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여러 재난이 임하면서 주님 재림과 관련한 성경 속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주님이 벌써 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예감에 주님을 찾고 싶어 하지만, 이단에게 미혹될까 두려워 대담하게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을 경계하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정말로 재림한 주님을 문전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련한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채 버려지고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정말 자질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진리를 구하며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가장 알아야 할 것은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이단에 속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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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하나님]주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하는 3가지 원칙
기독교 신자에게 기도란 매일 해야 하는 필수 과제이자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대체 어떻게 기도드려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지?’ 오늘 우리 같이 기도의 3가지 원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2014년~현재 하나님나라 복음이 해외2014년~현재 하나님나라 복음이 해외로 전해지며 증거되고 있다로 전해지며 증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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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하나님의 현현 사역만이 우리가 죄에서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에요!
아직도 죄 속에서 고민하고 있나요?
아직도 어떻게 진실한 회개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성경을 찾아 헤매고 있나요?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그림 전시회를 보시면 매 하나의 그림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 사역을 하시는 그림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고 이미 은밀하게 사람 가운데 강림하여 한 단계의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하게 하는 사역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어요. 주님을 맞이한 사람들은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목양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체험하고 있고 패괴 성품이 점차 정결하게 되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지금 바로 링크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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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하는 3가지 원칙
기독교 신자에게 기도란 매일 해야 하는 필수 과제이자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거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나님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대체 어떻게 기도드려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지?’ 오늘 우리 같이 기도의 3가지 원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1. 당신의 기도는 순수하게 하나님께 털어놓는 마음의 소리입니까
우리는 기도드릴 때 기도드리는 시간이나 말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신경 쓸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우리의 다짐을 내비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진 않습니다. 평소 기도드릴 때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헌신하겠습니다. 그 어떤 위험과 고난이 닥쳐도 물러서지 않고 평생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거나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제 앞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자 빛입니다. 범사에 당신의 말씀을 따르고 당신의 뜻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역경이 닥치고 좌절을 맛보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겼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의지도 없어집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소극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멀리합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서 한 기도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도가 아니라 허풍과 빈말, 그리고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의 기쁨을 얻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보여 주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사실 그 속에는 허위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그 본질은 하나님을 농락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8:10~14)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이 기도드릴 때 교만하고 자신의 죄를 전혀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 자신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충성심을 자랑하고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세리를 낮추었습니다. 이런 외식하는 기도로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세리는 진심으로 기도드렸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과오를 반성하며 하나님께 회개했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의 기도에서 그의 진심을 보셨고 그의 기도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빈말이나 허풍, 또는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고 기만하는 기도를 싫어하시고 우리가 마음을 열고 진짜 마음의 소리와 진실한 말을 통해 하나님과 마음으로 통하길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3~24) 그리고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품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중에서) 이처럼 우리는 기도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마음속 이야기와 진실한 말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진짜 모습과 실제 어려움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드릴 때 우리는 삶 속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타락한 성품을 유로 했을 때도 하나님의 앞으로 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하나님과 진실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미련을 갖고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으로 올 수 없을 때 이렇게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진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은 휘황찬란한 바깥세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저도 육적인 것을 배신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당신의 영이 감각이 없는 제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믿음과 힘을 주시어 제가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당신의 앞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렇게 진심으로 여러 번 기도드리면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어 우리가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죄악 속에서 살게 할 뿐이며 하나님과도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우리가 진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육적인 것을 배신하면 사탄의 시험과 유혹 역시 배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눴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입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드리지 않고 그저 좋은 말로 하나님께 아첨하거나 하나님을 속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며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분별하거나 이겨 낼 수 없어 결국 사악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사탄에게 고통받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란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앞에서 순수하게 마음을 터놓고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첫 번째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생명이 자라나기 위해 기도드리고 있나요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우리 몸에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등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던 하나님께서 모두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병이 낫고, 가정이 평안하고, 자녀가 좋은 일자리를 찾게 해 달라는 등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관련된 일을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을 때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대로 이루어주지 않으셨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자신의 육적인 이익만을 위해 줄곧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진실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오지는 않았나요?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기도는 사실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고 하나님께 우리의 뜻대로 모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의 미움만 살 뿐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우리는 육적인 복을 추구하거나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길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축복은 우리에게 한순간의 육적인 복만 가져다줄 뿐 우리의 생명을 자라게 해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해 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생명이 자라길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런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누가복음 12:29~3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대로 살아 내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시고 끊임없이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체면, 지위, 돈, 이익 등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속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죄를 저지릅니다. 입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속으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이익과 지위를 지킬 수 있는지 계산하고 어떻게 해야 자신의 이익이 피해를 보지 않을지 생각합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남들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앞으로 와 기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정직할 수 없으며 늘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입니다. 이렇게 가다간 하나님의 미움만 살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겐 당신의 구원이 절실합니다. 부디 제가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앞으로 제가 또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이거든 저를 징계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드린 후 우리가 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때면 성령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질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길 바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기쁨과 축복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하나님의 미움만 살 뿐입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의 간사한 마음을 배신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며 가감 없이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 실천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줄어들 것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에서도 서서히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기도가 이뤄 낸 효과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누가복음 11:9~10) 여기서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진리 진입에서 진실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주시어 우리의 영적 생명이 서서히 자라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굳게 서기 위해 기도하나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은 일에 직면하곤 합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집안에 평화롭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천재지변이나 인재가 덮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대다수 사람은 하나님께 이런 상황을 모두 거두어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힘들게 사역을 하고 심지어 결혼 생활이나 일도 뒤로 한 채 하나님만 믿었던 사람도 큰 병이 덮치면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하나님을 증거하며-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거나 하루빨리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께 실망하고 비관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적 이익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며 이기적이고 비겁하게 하나님께 바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뜻대로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빨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온갖 고통을 끝까지 견뎌 당신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길 원합니다. 얼마나 큰 좌절을 겪든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이런 의지를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면 너는 굳게 설 수 있다.』(<하나님을 사랑해야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중에서), 『속은 괴로워 심히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습니다. 비록 제 안은 어둡지만 저는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니 당신의 사랑을 제 안에 더 많이 만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기를 원한다면….』(<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중에서) 따라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며 증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려는 마음으로 육적인 고통이 닥친다고 해도 굳게 서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입니다. 시련 앞에서 모든 재산과 자식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생겨 몸과 마음으로 큰 고통을 견뎌야 했던 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왜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을 주셨냐고 원망하지 않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욥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건 거두시건 피조물로서 당연히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나 원망도 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 갖춰야 할 마땅한 이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그 후 욥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순종,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도 욥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관념에 맞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선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증거하며-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굳게 서기 위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믿음에 힘을 주시어 우리가 난관을 헤쳐 나가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굳게 설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이상이 바로 기도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문제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이 원칙에 따라 실천하고 진입한다면 형제자매님들은 예상치 못했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하나님 나라
제5장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 단계
제4장 하나님 선민들이 여섯 가지 시련을 겪던 시기에 하나님이 성육신 하나님과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을 증거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전능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나타나 사역하면서 펼치신 다섯째 시련, 모압 후손의 시련
“하나님 선민들은 부각물의 시련을 겪고 나서 자신의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탄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도 직접 느꼈으며, 진리 추구를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위, 미래나 종착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겠노라고 확고한 뜻을 세웠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진리를 얼마간 깨닫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알게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비록 하나님 사역 속의 부각물이지만, 그래도 말세에 현현하여 사역하시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심판하고 정결케 할 대상이자, 하나님이 재난 전에 만드시려는 이기는 자, 즉 첫 열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행세하면서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가 다른 나라의 하나님 선민들보다 높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지위를 향한 욕심과 교만한 성품을 겨냥한 진리를 선포하시어 하나님 선민들을 모압 후대의 시련으로 이끄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1993년 5월부터 7월까지 <정복 사역의 실상 2> <사람의 본질과 신분> 등 몇 편의 말씀을 선포하시어 중국의 하나님 선민들이 모압의 후손임을 폭로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압의 후손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함의 후손이 가장 비천한 사람들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큰 붉은 용의 자손과 함의 후손은 상징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함의 후손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은 아무리 저주받았어도 노아의 후손이지만, 모압은 본 뿌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음란함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차이가 있다. 비록 둘 다 저주를 받았다고는 해도 그 지위는 여전히 다르다. 그래서 모압의 후손이 가장 비천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 정복되면 이는 무엇보다 큰 설득력을 갖는다.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규례를 타파한다. 네가 저주받은 자든 징벌받은 자든, 내 사역에 이롭고 지금의 정복 사역에 도움이 되면, 모압의 후손이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상관없다. 네가 이 단계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철저하게 행할 수만 있으면, 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어쨌든 육에 속한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만든 존재이다. 너는 피조물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이것은 너의 본분이다. 물론 오늘날 창조주는 우주 전체를 향해 사역한다. 네가 누구에게서 태어났든 결국 너는 피조물 중 하나이다. 너희, 모압의 후손들 역시 신분이 비천할 뿐 피조물의 일부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내가 구원하는 사람은 일찍이 내가 예정하고 구속한 적이 있는 인류이다. 그러나 너희는 원래 내가 선례를 깨고 인류 가운데에 둔 가련한 영혼이었다. 너희는 자신이 다윗의 집이나 야곱의 집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압의 족속, 이방 족속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와 언약을 맺지 않았으므로 그저 너희들 가운데서 일하고 말하며 너희를 인도할 뿐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증거를 위해 너희 가운데서 사역할 뿐, 너희를 위해 피를 흘린 적이 없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이냐? 나의 사역이 정말 예수처럼 너희를 위해 피를 흘려 죽는 것이란 말이냐? 너희를 위해 이렇게 큰 치욕을 견디는 것은 처음부터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죄가 없는 하나님이 혐오스럽고 역겹기 짝이 없는, 사람 대신 개돼지가 사는 곳에 거리낌 없이 왔지만 내가 처음부터 이 모진 치욕을 참아 온 것은 내 아버지의 영광과 영원한 증거를 위한 것이었다. 너희는 자신의 ‘행위’를 알아야 한다. 또한, 너희가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나 인류의 창조자가 아니라 가난하기 그지없는 사탄의 자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인권과 자유가 없으며, 처음부터 인류의 복과 천국의 복은 너희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너희는 인류의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 또한 너희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오늘날 너희를 온전케 하는 것이 처음부터 내 계획의 일부였을지라도 이는 미증유의 사역이다. 너희는 지위가 비천하기 짝이 없고, 본래 인류의 몫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의 복이 아니더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본질과 신분> 중에서)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모압은 롯과 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음행에서 비롯된 인물입니다. 모압의 후손은 하나님 선민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선민들은 자신이 모압의 후손으로 출신이 비천하고, 사악하고 패괴된 존재라는 것을 알고 매우 치욕스러웠으며, 도무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선민들은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하나님 선민들의 마음은 너무나 소극적이 되고 무거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도 할 말이 없고, 모압의 후손인 자신들은 하나님을 찬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찬양을 부를 때도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알고 난 후 크게 열등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밖에서 사람을 만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졌으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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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당신은 진정한 회개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요구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회개에 이르러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재난 전에 천국으로 들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진정한 회개에 이르렀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당신은 진정한 회개했습니까?
좋은 행위가 진정한 회개를 의미하는가
회개에 대해 주님을 믿는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할 겁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저는 남을 욕하거나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았어요. 대신 포용과 인내하게 되었죠.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며 죄를 뉘우쳤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사역했어요.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주님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고요. 이런 좋은 행위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증거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주님을 믿게 된 우리는 과거의 나쁜 습관을 버리고 겸손한 태도로 인내하며 타인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증거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확실히 행위에 변화가 생기긴 했지만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린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며 스스로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큰 이익과 관련 없는 일에서는 누군가 상처 주는 말을 해도 그와 논쟁하기보다 포용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의 체면과 지위를 깎아내리는 말을 해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면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론 그 사람에 대해 원한과 편견을 가지게 됩니다. 나아가 그에게 복수할 생각을 품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겉으로 큰 악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론 걸핏하면 악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내하고 자제할 때도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선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회개한 사람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보겠습니다. 『단순한 행위 변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흉악한 몰골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행위 변화는 열정에서 비롯되는데, 거기에 성령의 역사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열정을 갖고 한때 호의를 베푸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한 번 하기는 쉽지만, 평생 하기는 쉽지 않다’는 이방인들의 말처럼 사람은 좋은 일을 평생 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생명의 지배를 받으며, 그 생명에 따라 행위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생명과 본성을 대표하며, 위장한 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좋은 행위를 꾸며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환골탈태시키고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 좋은 행위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행위상의 변화는 도리에 기반해 열정으로 이뤄진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나 진리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성령의 인도로 인한 것도 아니다. 때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도 같지 않다. 행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지는 않고,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임을 증명하지도 못한다. 행위상의 변화는 한때의 거짓된 모습이자 열정에서 비롯된 모습이지, 생명의 드러남이라고 할 수 없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외적인 변화와 성품 변화의 차이>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하나님을 믿은 후 우리는 좋은 행위가 있게 되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생명 성품이 변화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행위는 열정에서 나오고 도리와 규례에 근거한 것이거나, 성령에 감동받아 실천해 내는 것들입니다.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겨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사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에게 수천 년간 패괴되어 온 우리 몸에는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 여러 사탄의 패괴 성품이 가득합니다. 이 패괴 성품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규례를 지키고 겉으로 경건해 보이더라도 그 모습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만한 사탄 본성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화를 내며 훈계하려 듭니다. 또한 이기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아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합니다. 가정 내 모든 일이 순조로우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헌신하면서 얼마간의 고생도 개의치 않아 합니다. 하지만 화를 당하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치른 대가를 후회하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가끔 우리는 교회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명백히 위배되거나 심지어 교회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하는 걸 봅니다. 그렇다면 이를 지적해 줘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보고도 입을 다물어야 계속 친구가 될 수 있다’ ‘쓸데없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낫다’ 등 사탄 처세 철학의 영향을 받아 분명히 말해 주지 않습니다. 교회의 이익이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인간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이런 사례들은 우리의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진리를 실천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나아가 하나님께 대적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2천 년 전의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뚜렷한 악을 행하지 않았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해 주고 율법을 지키라고 지도해 주며 좋은 행위들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타나 사역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의 외모가 너무나 평범하며, 메시야라 불리지도 않고 자신들의 관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만한 사탄의 성품을 드러내며 멋대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모독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도가 진리이든,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든,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척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로마 정부와 결탁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우리의 표면적인 행위가 아무리 변해도 내면의 생명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사탄의 패괴 성품이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이어서 언제든 죄를 짓고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이 아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습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 8:34~35)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있는 죄를 증오하십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회개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는 각종 사탄 성품, 교만함과 거만함,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의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실천할 수 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어 온전히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도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속량받아 죄 사함을 받았는데 어째서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걸까요?” 그 주요 원인은 은혜시대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구속 사역이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에 의해 패괴된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 서문> 중에서) 이 말씀에서, 은혜시대에 예수님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고, 그 사역은 사람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결실을 맺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중심으로 회개의 도를 선포했고, 어떻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하는지,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다음으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것과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할 것,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모두 당시 사람들의 분량에 맞춰 하신 요구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아 계속 하나님 앞에서 경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을 선포하셨지만 거기에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자신을 이겨 내려고 해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말씀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사람들의 분량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은혜시대 때 예수님은 사탄 본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시려 많은 진리를 선포하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다시 오겠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다시 오셔서 은혜시대 때보다 더 많고, 더 높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셔서 우리가 철저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얻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신 주님의 심판과 정결케 하는 사역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오셨습니다. 그는 바로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반으로 그 위에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고, 인류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며,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한다. 그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어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어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탄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고 패역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사역의 근본 취지에 관해 많이 알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사람의 패괴된 본질과 근원을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성과는 심판 사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사실 심판 사역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길과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회개를 실천하는 몇 가지 방법을 단순히 알려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우리의 본성과 본질, 패괴된 참모습을 폭로하시고, 우리에게 각 방면의 진리, 예를 들어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등의 진리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일에서도 실천의 길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의 심판을 겪으며, 우리는 점차 자신이 사탄에게 너무도 깊이 패괴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성과 본질 안에는 교만함과 독선, 이기심과 비열함, 교활함과 간사함 등과 같은 사탄의 성품이 가득하고, 이런 것들에 기대어 살다 보니 우리의 삶엔 사람다운 모습이 하나도 없어 사람의 미움은 물론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를 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말씀으로 우리는 비열하고 사악해 하나님 앞에 살 자격이 없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제야 자신의 죄를 미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깨닫게 되어 진리를 실천하지 않으면 필히 하나님의 미움을 사게 될 거란 사실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가 생기고, 더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함으로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 더는 사탄 본성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해 변화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게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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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소개
주인공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교회에서 자기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출세를 해야 인정받는다”, “마음을 쓰는 자는 다스리지만 힘을 쓰는 자는 다스림을 받는다” 등의 사탄 독소에 물들고 패괴된 이유로, 자기도 모르게 지위와 명예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거기다 교만한 성품으로 동역자들과 명예와 권력을 다투고, 형제자매들을 훈계하고 통제하며 모든 결정권을 손에 넣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된 추구 관점과 패괴한 성품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나중에 또 경찰에 잡혀 갖은 고문과 세뇌 교육을 받으며,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실체를 알게 되고, 자신에게 있는 큰 붉은 용의 독소까지 알게 되면서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자신을 미워하고 뉘우쳐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로 이어지는 삶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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