신 빛으로 반짝인다. 천지가 크게 변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생명은 계속 존재한다. 하나님은 만물이 생존하는 원천이자 만물이 의지해 살아가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하늘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땅 역시 하나님의 생명의 힘을 원천으로 숨 쉬고 있다. 생기를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날 수 없고, 활력을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병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이든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너는 생명을 간절히 원할 수도 있고, 진리를 몹시 얻고 싶을 수도 있다. 어쨌든 너는 하나님을 찾고 싶어 할 것이다. 네가 의지할 수 있고, 네게 영생을 부여하는 하나님을 말이다. 하지만 영생을 얻고 싶다면 먼저 영생이 어디에서 오는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방금 나는 하나님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이고, 하나님만이 생명의 도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명이라면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고, 하나님만이 생명의 도라면 하나님 자신이 곧 영생의 도이다. 그렇다면 너는 먼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 영생의 도를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단 이 두 문제를 나눠 교제해 보도록 하자.

네가 진정으로 영생의 도를 얻고자 하고 또 그것을 갈급하게 찾고 있다면 우선 나의 질문에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마도 너는 “하나님은 당연히 하늘에 계시지요. 설마 당신 집에 계시겠습니까?”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은 당연히 만물 가운데 있다거나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다거나 영계에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대답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에 있다’는 대답은 완전히 옳은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진정으로 믿는 사람과 거짓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과 증오하는 사람,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사람과 도태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일부 사람의 마음속에만 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칭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대상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대상인 만큼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생의 도를 보고 들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짓으로 믿는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증오하는 사람,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 자들이며,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반대로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에게서 영생의 도를 받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따르는 대상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 사람의 곁, 영계, 그리고 만물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땅 위에도 있다. 그러므로 말세가 도래함에 따라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도 새로운 경지로 들어섰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며, 나아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래야만 인류에게 생명의 도를 전해 줄 수 있고 사람을 생명의 도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인간 세상에서 사는 것은 사람이 생명의 도를 얻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이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서 행하는 자신의 경영에 보조를 맞추게 하기 위해 만물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 진리는 시인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늘과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이치만 인정한다면, 너는 영원히 생명도, 진리의 도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글귀와 이치, 그리고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생명과 함께 공존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분명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몸뚱이는 상상과 관념으로 가득 찬 육체, 즉 구린내가 진동하는 육체에 불과할 것이다. 명심해라. 책의 글귀는 생명으로 삼을 수 없고, 역사적 기록은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는 하나님이 현실에서 한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한 말씀만이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 방식이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 했던 말씀의 기록을 오늘날에도 고수한다면 너는 고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역사ㆍ문화재 전문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너는 늘 하나님이 과거에 사역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지난날 인간 세상에서 사역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오래전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준 도만 믿을 뿐, 하나님이 현재 사역하는 방향이나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현재 선포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상가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글귀만 고수하고 있다면 너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와 다름없다. 너는 너무나 고집스럽게 낡은 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며 너무나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은 언젠가 모두 쓰러질 것이다. 그들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본질은 조금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답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네가 진실로 생명의 도를 찾고자 한다면 너는 먼저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와서 생명의 도를 베풀어 주는 사역을 하고 있으며, 또한 말세에 인간 세상에 와서 생명의 도를 베풀어 주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에 말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가져다준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이 영원히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도에 순종해야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을 거부한 채 복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말세에 그리스도가 온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네가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반드시 영원히 불태워질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이 그리스도는 성령의 발현이자 하나님의 발현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명심해라. 네가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린다면 아무도 너 대신 그 대가를 치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만회하고자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대적하고 저버린 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느냐? 너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진리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사실을 외면한 채 함부로 말하지도 말라. 너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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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

성육신이란? 그 본질은 무엇인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9~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성육신이란? 그 본질은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자신이 만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무엇보다 먼저 육신, 특히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이란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된 것, 즉 하나님이 육신 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체화되며, 육신을 통해 발현된다. 하나님이 거하는 육신 외에는 누구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정상 인성만이 신성 사역을 선포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정상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란 정상 인성과 정상 이성,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이 실체화한 것이다. ‘실체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에 거하면서 그 육신을 통해 신성 사역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바로 ‘실체화’이자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삶과 사역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전의 삶이다. 일반인의 가정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며, 정상적인 생활 윤리와 법칙, 필요(의식주 등), 보통 사람과 같은 연약함, 희로애락 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정상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의 삶이다. 이때도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일반 인성으로 산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초자연적인 부분이 없어 보이지만, 직분을 이행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오로지 신성의 사역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직분을 시작했다는 것은 정상 인성이 이미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정상 인성으로 직분을 이행하는 삶이며,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첫 번째 단계의 삶이 온전히 평범한 인성으로 사는 삶인 이유는 그때의 인성이 신성의 모든 사역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성이 성숙해질 때까지,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육신인 이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의 삶은 그저 정상 인성의 삶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삶은 인성으로 사역을 충분히 담당하고 직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이행하는 기간의 삶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삶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태어나자마자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고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를 보인다면, 육신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의 본질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간에 속한다. 이렇듯, 육신의 인성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성육신 하나님께는 신성만 있을 뿐, 인성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육신의 원칙과도 위배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옷을 입은 신성으로 살며 사역한다. 다만, 이때의 인성은 오로지 신성이 정상 육신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인성 안에 있는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즉,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인성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신성은 인성에 가려져 있지만 그 본질은 인성이 아닌 완전한 신성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단, 이 육신으로 사역하는데, 이 육신을 사람이라고도,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하고 있는 하나님이 되고, 사람의 외형과 본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지닌 사람이기에 창조된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즉 인성을 지닌 모든 사람 가운데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 외에는 모두 창조된 인류인 것이다. 똑같이 인성을 갖추고 있지만, 창조된 사람은 인성 말고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는 인성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으로 알아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신성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 나타나며,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장 측량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음에도 너희 대다수는 이에 대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그의 본질은 인성과 신성의 결합체이다. 이 결합체를 하나님 자신이자 땅의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땅에서 예수의 삶은 어디까지나 육신의 정상적인 삶이었다. 그는 육신의 정상 인성으로 살았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사역이나 말씀의 권병,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병 등 비범한 일들이 기본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29세가 되기 전, 그러니까 직분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가 정상 육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정상 육신인 데다가 직분을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저 그를 정상적인 일반 사람이라고 봤을 뿐이다. 당시 일부 사람들이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일반인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고는 아예 알아볼 수 없었다. 직분을 이행할 때 그가 많은 이적을 보여 줬어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가 정상 인성의 외형을 지닌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상 인성과 그가 행한 사역, 이 두 가지는 첫 번째 성육신의 의의를 완성하기 위해 존재했다. 즉, 하나님이 육신에 완전히 임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해서였다. 사역을 하기 전까지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평범한 육신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것은 그가 사역을 시작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보여 준 이적과 기사, 또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도 전부 정상 인성의 육신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육신이 하나님의 권병을 지니고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권병을 가진 것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그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 중의 사역이었고, 인성으로 가려진 신성의 발현이었다. 어떻게 이적을 보이든, 어떻게 권병을 나타내든, 그는 여전히 정상 인성, 즉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고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부활하기 전까지, 그는 계속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고 있었다. 사람에게 은혜를 내리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모두 그의 직분이었고, 정상적인 육신으로 행한 것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그는 무엇을 하든 정상 인성의 육신을 벗어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이고, 또 그가 행한 일들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라고 해도 그는 성육신한 몸이었기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의식주가 필요했고, 정상 인성으로서의 필요한 것이 있었으며, 정상인의 이성과 사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정상인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이지 비범한 육신이 아님을 증명한다.』

성육신이란? 그 본질은 무엇인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은 육신 안에 있는 신성의 정상적인 사역을 유지시키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과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러니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유지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은 영원히 완성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께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사역에는 사람의 어떤 사유도 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를 하는 인성, 즉 사유하는 인성이라는 전제하에서 사역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고차원적이든, 그의 사역에는 논리학도, 사고학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를 통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직접 나타낸 것이다. 그의 사역은 전부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이지, 그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그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십자가에 달린 것은 두뇌로 상상한 것이 아니며, 두뇌로 사유하는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직분이다. 그 사역은 전부 사람의 뜻이 아닌 신성이 해야 하는 일로, 육에 속하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반드시 두뇌의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 인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가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인성으로 사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본질이자,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예수가 사역하는 기간에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아주 많이 보았다. 예를 들면, 그가 춤도 추고, 혼인 잔치에도 참석하고,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도 하고, 어떤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예수는 신성을 대표하는 사역도 많이 행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역은 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발현된 것이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의 신성이 정상적인 육신에 실체화하여 사람들은 그를 보거나 만질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 하나님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고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은 인자의 일거수일투족, 인자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거나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다. 성육신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의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기에 사람이 본 것은 형태를 갖추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와 어떠함 등등을 구체화하고 인간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놓고 볼 때, 인자의 겉모습은 확실히 한계가 있지만, 인자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었다. 단지 발현되는 형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인자의 인성이든 신성이든, 우리는 그가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단지 하나님이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고, 육신의 위치에서 말씀하며, 인자의 신분과 지위로 인류를 마주했을 뿐이다. 이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실제로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을 접하고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을 지극히 낮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실제에 대해 초보적으로 알게 되었고, 초보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예수가 행한 사역과 그의 사역 방식, 말씀할 때의 위치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의 참모습과 다소 다를지라도, 그의 모든 것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사람이 본 적 없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였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떤 형상으로 사람을 마주하든, 하나님이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 패괴된 인류 중의 그 어떤 사람도 대표할 리 없다. 하나님 자신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그는 패괴된 인류라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위치와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진리인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고, 이는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의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에서,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은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 그 본질이 그의 사역을 방해할 리 없고, 그는 자신의 사역을 망치는 일을 할 리 없으며, 자신의 뜻에 위배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에 방해되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성령 역사의 본질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함으로 그의 본질을 육신에 실체화하여 육신이 그의 사역을 하기에 충분케 한다. 그러므로 성육신한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을 대신하고, 성육신 기간의 모든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핵심으로 하며, 어떤 시대의 사역과도 섞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으니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하며, 육신으로 왔으니 육신에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든 어쨌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직분을 다한다.

하나님의 본질 자체는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권병에서 나온 모든 것에 순종할 수도 있다. 영의 사역과 육신의 사역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에 대한 권병을 갖고 있고 하나님의 본질이 있는 육신 역시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고 또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그의 권병에 순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에 내포된 의미다.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을 하고, 이를 방해하거나 훼방 놓지 않으며, 모순되는 사역은 더욱 하지 않는다.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같은 뜻을 이루기 위함이고, 같은 사역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이 서로 아무 상관없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으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 모두 하나님 자신의 본질과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을 나타내고 또한 모든 사랑을 나타낸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 없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교만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생기게 된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사탄의 속성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패역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본질만 있을 뿐 하나님의 본질은 있을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사람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맡긴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경영을 자신의 당연한 본분으로 삼아 이행할 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공존할 수 없으므로 사탄의 속성을 가진 자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본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앞날을 위함이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비록 그가 육신에 거하고 있으나 그의 인성은 육에 속한 사람의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특정한 성격이 있으며, 그 성격 역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에는 연약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연약함이란 그의 인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연약함은 신성을 어느 정도 제약하지만 무한정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와 기한이 있으며,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의 정상 생활 이외에도 인성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신성에 좌우된다. 그리스도가 인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하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직접적으로 신성의 지배를 받을 수 있으며, 보통 사람보다 이성적임을 의미한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고 사역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나타내고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종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사역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육신을 입은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경배드릴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그는 그저 하나의 피조물로 이 땅에 왔기에 피조물의 외형을 하고 인성을 더 갖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으로 인함이요, 이는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신분이 하나님 자신임에도 그가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은 육신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경배드린다’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그의 어떠함이며, 사람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자신은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요구하든 사람이 행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신성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을 갖고 있다. 그 권병은 신성이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어떠함이다. 그 성품과 어떠함으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아주 정상일지라도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어떤 위치에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든,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여러 방식과 위치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훈계하시고, 마음의 소리를 전하셨다. 생명력을 가진 그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무의식적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으셨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으셨으며, 우리 때문에 우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시고, 우리의 종착지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디셨으며, 또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계시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도 우리의 본성과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지 못하며, 어떤 이도 인류의 패역과 패괴를 심판하지 못하고, 어떤 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거나 사역하지 못했다. 또한, 그 말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와 존엄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은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현되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거나 빛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밝히지 못했으며,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를 사탄의 속박과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당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셨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미망 속에서 보내던 우리의 삶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게 하셨으며, 우리를 정복했고,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생겼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우리들 가운데서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버림받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수가 아닌가? 이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분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그의 육신 역시 마찬가지로 지고지상하고, 전능하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이 같은 육신은 오로지 공의로운 일, 인류에게 유익한 일, 거룩하고 빛나며 위대한 일만 할 수 있다.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 없고, 하나님의 영을 배반하는 일을 할 리는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영은 거룩하므로 그의 육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될 수 없으며, 사람과는 다른 본질을 가진 육신이다. 사탄이 패괴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고, 게다가 사탄이 하나님의 육신을 패괴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과 그리스도가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사람만 사탄에게 점령당하고, 이용당하고,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는 절대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는다. 사탄은 절대 가장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할 수 있다.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 영과 크게 다르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역시 성육신 하나님 자신이고 또 영이자 육신이다. 호칭이 어떠하든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육신이 하는 사역이자 하나님의 영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영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신의 신분으로 사역하는 것일 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오늘 언급한 실제 하나님은 인성으로 사역하기도 하고, 신성으로 사역하기도 한다. 실제 하나님의 나타남을 통해 정상적인 인성의 생활과 정상 인성의 사역은 물론 완전한 신성의 사역도 있게 되고, 인성과 신성이 하나로 연결된다. 또한 모두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인성에서든 신성에서든 모두 말씀을 한다. 인성으로 사역할 때는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적인 언어는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워서 누구에게나 공급할 수 있고, 지식인이든 지식이 없는 자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 신성으로 사역할 때도 역시 말씀을 통해 하지만 신성 사역에는 공급이 가득하고 생명이 충만하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고, 인성의 취향과 무관하고 인성의 제약이 없다. 또한 정상 인성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육신으로 사역하는 것은 같지만, 이는 영의 직접적인 선포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성 사역만 받아들인다면 한 면에만 국한되기에 오랜 시간의 책망과 훈계, 징계가 있어야 약간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없고 성령의 함께함이 없는 자는 고질병이 재발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성 사역을 통해 그 폐단과 결점을 보충함으로 완전해지게 해야 한다. 장기간의 책망과 훈계가 필요 없이 긍정적인 면으로부터 공급하는데, 말씀으로 모든 결점을 보충하고, 말씀으로 사람의 모든 내적 상태를 드러내며, 말씀으로 사람의 생활과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지배하고 사람의 속셈과 목적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실제 하나님이 하는 실제 사역이다. 그러므로 실제 하나님을 대할 때는 그의 인성 앞에서 순종하고, 신성의 사역과 말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확신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 영의 모든 사역과 말씀을 정상 인성을 통해 하고, 성육신을 통해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인성을 지배해 사역하고, 육신으로 신성의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너는 하나님이 인성으로 하는 사역과 완전한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실제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의의이다. 네가 이것을 간파했다면 하나님의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니 신성의 사역을 지나치게 중시하지도, 인성의 사역을 지나치게 경시하지도 않을 것이요, 극단으로 가지도, 길을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실제 하나님의 함의는 신성의 사역과 영의 지배를 받는 인성의 사역을 육신을 통해 나타내어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실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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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0~21)

이제 세 번째 말씀을 보도록 하자. 이 말씀에서 아담이 하와에게 지어 준 이름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 이는 지음 받은 아담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생각이 있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그가 무엇을 알고 얼마나 아는지에 대해 지금 우리는 연구하지도 토론하지도 않겠다. 그런 것은 내가 말하려는 세 번째 성경 말씀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이 말씀을 오늘 교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평생토록 이 말씀 속에 어떤 뜻이 내포돼 있는지 모를 것이다. 먼저 나는 너희에게 약간의 단서를 제공하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에덴동산을 상상해 보거라.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 봤다. 그런데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숨어 버렸다. 하나님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그들을 불렀고,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 하나님을 뵙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므로 감히 하나님을 마주하지 못했다. 이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 본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 너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무엇으로 옷을 지어 입혔는지 알겠느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혔다. 그 말인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들어 준 그 옷은 가죽옷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 준 첫 번째 옷이다. 가죽옷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고급 옷이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다. 혹자는 너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인류의 선조가 최초로 입은 옷이 어떤 옷입니까?” 너는 “가죽옷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 가죽옷은 누가 지어 준 것입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이 지어 주셨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핵심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옷은 하나님이 지어 준 것이다. 이 부분은 거론할 가치가 있지 않으냐? 내가 방금 이렇게 설명했는데, 너희 머릿속에 한 장면이 연상되지 않느냐? 분명 대략적인 윤곽은 있을 것이다! 오늘 이런 말을 하는 목적은 너희에게 인류가 입은 최초의 옷이 무엇인지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핵심은 가죽옷에 있지 않다. 내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그 일을 할 때 나타낸 성품과 속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신분으로 아담, 하와와 함께 있었느냐?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하나님의 신분으로 나타났느냐? 홍콩의 형제자매들이 대답해 보아라.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한국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이 어떤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느냐?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대만의 형제자매들이 말해 보아라.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이 가장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부모의 신분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다 아주 적절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을 창조하여 그들을 동반자로 삼았고, 그들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그들의 의식주를 돌보았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부모 신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한 그 일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고지상함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신묘막측함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낮춤과 자비,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근심과 책임과 보호만 보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흡사 부모가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것과 같다.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진실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대한 지위를 가진 자로 자처한 것이 아니라 직접 인류에게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혔다. 그 가죽옷으로 치부를 감추든 추위를 막든 어쨌든 하나님은 직접 손수 그 일을 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생각이나 이적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옷을 지어 사람의 몸을 가린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에 하나님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심지어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통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에 대해 막연한 상상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낮춤까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고 안하무인인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한없이 높이 쳐들었던 머리를 떨구게 되었다. 거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진실함과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한층 느끼게 되었고, 반대로 마음속의 ‘위대한’ 하나님과 ‘사랑스러운’ 하나님과 ‘무소불능한’ 하나님은 아주 미미하고 추하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너는 이 말씀을 보거나 이 일을 듣고 나서 하나님이 행한 이런 일로 하나님을 얕보겠느냐? 어떤 이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반대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실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에 감동받게 된다.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볼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진실로 존재함을 더 느끼게 되고,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비중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이 늘 사람의 곁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현재와 연결시켜 봐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에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위해 이처럼 소소한 일을 했고, 심지어 사람이 지금껏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고 예상치도 못한 일을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런 일을 지금의 사람에게는 할 수 없을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본질은 가장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도 가장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은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가 더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나 장소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행한 일에서, 사람이 하찮거나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일, 심지어 전혀 하나님이 할 리가 없다고 여기는 아주 미미한 그런 일들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진실함과 사랑스러움이 나타난다. 하나님은 위선적이지 않다. 그의 성품과 본질 속에는 과장, 가식, 거만, 교만이 없다. 그는 지금껏 큰소리친 적이 없다. 그는 신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자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돌보고 인도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든, 얼마나 느낄 수 있든, 얼마나 볼 수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확실히 그런 일을 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러한 본질을 사람이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경외심에 영향을 줄까? 나는 네가 하나님의 진실한 면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돌봄을 더 실감하길 바란다. 그와 동시에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해 어떠한 추측도 의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묵묵히 모든 일을 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함과 신실함과 사랑으로 모든 일을 묵묵히 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떠한 주저함이나 후회도 없었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보답받거나 무언가 얻어 내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는 유일한 목적은 그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첫 번째 주제는 여기까지 얘기하겠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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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 20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봉사자에서 하나님나라시대의 백성으로 전환시켰고, 곧이어 하나님나라 백성들에 대한 요구를 말씀하시고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나라의 축가>, 하나님께서 전 우주를 향해 공개한 행정과 하나님나라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등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인 자신은 죽어서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죽지 않고 살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게 틀림없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마치 금고에 들어간 것처럼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크게 기뻐하며 감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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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부터 10월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11만 자 이상의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 선민들에게 공급하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매일같이 예배를 드리고 성령의 최신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을 믿을 때 실행해야 할 진리와 분별해야 할 일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성령께서 드러내신 비밀도 대략적으로 이해하게 되어 마음이 무척 뿌듯했습니다. 모두들 성령의 말씀이 나날이 높아져, 늘 새로운 계시, 새로운 빛이 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무척 복받았다고 여겼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역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 들림 받는 자,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시려는 이기는 자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틀림없이 천국에 분깃이 있으며,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기업으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뛸 듯이 기뻐하고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10월 26일부터 하나님 말씀의 화제가 바뀌고, 그에 따라 어투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중국에서 장자와 백성 이외의 존재는 다 큰 붉은 용의 자손이며, 버림받을 대상이다.” “장자 외에 다른 사람은 모두 멸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힘만 쓰는 자, 마귀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영이 없는 죽은 자들이고, 제거되어 무(無)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이러한 호된 심판의 말씀들은 선포되자마자 하나님 선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들 어리둥절하고,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의기소침하고 실망스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봉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권병이 가득한 하나님 말씀을 사람이 감히 거역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봉사자의 시련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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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첫 시련, 봉사자의 시련

『중국에서 장자와 백성 이외의 존재는 다 큰 붉은 용의 자손이며, 버림받을 대상이다. 명심해라! 중국은 어쨌든 내게 저주받은 나라이니, 몇몇 백성도 단지 앞날의 사역을 위해 힘쓰는 대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장자 외에 다른 사람은 모두 멸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는 나의 행정이다. 내 저주를 받은 자는 곧 내가 증오하는 대상이며, 이는 이미 정해진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95편> 중에서)

『힘만 쓰는 자, 마귀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영이 없는 죽은 자들이고, 제거되어 무(無)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이것은 내 경륜의 비밀이자 내 경륜에서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지만 또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속하지 않은 자는 나를 대적하는 자이고, 나에게 속한 자는 나의 마음에 합하는 자이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내가 사탄을 심판하는 원칙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공의와 정직을 볼 수 있다. 즉, 사탄에게서 난 것은 다 심판하고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이것도 나의 진노이며, 나의 성품을 더 잘 보여 주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8편> 중에서

『오늘날 나를 위해 봉사한 후 모두 물러가라! 언제까지 내 집에 눌러앉을 생각도, 뻔뻔하게 밥을 빌어먹을 생각도 하지 말라. 사탄에 속한 것들은 모두 마귀의 자식들이며 영원히 멸망할 존재들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9편> 중에서)

하나님 선민들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자신은 큰 붉은 용의 나라인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큰 붉은 용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으므로 큰 붉은 용의 자손이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의 자손은 모두 봉사자로서 생명이 없으며, 하나님을 위해 힘을 다하더라도 무저갱에 떨어져 멸망에 이르러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기에 천국에 들어가려는 하나님 선민들의 꿈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다들 처음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는 고통을 맛보고, 극도의 연단 속에 빠졌습니다. 목 놓아 우는 자, 하늘을 향해 탄식하는 자,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자, 모두들 마음속 아픔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갖은 고생을 했는데, 어쩌다가 한순간에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었단 말인가? 설마 내가 정말 봉사자가 되어 버린 걸까?’ 하나님 선민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 말씀이 비록 호되다 할지라도 다 진리이고, 말씀이 드러낸 것은 전부 사실이란 것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는 권병과 위력이 있어 이미 사람의 마음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선민들은 아무리 소극적이 되고, 약해지고, 낙담하고, 실망하더라도 감히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대적하지 못했고, 더더욱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다만 하나님의 지배와 섭리에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글자를 알고 ‘하나님의 사역’과 같은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은 더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모두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에서 한참 멀어지게 됐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 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의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띤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주 쉽고 가볍게 본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미를 잃었으며, 마지막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텅 빈 도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본질이 없고 자신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평안과 풍성한 은혜를 얻을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느님(원문: 上帝)에게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을 믿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겠느냐?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함의가 고작 더 많은 은혜를 얻는 것에만 국한되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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