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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을 소재로 다룬 교회 가정 영화

영상 소개

‘학벌이 돈이다’, ‘내 자녀는 출세해야 한다’라는 좌우명은 모든 부모가 갖고 있는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영업부 대리로 일하고 있는 허문혜 또한 딸 가예가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그 소망을 실현시키고자 직장에서 사직까지 하고 딸의 공부에 도움을 주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압박감을 떨쳐내지 못해 딸 가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에 엄마 허문혜는 딸이 잘되길 바랐는데, 오히려 상처가 될 줄 몰랐다며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고… 이때 동창 방형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준다. 허문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학벌이 돈이다’, ‘내 자녀는 출세해야 한다’라는 관점이 자신과 자녀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한 어떤 교육 방식이 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인지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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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화 <하나님을 믿다: 일어나라, 노예 되기 원치 않는 사람들아!

기독교 영화 <하나님을 믿다: 일어나라, 노예 되기 원치 않는 사람들아!>

영상 소개

맹장림은 중국 삼자 교회의 일원이었다. 처음에는 삼자 교회를 다니면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중국 정부는 종교 탄압을 더 강화했다. 정부가 허가한 삼자 교회까지 탄압 대상으로 간주하여 많은 교회의 십자가나 건물을 강제로 철거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교회도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 게양과 시진핑의 초상화를 걸어야 한다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의 이런 박해에 직면한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길로 이끌지 않고 계속 공산당의 요구에 복종했다. 맹장림은 이런 행위가 주님의 도를 지켜 행하지 않는 것이고, 사탄 마귀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목사에게 삼자 교회를 탈퇴하고 가정 교회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목사는 되려 그를 꾸짖고 반대한다. 이럴 때, 맹장림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항지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찾고 구하며 서로 교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삼자 교회 정책을 내놓은 것은 종교를 근절시키기 위한 계략이었음을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아가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데리고 공산당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자 배반하는 행위이고, 그런 목회자는 사탄을 위해 일하는 거짓 목자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맹장림은 믿음의 길에서 핍박과 시련, 환난을 당하는 의의를 깨닫게 되고, 사탄 정권인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하나님을 믿으려면,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을 따라야 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지, 절대 사람에게 복종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맹장림과 일부 사람들은 찾고 구하는 과정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진리이자 하나님의 음성임을 보게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돌아오신 예수님이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들은 드디어 사탄 정권과 종교 거짓 목자인 적그리스도의 속박을 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오게 되어 모두가 기쁨과 환희에 차 행복해한다.

우울증의 근원은 무엇인가?

편집자의 말: 최근 들어 우울증이 조용히 우리 삶에 스며들었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하고 심지어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살아갈 용기를 잃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울증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우울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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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신교】당신에게는 양심의 저울이 있습니까?

  유리는 전능신교의 신자로, 그녀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노력과 희생에 의해 사람위의 사람으로 사는 삶을 살고 싶어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자신이 꿈에도 바라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양심을 속이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약간의 양심지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고, 마음에는 양심을 다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이때, 전능신교를 다니는 엄마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그녀 인생에서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녀가 전능신교에 가서 집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통해 어떻게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고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우리 함께 그녀의 경험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계속 읽기

말씀 찬양 CCM 2020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가장 사랑하심이라>

영상 소개

1

사람 사랑해 구원하려 육신 되신 하나님

사랑으로 오늘의 사역 행하심이라

사랑의 마음으로 패괴된 인류 구원하려

육신 입고 큰 치욕 받으셨으니

사람을 향한 그 큰 사랑, 측량할 수 없어라

모든 영혼 지키시려는 하나님

너는 네 운명에 관심 없고

네 생명 소중히 여기지도 않지만

그만이 사람을 사랑하심이라

2

격려하고 약속하며 심판하고 드러내는

그의 모든 말씀에 사랑이 깃드니

그의 사역의 본질이라

왜 많은 이가 가까이 따르며 그토록 힘이 넘칠까?

그의 사랑과 구원 봤음이라

그의 때는 지체되지 않음이라

모든 영혼 지키시려는 하나님

너는 네 운명에 관심 없고

네 생명 소중히 여기지도 않지만

그만이, 오직 그만이 사람을 사랑하심이라

3

성육신해 사람과 함께 지내지 않았다면

사람은 하나님 사랑 몰랐으리라

그는 어떤 영혼도 잃기 원치 않으심이라

누가 너를 가장 사랑하겠느냐?

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너는 네 운명에 관심 없고

네 생명 소중히 여기지도 않지만

그만이, 오직 그만이 사람을 사랑하심이라

그만이 사람을 이토록, 이토록 사랑하심이라

―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출처: 복음 영상

남편의 배신 후 고통의 먹구름에서 빠져나오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오양모(歐陽默)

덧없이 흐른 세월 속에서 홍아(泓兒)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에서 어느덧 어엿한 소녀가 되었습니다. 사랑에 눈을 뜬 홍아는 자신만의 사랑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고 그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며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홍아는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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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에 따라 바람난 남편을 편하게 대하게 되다

저의 성장 과정에서 로맨스 소설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남녀 주인공이 죽음도 마다치 않고 사랑을 지키는 모습과 각고 끝에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보면 전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 ‘사랑 우선주의’라는 사상이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소설 속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고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평생을 함께하고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줄 배우자를 만날 날만 고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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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화 <문을 두드리다>말세에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방식 (한국어 더빙)

영상 소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2천 년간, 주님을 믿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리실 것이라고 생각해 항상 깨어 기다려 왔습니다. 그럼 주님이 재림하시면 어떤 식으로 문을 두드리실까요?

오늘의 영화 주인공도 몇십 년의 믿음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일에서 수차례의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결국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문을 두드리시는지, 어떻게 주의 재림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출처: 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하나님의 영은 땅에 임하여 찾고 또 찾으면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고, 하나님은 역대로 많은 사람을 사용해 그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끝내 합당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각기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어 갔다. 결론적으로 전부 사람을 통해 일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사역을 멈춘 적이 없이 계속 사람에게 전개하였고, 오늘날까지 계속 사역해 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고 그토록 많은 사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현현한 적이 없고, 또한 형태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실제 하나님의 실제 의의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현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뼈와 살, 형태와 모양이 있는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 가운데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깊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육신에만 거한다면 사역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육신으로는 일부분 사역을 하고, 육신을 입은 사람이 해야 할 직분을 이행한다. 예수처럼 정상 인성으로 일부분 사역을 하며,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육신을 벗어나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영계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너희는 ‘길 … 5’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땅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아버지의 부탁을 완수하기를 구하라. 나머지는 너와 무관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이 말씀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땅에 임하여 신성의 사역만을 행한다. 이는 하늘의 영이 성육신 하나님에게 준 부탁이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곳곳에서 말씀하는 것뿐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을 하는데, 기본 목적과 사역 원칙은 사람에게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해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선포할 뿐, 사람의 사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즉, 인성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 사역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성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영의 음성을 발하며, 영을 대표해 사역할 수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 역시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재능이 출중하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그들에게 역사했다. 즉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생각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사유도 없다. 그는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한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하고 신성이 직접 사역하므로,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사유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만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해야 한다. 즉, 인성 사역으로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다. 예수와 몇몇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세상에 있을 때, 낡은 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계명을 정했으며, 수많은 말씀을 했다. 그 사역들은 모두 신성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이 후에 한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하나님은 시작 사역을 하여 은혜시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즉, 새 시대를 인도하고 옛 시대를 폐했으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반드시 신성 사역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말씀을 다하고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들을 떠났다. 그 후에 사람의 모든 사역은 전부 그의 말씀을 원칙으로 하고, 그가 말씀한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역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예수만 사역했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어도 사람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성으로 사역하기에 신성의 말씀만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석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의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갖고 있는 원칙은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말씀하고 사역하여 신성 사역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보충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인성으로 양육하고 목양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와서 신성의 사역만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접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상인을 통해 이 사역이 완전해지게 하고, 많은 교회를 돌보고 목양하게 해야만 사람의 사유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번역’하여 풀어 주는 것이다. 즉, 신적 언어를 인간적인 언어로 바꿔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어쨌든 소수이고, 사람의 이해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그 말씀들을 확실히 전달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 하는 인성 사역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 또한 새로운 기점을 열지 못하고 그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옛것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할 말씀과 사역을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서 끝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또 그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고 체험해야만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 신성 사역은 하나님을 대변하지만, 인성 사역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은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여 사람에게 새로운 기점을 열어 준다. 이때가 되면 육신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그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 인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할 뿐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정상 인성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 다르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정상 인성’은 아내와 남편, 자녀 등이 있는 것을 말하며, 이것으로 정상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 인성’이란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의 생활이 있고,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정상’의 범주에 사람들이 말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가 있는 것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는 ‘정상 인성’은 인성이 없고, 감정이 없다시피 하며, 마치 육신에 필요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상인의 외형을 갖추고 정상인의 모습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던 예수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은 정상 인성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꼭 갖춰야 하는 것들의 일부만 갖추는 것이다. 이는 정상인의 생활 법칙과 정상인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갖춰야 할 것들이다.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께 아내와 자녀, 가정이 있어야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너에게 묻겠다. 하나님께 아내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남편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자녀가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돌 틈에서 튀어나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역시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에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들이다. 예수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은 다 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이 원하는, 성육신 하나님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신성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가 없었지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그리고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신성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생각하는 ‘정상인’이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만이 신성 사역을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필요한 정상 인성만 갖췄을 뿐,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 인성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흔히 사람의 인식과 판이하게 다르며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에는 사람의 관념을 일축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으며, 사람의 관념과 크게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전적으로 신성이 개입해 사역하고, 인성은 조연의 역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친히 자신의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직접 말씀이 육신(완전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 되어 자신의 사역을 한다. 또한, 이번에 성육신한 것을 기회로 사람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알려 주어 모든 사람이 그가 말씀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므로, 그는 사람을 떠나고 사람과 이별할 것이다. 더 이상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에 거하지 않고 사람을 떠나 다른 부분의 사역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땅에서의 사역을 계속 완성해 나갈 것이다. 단, 그것은 인성에서 행해진다.성육신 하나님이 항상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육신을 벗어나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사역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인처럼 죽을 때의 모습이 되어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역이 끝나면 사람을 떠난다. 그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그는 사람의 나이 계산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단계에 따라 육신의 생명을 끝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언젠가 육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야 떠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지, 정상인의 삶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등 정상인의 갖가지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은 것이고, 육신에 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 경륜의 한 부분을 완성한 후에 사람을 떠날 뿐이다. 그가 육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영은 육신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에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며, 그의 직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의 수명과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이 단계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얼마나 유지될지, 땅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부 영의 사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는 육신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다. 육신의 수명만 보자면 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떠나서도 안 됐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이 끝나자 육신도 거두어들이니, 육신은 영을 따라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에 있을 때 이러한 사역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땅에 온 이유는 정상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정상인의 삶을 산 후에 사역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신성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뜻도, 혈기도 섞여 있지 않으며, 사회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사람의 사유나 관념은 물론 처세 철학과도 관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성육신의 실제 의의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주된 이유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지, 다른 번잡한 과정은 없다. 그는 정상인의 체험을 갖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해야 하는 사역에는 정상인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은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나머지는 그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번잡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성육신한 의의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 이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이 끝나고 육신의 직분은 전부 이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육신에 거하며 사역할 수는 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해야 하므로 그때는 육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의 사역이 전면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더 잘 전개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래의 계획에 따라 사역한다.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사역을 끝냈는지, 그는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가 예정한 길로 인도하므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후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영이 사람의 삶을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실제에 더 잘 진입하여 실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룰 사역이자,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니, 너희는 여기에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봐야 할 것이다!

출처:전능하신 하나님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하나님의 영은 땅에 임하여 찾고 또 찾으면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고, 하나님은 역대로 많은 사람을 사용해 그의 일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끝내 합당한 안식처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각기 다른 사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어 갔다. 결론적으로 전부 사람을 통해 일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사역을 멈춘 적이 없이 계속 사람에게 전개하였고, 오늘날까지 계속 사역해 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고 그토록 많은 사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 앞에 현현한 적이 없고, 또한 형태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실제 하나님의 실제 의의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현현하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뼈와 살, 형태와 모양이 있는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 가운데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에게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해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깊어질 수 있다. 하나님은 육신에만 거한다면 사역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육신으로는 일부분 사역을 하고, 육신을 입은 사람이 해야 할 직분을 이행한다. 예수처럼 정상 인성으로 일부분 사역을 하며,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육신을 벗어나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영계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너희는 ‘길 … 5’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땅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아버지의 부탁을 완수하기를 구하라. 나머지는 너와 무관하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이 말씀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땅에 임하여 신성의 사역만을 행한다. 이는 하늘의 영이 성육신 하나님에게 준 부탁이다. 그가 와서 하는 일은 곳곳에서 말씀하는 것뿐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위치에 서서 말씀을 하는데, 기본 목적과 사역 원칙은 사람에게 공급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람 생활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주요 직분은 영을 대표해 말씀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육신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선포할 뿐, 사람의 사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즉, 인성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땅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역하면서 항상 사람을 통해 사역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하나님은 직접 신성의 위치에서 말씀하고, 영의 음성을 발하며, 영을 대표해 사역할 수 있다. 똑같이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통해 사역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역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했겠느냐?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육신으로 사역하고, 예수 역시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양자는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 차이는 무엇이겠느냐? 역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유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람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한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재능이 출중하고 천성적으로 총명했다.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은사인 재능을 통해 그들에게 역사했다. 즉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발휘시켜, 그들의 장점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생각도, 사유도 없으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심지어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것도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처세 원칙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땅에 임한 하나님이 바로 이렇다. 그의 사역과 말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사람의 사유도 없다. 그는 직접 영의 원뜻을 드러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한다. 즉, 영이 직접 말씀하고 신성이 직접 사역하므로, 사람의 뜻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직접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사유나 생각이 없고, 사람의 처세 원칙도 모른다. 만약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하나님 자신만 사역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서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땅에 온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몇 명의 사람들이 인성에서 하나님의 신성 사역에 협력하게 해야 한다. 즉, 인성 사역으로 신성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직접 접할 수 없다. 예수와 몇몇 제자들처럼 말이다. 예수는 세상에 있을 때, 낡은 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계명을 정했으며, 수많은 말씀을 했다. 그 사역들은 모두 신성으로 행한 것이었다. 반면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이 후에 한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하나님은 시작 사역을 하여 은혜시대를 이끌기 시작하였다. 즉, 새 시대를 인도하고 옛 시대를 폐했으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반드시 신성 사역의 기초 위에서 사람의 사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는 땅에서 그가 해야 할 말씀을 다하고 그의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들을 떠났다. 그 후에 사람의 모든 사역은 전부 그의 말씀을 원칙으로 하고, 그가 말씀한 진리에 따라 실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위해 사역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예수만 사역했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어도 사람은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신성으로 사역하기에 신성의 말씀만 할 수 있지, 일반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석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의 사도나 선지자들을 통해 이후의 사역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갖고 있는 원칙은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말씀하고 사역하여 신성 사역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 또는 더 많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보충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인성으로 양육하고 목양하여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만약 하나님이 육신으로 와서 신성의 사역만을 하고, 하나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와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을 접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상인을 통해 이 사역이 완전해지게 하고, 많은 교회를 돌보고 목양하게 해야만 사람의 사유와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몇 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을 ‘번역’하여 풀어 주는 것이다. 즉, 신적 언어를 인간적인 언어로 바꿔 사람들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어쨌든 소수이고, 사람의 이해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사역할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신성의 사역만 있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접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뜻에 맞는 사람을 통해 그 말씀들을 확실히 전달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들이 하는 인성 사역만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 또한 새로운 기점을 열지 못하고 그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옛것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할 말씀과 사역을 육신에 거하는 단계에서 끝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또 그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고 체험해야만 사람의 생명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 신성 사역은 하나님을 대변하지만, 인성 사역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즉,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말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은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하나님이 신성으로 하는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하여 사람에게 새로운 기점을 열어 준다. 이때가 되면 육신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다.

확장열람: 두 번의 성육신 모두가 인류에게 필요했나니

하나님은 땅에 와서 그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 인성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할 뿐이다. 하나님이 말하는 정상 인성이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 다르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정상 인성’은 아내와 남편, 자녀 등이 있는 것을 말하며, 이것으로 정상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정상 인성’이란 정상인의 생각과 정상인의 생활이 있고, 정상인에게서 태어난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정상’의 범주에 사람들이 말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가 있는 것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람이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는 ‘정상 인성’은 인성이 없고, 감정이 없다시피 하며, 마치 육신에 필요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상인의 외형을 갖추고 정상인의 모습을 지녔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상인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던 예수처럼 말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질은 정상 인성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꼭 갖춰야 하는 것들의 일부만 갖추는 것이다. 이는 정상인의 생활 법칙과 정상인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갖춰야 할 것들이다.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께 아내와 자녀, 가정이 있어야 정상 인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그러한 것들이 없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너에게 묻겠다. 하나님께 아내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남편이 있겠느냐? 하나님께 자녀가 있겠느냐? 이것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돌 틈에서 튀어나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그 역시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인성에 당연히 갖춰져야 할 것들이다. 예수에게 부모와 형제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은 다 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이 원하는, 성육신 하나님이 갖춰야 할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신성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가 없었지만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그리고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신성 사역을 할 수 있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생각하는 ‘정상인’이란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만이 신성 사역을 할 조건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아내나 남편, 또는 자녀가 있다면 그는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사람’에게 필요한 정상 인성만 갖췄을 뿐, ‘하나님’이 원하는 정상 인성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흔히 사람의 인식과 판이하게 다르며 큰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이번 단계 사역에는 사람의 관념을 일축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으며, 사람의 관념과 크게 다르다. 이 단계 사역은 전적으로 신성이 개입해 사역하고, 인성은 조연의 역할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땅에 와서 친히 자신의 사역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직접 말씀이 육신(완전하지는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 되어 자신의 사역을 한다. 또한, 이번에 성육신한 것을 기회로 사람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고,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을 알려 주어 모든 사람이 그가 말씀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므로, 그는 사람을 떠나고 사람과 이별할 것이다. 더 이상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에 거하지 않고 사람을 떠나 다른 부분의 사역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땅에서의 사역을 계속 완성해 나갈 것이다. 단, 그것은 인성에서 행해진다.

성육신 하나님이 항상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는 더 많은 사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육신을 벗어나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사역한다. 땅에 온 하나님은 정상인처럼 죽을 때의 모습이 되어야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사역이 끝나면 사람을 떠난다. 그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없다. 그는 사람의 나이 계산법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단계에 따라 육신의 생명을 끝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언젠가 육신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야 떠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상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지, 정상인의 삶 그러니까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상의 풍파를 겪는 등 정상인의 갖가지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입은 것이고, 육신에 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인의 생활을 하지는 않고, 그저 하나님 경륜의 한 부분을 완성한 후에 사람을 떠날 뿐이다. 그가 육신으로 왔지만 하나님의 영은 육신의 정상 인성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에 신성으로 직접 사역하고,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며, 그의 직분을 이행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의 수명과는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영이 이 단계 사역을 끝내면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생명도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신이 얼마나 유지될지, 땅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전부 영의 사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정상 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예수는 육신에서 33년 반 동안 살았다. 육신의 수명만 보자면 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떠나서도 안 됐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이 끝나자 육신도 거두어들이니, 육신은 영을 따라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에 있을 때 이러한 사역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땅에 온 이유는 정상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정상인의 삶을 산 후에 사역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정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신성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뜻도, 혈기도섞여 있지 않으며, 사회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사람의 사유나 관념은 물론 처세 철학과도 관련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자, 성육신의 실제 의의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주된 이유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지, 다른 번잡한 과정은 없다. 그는 정상인의 체험을 갖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해야 하는 사역에는 정상인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것은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나머지는 그와 무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번잡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그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성육신한 의의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 이 단계의 사역이 끝나면 그가 육신으로 해야 할 사역이 끝나고 육신의 직분은 전부 이행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육신에 거하며 사역할 수는 없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사역해야 하므로 그때는 육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야 그의 사역이 전면적으로 행해질 수 있고, 더 잘 전개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래의 계획에 따라 사역한다. 어떤 사역을 해야 하고, 어떤 사역을 끝냈는지, 그는 손금 보듯 훤하게 꿰뚫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그가 예정한 길로 인도하므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영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어쩌면 이후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말씀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이 있는 영이 사람의 삶을 인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만지고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실제에 더 잘 진입하여 실제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룰 사역이자, 그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니, 너희는 여기에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봐야 할 것이다!

출처: 전능하신 하나님